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도 ‘규모의 경제’ 실현해야” “중복 기능 합치면 경쟁력 높아질것”수은은 못마땅···“업무영역 구분해야”부처간 이해관계로 가능성 희박하나이 회장 ‘두터운 입지’에 향방 촉각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깜짝 발언’으로 금융권에 거센 파장이 일고 있다. 전날 간담회 자리에서 끄집어낸 ‘산은과 수은의 합병’ 얘기다.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전제를 붙였지만 정책금융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이동걸 회장은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두 기관이 통합하면 경쟁력을 갖춘 금융기관으로서 그리고 정책금융기관으로서 더 많은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 같은 청사진을 내놨다.
산은과 수은의 중복되는 기능을 합치면 시너지가 커지는 동시에 영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효율적인 정책금융 운용이 가능하다는 게 이동걸 회장의 견해다. 궁극적으로는 정책금융 기관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혁신기업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그간 이동걸 회장은 “대한민국의 경제는 지난 10여년간 미래를 위한 준비를 소홀히했기 때문에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낮아졌고 결국 장기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이날도 국내 벤처기업에 대한 대규모(100억원 이상) 투자의 대부분이 해외 벤처캐피탈(VC)을 통해 이뤄지는 현실을 언급하며 유니콘 기업을 육성하려는 투자 기반이 척박하다고 지적했다. 그 주된 원인으로는 정책금융기관의 역량 부족을 꼽았다.
따라서 향후 이동걸 회장을 중심으로 이 같은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사실 처음 나온 화두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엔 정책금융기관의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됐고 지난해엔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전 금감원장)이 정책금융 지주회사를 만들어 산은과 수은, 무역보험공사를 관리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동걸 회장으로서는 남은 1년간 이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겠다는 의지를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가능성은 희박하다. 두 거대 국책은행의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수은)와 금융위원회(산은)의 이해관계가 다른데다 각각이 다른 법에 근거해 설립된 만큼 통합 절차 또한 복잡해서다.
당사자인 수은 측 역시 무척 불편해하는 모양새다. 금융노조 수출입은행 지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이동걸 회장에게 “무책임한 합병설 제기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2013년 정부가 발표한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에서도 산은은 대내 정책금융을, 수은은 대외 정책금융을 전담하는 것으로 구분한 바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산은과 수은의 합병안에 무게감이 실리는 배경은 이동걸 회장을 향한 현 정부의 두터운 신임에 있다. 금호타이어와 대우조선, 한국GM, 아시아나항공 등 주요 기업의 이슈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번에도 이 회장이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킬 것이란 인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산은과 수은의 단계적 합병이 정책금융 지주회사를 세우는 것보다 현실적이란 반응도 있다.
이동걸 회장도 수은과의 통합이 절실한 상황이다. 벤처투자플랫폼인 ‘KDB넥스트라운드’를 활성화 시키는 등 창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예산 확보’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속도를 더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 가운데 주요 기업의 구조조정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산은으로 책임론이 쏟아지는 현상을 놓고도 국책은행 수장으로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이동걸 회장은 “4차 산업 육성을 목표로 전세계에 걸쳐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는데 대한민국은 아직 부족하다”면서 “미래산업을 위해선 정책금융기관도 1000억원을 투자할 수 있도록 덩치를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산업은행의 역할이 구조조정뿐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달라”면서 “우리 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외부의 관심을 덜 끌지언정 그 일을 꾸준히 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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