美 자국만을 위한 폐쇄적 新보호무역 스타트한미 FTA, TPP등 기존 무역협정 수술 불가피한국산 車 등 주력 수출품 큰 타격 우려
선거 기간 트럼프 캠프의 공약과 내각 합류가 결정된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적 기조는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점철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자 역시 대선 후보 시절부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중단,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불공정한 수입 및 무역 관행 중단 등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내국인 일자리 창출 등 내수경제 강화도 트럼프 행정부를 나타내는 표어 가운데 하나다. 이를 위해 재정적자가 크게 확대되더라도 인프라 투자 및 감세를 통해 미국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겠다는 게 트럼프 측 인사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금융시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대선 직후 불확실성 확대로 단기 조정을 겪었던 미국증시는 이후 반등에 나서면서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는 강세가 이어졌다. 이어 미국 국채금리와 달러가치가 동반 상승하면서 트럼프발(發) 인플레이션을 의미하는 ‘트럼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일단 시장에서는 트럼프 당선에 따른 불확실성이 예상보다 빠르게 해소됐다는 데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정부의 재정정책이 경기 부양 효과를 이끌어내 미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하면서 미국 뿐 아니라 향후 글로벌 경제에도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2017년과 2018년 글로벌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상향조정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미국의 내년 경재성장률을 기존 1.9%에서 2.3%로, 내후년은 2.2%에서 3.0%로 대폭 상향하면서 저성장 탈출을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선진국 ‘맑음’·신흥국은 ‘흐림’=하지만 지역별로 나눠보면 트럼프 시대 개막을 받아들이는 선진국과 신흥국의 입장은 다소 차이가 있다. 먼저 선진국의 경우 트럼프 당선 이후 높아진 안전자산 선호현상에 힘입어 수혜를 본 게 사실이다. 미국 대선 직후 유럽을 비롯한 선진증시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정책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주춤했으나, 곧 대대적인 경기 부양과 규제 완화에 따른 인플레이션 기대감이 작용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반면 신흥국은 선진국과 달리 트럼프 당선에 따른 후폭풍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한 상태다.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을 가리지 않고 글로벌 자금이 선진국으로 빠르게 유출되고 있고,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에 따른 수출 감소에 대한 우려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 이후 아시아 신흥 6개국 주식과 채권시장에서는 트럼프 당선 직후 2주 만에 약 110억달러(한화 약 13조원)의 대규모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는 같은 기간 1억7000만달러가 유출된 한국도 포함된다.
오는 13일과 14일로 예정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 역시 부담이다. 전문가들은 연준이 연방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실제 금리인상이 현실화될 경우 신흥국에서의 자금 이탈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종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12월 금리인상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인상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미국금리를 밀어올리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채권시장 역시 미국의 금리상승이 고스란히 연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전히 어두운 한국 경제=다만 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관계 없이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대부분이다. 당장 미국을 시작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 수출 주심의 한국에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최순실 국정논란 사태로 촉발된 정치적 불안도 내년 경제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위기에 빠진 경제를 책임질 리더십이 사실상 붕괴된 상태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통계청이 내놓은 ‘10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국가 경제의 양대 축인 생산과 소비 모두 정부의 인위적인 부양책을 제외하면 사실상 큰 폭의 하향세를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공공행정을 제외한 모든 민간분야에서 산업 생산이 감소했고, 소비심리 역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차갑게 얼어붙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트럼프 시대를 맞아 ‘신(新)보수주의’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하루 빨리 재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금융시장 안정 및 기존 산업 구조 재편을 비롯한 거시경제 정책을 수립함으로써 불확실성 높은 글로벌 정세에 뒤쳐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국내 상황을 감안할 때 자칫 위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며 “1998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경제위기가 재현될 수 있는 만큼 현재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절실하다”고 진단했다.
◇한미 방위비 부담도 늘 수밖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나타내는 또 다른 키워드는 미국제일주의를 뜻하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다. 일자리 마련을 위해 국외 이전을 추진하는 주요 국내 기업들의 미국 잔류를 압박하는 한편 국제 무역에서도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게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기본 전략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세계 경찰’의 역할을 수행하던 미국의 역할 변화 역시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미 대선 기간 트럼프 진영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각국 정부와의 방위비 재협상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협상 결과에 따라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압박 전략을 취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미 일부 국가들은 트럼프의 방위비 증액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중이다. 유럽연합(EU)의 경우 회원국들
의 국방 역량 및 연구 등을 강호하기 위한 50억유로 규모의 방위기금 설립안이 포함된 ‘유럽 방위 행동 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 당선자 측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 회원국들이 방위비 지출을 늘리지 않을 경우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지속적으
로 밝힌 데 대한 대응조치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 가운데 하나인 일본도 트럼프 측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트럼프 당선 이후 주요국 정상 가운데 가장 먼저 트럼프와의 회담을 추진한 바 있다. 비록 구체적인 성과는 없었지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물론 주일미군 방위비 증액 등 향후 협상을 대비한 선제적 움직임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는 평가다.
한편 미국의 방위비 재협상 전략은 북한과의 대치 과정에서 미군 전력이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는 한국정부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미 전체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국방비 비중이 2.6%에 달하는 상황에서 방위비 부담이 지금보다 커질 경우 전체 국가재정에 악재가 될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올해 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도입을 놓고 중국과의 갈등이 빚은 것은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의 협상력을 축소시키는 요인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방위사업청장이 “미국 차기 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경우 수용할 수 밖에 없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고민이 반영된 발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다만 미국 내에서 한국이 이미 상당한 방위비를 분담하고 있다는 의견이 잇따르는 점은 긍정적이다. 한국과 일본, 독일, 사우디아라비아가 정당한 방위비를 분담하지 않는다는 트럼프 측 주장과 달리 기존 공화당 주류는 여전히 한국이 충분한 방위비 부담을 지고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핵 문제와 연관된 대북 강경책 역시 현 오마바 행정부와 비슷한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은 UN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결의 이후 독자적인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한국정부 역시 지난 2일 정권 핵심에 대한 금융제재 등 미국, 일본과 발맞춘 독자 제재를 발표한 바 있다.
뉴스웨이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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