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가 손해 입증해야...피해산정 기준 제각각금융당국은 뒷짐...확실한 보상·제재가이드 필요시민단체 “IT 개발 및 시스템 투자 소홀한 결과”
‘동학개미’ A씨는 이달 초 신한금융투자의 MTS 접속오류로 약 140만원 가량의 손실을 입었다. 수차례 접속에 장애가 발생하면서 하락 종목을 손절매하지 못한 탓이다. 스캘핑(단타) 매매를 주로 하는 A씨는 개장 직후 매수한 종목을 매도하려 했으나 1시간 가량 MTS 접속이 지연됐다.
A씨는 “최근 개인투자자들이 증가하면서 증권사들의 수익이 크게 늘었을 텐데 소비자 보호엔 소홀한 것 같다”며 “제대로 된 보상은 기대도 안 하고 서버관리만이라도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투자자 B씨는 지난해 3월 13일 폭락장 당시 MTS가 접속장애를 빚으면서 수천만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오전 10시부터 장마감까지 계속된 접속장애로 물량을 매도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B씨는 증권사에 손실에 대한 일부 책임이 있다고 보고 손실액의 10% 가량을 보상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일 9시 4분부터 26분 동안만 접속이 어려웠다는 증권사의 해명을 금융감독원이 그대로 수용한 탓이다. 금감원은 설령 장애가 하루종일 있었더라도 특별한 매수주문이 없어 배상 책임이 없다고 봤다.
B씨는 “하루종일 접속에 장애가 있었다는 건 당일 증권사 콜센터 직원과의 통화 녹취, 언론기사 등으로 증명할 수 있다”며 “해당 증권사는 나흘 전 폭락장에서도 접속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접속지연 사태를 미리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투자자 매매의사 인정돼야 보상 가능...피해액 산정 기준도 모호
이처럼 증권사 MTS의 잦은 오류로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빗발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긴 힘든 실정이다. 접속장애 당시 거래 의사를 증명할 객관적인 증빙자료가 있어야만 증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분쟁조정센터에 따르면 접속장애에 따른 보상은 증권사의 책임 있는 사유로 현실적인 손해가 발생해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콜센터에 민원을 넣거나 오프라인 지점을 방문하는 등 매매의사가 인정돼야 한다.
특히 접속장애 당시 매수하지 못한 종목이 급등했을 경우에도 통상손해에 해당하지 않아 보상받기 어렵다. 비상주문 등으로 매수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면 단순한 기회이익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거래의사를 증명했더라도 구체적인 피해액을 매기기도 쉽지 않다. 증권사들이 피해액 산정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 데다가 산정 방식도 저마다 제각각인 탓이다.
◇ 투자자 피해 규모 셀프조사 후 보고해야 징계...3시간 내 복구하면 끝?
투자자들 사이에선 금융당국의 ‘솜방망이 처벌’ 탓에 MTS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한국투자증권·키움증권·삼성증권·SK증권 등에 이어 올해에도 KB증권·신한투자증권·키움증권 등이 접속지연을 빚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
금감원 전자금융감독규정에 따르면 MTS 접속장애로 투자자 피해액이 50억원 이상 발생하면 해당 증권사 임직원은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50억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사실을 ‘셀프조사’해 보고하지 않으면 제재가 내려지지 않는다. 금융당국이 MTS 문제에 뒷짐만 지고 있는 셈이다.
앞서 2015년 7월 21일 하나대투는 HTS(홈트레이딩시스템)가 6시간 가까이 중단돼 금감원 IT검사실(현 IT·핀테크전략국)의 특별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제재 수준은 경징계인 기관주의와 과태료 1억원이었다.
금감원 기준에 따르면 HTS·MTS에 장애가 생기더라도 3시간 이내에 정상화되면 아무런 징계 조치가 없다. 특히 24시간 이상 전산이 중단돼야 직무정지(정직)이상, 기관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부과할 수 있다.
◇ 증권사 제재·보상 책임 기준 강화 필요...증권사 IT 투자 확대 시급
이에 따라 증권사 제재를 강화하고 소비자 보상 책임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증권사들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전산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증권사들이 개인투자자들 덕분에 벌어들인 이익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반복되는 MTS 오류는 증권사들이 IT 개발 및 시스템 투자에 소홀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금융당국·증권사가 도덕적 해이에 빠져있는 것 같다”며 “증권사는 MTS·HTS 선진화에 투자를 늘리고 금융당국의 강력한 징계와 시정조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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