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에 따르면 정부 수석 대표로 이사회에 참석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이날 일본 수출 규제를 다루는 안건 논의가 끝난 뒤 외신 기자회견에서 “일본대표에게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고위급 대화를 제안했으나 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일본의 대화 거부는 일본이 (스스로) 한 행위를 직면할 용기도, 확신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일본은 (자신의 행동에) 눈을 감고 있고, 피해자들의 절규에도 귀를 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일본은 조치 발표 후 20일 동안 일관되게 직접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면서 "일본의 조치는 명백한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정치적, 외교적 보복이다”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회의에서 과거 정치적인 무역 보복 때문에 다자 교역 체계가 만들어진 점을 강조하면서, 한국이 반도체를 주도하는 국가이나 일본의 조치로 제3국과 아무 잘못도 없는 소비자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회원국들에 설명했다.
양국 대화와 관련해 김 실장은 “대화로 이 문제를 푸는 것은 한국 정부가 꾸준히 유지해온 입장이다"라며 "오후 회의 재개 후에도 일본 대사에게 대화를 요구했으나 구체적인 대답을 회피했다·고 덧붙였다.
한국 대표단은 이날 회의에서 일본의 규제조치가 명백한 WTO 규범 위반이며 국가 안보와 관련이 없다는 점을 회원국에 강조하면서도 법리나 근거를 대기보다는 일본이 대화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데 더 무게를 뒀다.
향후 제소까지 갔을 때 상대방에게 미리 준비할 시간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구체적인 위반 조항은 거론하지 않았다.
김 실장은 “(대화 상대인) 야마가미 신고(山上信吾) 국장은 마이크를 잡을 용기도 없었다. 회의에서 대화 제안에 답을 하지 않고 있고, 대사가 오후에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거부했다”면서 진실된 직접 대화를 거듭 촉구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이날 이사회에서 수출 규제가 국가 안보를 위해 이뤄진 조치로 WTO에서 논의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주제네바 일본 대표부 대사는 “한국이 언급한 조치는 국가 안보라는 관점에서 이뤄진 것으로 WTO에서 의제로 삼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도 다른 나라처럼 정기적으로 수출 규제를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이 교역 절차를 개선할 것이라는 신뢰 아래 2004년 교역 절차를 간소화했으나 최근 3년간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의 요구에도 한국이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하라 대사는 “추가로 대한(對韓) 수출 중 부적절한 사례가 있었다"며 "이러한 이유로 한국에 대해 간소화했던 수출 절차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은 일본의 조치가 자유 무역에 어긋난다고 주장하지만 자유무역이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민감한 상품이나 기술을 아무런 통제없이 교역할 수 있게 허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하라 대사의 발언 후 WTO 일반이사회는 점심 식사를 위해 2시간 휴회했다.
한국이 일본의 WTO 규범 위반을 지적하면서 대화에 나설 것을 압박하고 이하라 대사가 이를 반박하는 등 공방을 벌이는 동안 다른 회원국들은 이 안건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다.
중재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됐던 미국도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김 실장은 한국의 대화 제의에 이의를 제기하는 회원국이 있느냐고 다른 대표들에게 공개적으로 물었다면서, 회의 중 다른 나라의 발언이 없었던 것은 한국 정부에 대한 강한 지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과 일본은 이달 9일 상품 무역 이사회에서도 제네바 대표부 대사들이 수출 규제 문제를 놓고 충돌한 바 있다.
WTO 일반 이사회는 164개 전체 회원국 대표가 중요 현안을 논의·처리하는 자리다. 최고 결정 권한을 가진 WTO 각료회의는 2년마다 열리기 때문에 각료회의 기간이 아닐 때는 일반이사회가 최고 결정기관으로 기능한다.
정부는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김승호 실장을 수석 대표로 파견했고 일본에서는 외무성에서 야마가미 신고 경제국장을 파견했다.
애초 일본 정부 대표로 발언할 것으로 알려졌던 야마가미 국장은 이날 회의에서 발언하지 않았고, 외신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장에는 이하라 대사가 나섰다.
뉴스웨이 주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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