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 문화 사라지면서 청렴사회 발판 마련위축된 내수 경제 더 얼어붙었다는 지적도외식·화훼 등 소상공인 타격···개선 요구 강해
청탁금지법은 학연·지연을 매개로 하는 부정청탁과 낡은 접대 문화를 개조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된 법으로 청렴 사회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내수 경제가 극도로 얼어붙은 상황에서 소비 침체를 더 키웠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법 시행에 발빠르게 대응해 전략을 바꾸고 있는 한편 소상공인들은 타격을 피하지 못하면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거세다.
◇5만원 미만·수입산 명절 선물 대세=김영란법 시행 후 첫 설을 앞둔 백화점 등 각 유통업체들은 기존 한우, 굴비, 국산 과일 등으로 구성된 고가 명절 선물 세트 비중을 줄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5만원 이하 가격대의 선물세트의 품목 수를 지난해보다 60% 늘렸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에서 5만원 이하 선물세트의 매출 비중은 지난해 설 11%, 지난해 추석 11.9%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12월 5일부터 30일까지 진행한 사전예약판매 행사에서는 전체 매출이 지난해보다 35% 증가한 가운데 5만원 이하 선물세트의 매출은 71%나 늘었다.
현대백화점도 5만원대 실속 선물세트를 대폭 강화해 지난해보다 30% 가량 늘린 총 180여종을 선보인다. 가성비가 높은 수입산으로 세트를 구성하거나 수량을 줄인 소포장 선물로 가격대를 낮췄다. 현대백화점은 기존 20마리로 구성된 '영광 굴비 세트'를 10마리로 줄였고, 호주 정육 세트도 소포장해 5만원 미만으로 맞췄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설 명절 카탈로그 앞머리에 예년과 달리 금액대별로 선물세트 상품을 소개하는 코너를 새롭게 구성했다. 기존에는 상품군끼리 금액에 상관없이 묶어서 소개했다면, 올해 설에는 5만원 이하, 10만원 이하, 20만원 이하 등 세 가지 기준으로 나눠 가성비 높은 상품을 선보인다. 특히 올 설에는 가성비가 높은 수입산 선물 품목 수를 12개나 늘렸다.
반면 대기업들이 저가 상품 판매 비중을 늘리면서 발생한 부담이 납품업체인 소상공인과 농민들에게 전가됐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단가를 낮춰 납품할 수밖에 없어 큰 타격을 받거나, 가격이 싼 수입산이 국산 제품을 대체하면서 납품 물량 자체가 줄어든 영세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외식·축산업계 그늘=특히 외식업계는 김영란법의 본격 시행과 함께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경기 불황으로 소비가 지속 위축되는 가운데 부정청탁 금지법까지 겹치면서 지난해에는 ‘연말 특수’마저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2월20일부터 26일까지 전국 709개 외식업 운영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년 같은달에 비해 매출이 줄었다는 응답자가 84.1%로 집계됐다. 이들은 이들은 매출이 평균 36% 줄어들었다고 답했다.
이는 식사값을 3만원 미만으로 제한한 김영란법의 기준에 따라 고가 음식을 판매하던 매장이 가격을 낮춘 메뉴를 내놓은데다 혼란한 정국을 의식해 송년회나 회식 자리가 크게 줄어든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지난 9월 김영란법이 시행되자 기업체 인근 식당가에서는 반찬 수를 줄이는 대신 가격을 낮춘 2만9000원대 세트메뉴를 소개하는 등 대응 태세를 구축한 바 있다.
하지만 100일이 지난 현재 상당수의 음식점이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란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10~11월보다 12월에 매출이 더 감소했다는 응답자 역시 52.5%에 달했다.
식당 규모가 작을수록 어려움은 더 컸다. 실제 종사자가 1인인 식당의 경우 매출이 전년 대비 40.1% 줄어든 반면 10인 이상인 식당은 매출 감소폭이 27.8%에 그쳤다. 이는 객단가 3만원 이하의 식당으로 소비자가 이동할 것이라고 기대하던 ‘낙수효과’가 미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연이은 악재에 인원을 줄이거나 휴업 또는 업종전환을 계획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 일식당이나 한정식집 등 전체 응답자 중 39.4%가 인건비를 줄이고자 인력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영난으로 휴·폐업, 업종전환을 고려하는 응답자도 30.6%였다.
외식산업연구원은 외식업의 위기는 경기침체와 청탁금지법 시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고 소비 위축을 타계하기 위해 정부차원의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란법은 축산업계에도 근심을 안겼다. 한우 전문식당으로 향하는 소비자의 발걸음이 뜸해지면서 한우 가격 하락 등 시장 위축으로 이어졌고 농가에까지 피해가 번진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 후 한 달 동안 한우전문 음식점 소비가 최대 40%까지 감소했으며 소고기 수입량이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 특히 일부 대형마트에서는 수입소고기의 매출 비중이 한우를 앞서는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한우 가격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가 수입산을 찾고 있는 게 주된 요인이다.
일각에서는 김영란법 여파로 한우에 대한 소비가 지속 줄어든다면 농가의 어려움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만큼 소비 진작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올해 주류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바로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의 시행이다. 음주문화 변화, 경기 불황 등의 이유로 어려움을 겪던 주류업계는 지난 9월 말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매출 한파가 닥치며 더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특히 접대 문화가 점차 사라지면서 유흥업소의 매출이 감소해 맥주, 위스키 업체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여기에 독주 기피 음주문화 확산으로 위스키 매출은 7년 연속 감소 추세다. 반면 도수와 가격 부담을 낮춘 소주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김영란법 이후 외식업 매출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그 여파가 고스란히 주류업계로 이어지고 있다"며 "최순실 게이트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대목으로 여겨지는 연말 특수도 사라져 암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의 여파는 성장세를 지속하던 와인업계에도 큰 타격을 줬다. 경기침체로 저가의 술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국내 와인 수입액도 전년 동기보다 0.2% 감소했다. 이는 와인 선물 수요가 감소한 것도 주효했다.
또 선물용 주문이 많아 와인 성수기에 속하는 11~12월에는 주문이 대폭 줄어 업계에서는 와인 수입이 7년만에 역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소상공인 체감 타격···제도 개선 요구=이외에 주류업계, 화훼업계 등도 직격탄을 맞은 대표 업종으로 꼽힌다.
접대 문화가 사라지면서 유흥업소 인기 주류인 위스키 업체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위스키는 최근 7년 연속 매출 감소세에 놓여있다. 또 최근 7년간 성장세를 유지한 와인업계도 올해 7년만에 수입량이 역신장할 가능성도 높다.
화훼업계에서도 축하난이 오가는 인사철인 연말 대목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5만 원 이상의 선물이 금지되면서 인사철 축하난을 보내는 관례가 사실상 사라진 탓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한국행정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 청탁금지법으로 타격이 예상된 식품접객업과 유통업, 농축수산·화훼업 등 업종의 사업체 40.5%가 법 시행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는 답변을 했다.
이처럼 중소업체와 소상공인들이 입는 타격이 현실화 하면서 경기 침체와 맞물려 우려도 커지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3000개 전국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5년 대비 2016년 매출액이 감소한 소상공인은 55.2%로 나타났다. 이 중 53.3%는 고객과 매출 감소의 주요 원인을 김영란법 시행으로 지적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소상공인들은 매출 감소가 심각한 상황이며, 그 주요 원인으로 김영란법 시행을 꼽고 있어 그 동안 우려했던 결과가 나타났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소상공인들의 삶의 기반이 통째로 무너내리지 않도록 소상공인의 경영여건 개선에 온힘을 써주기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설 연휴 전에 김영란법 시행의 성과와 영향을 점검하고 이를 기반으로 농축수산물 등을 중심으로 한 소비촉진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sia0413@newsway.co.kr
뉴스웨이 정혜인 기자
hij@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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