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장제도의 또 다른 축을 마련하는 논의인 만큼, 정부와 민간이 한자리에 모여 상병수당 지급 대상자 선정부터 재원 마련 방법까지 다양한 과제를 다루며 정책 구상을 구체화했다.
보건복지부는 15일 오후 서울 중구의 LW 컨벤션센터에서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와 이해관계자, 전문가로 구성된 '상병수당제도 기획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를 열고 한국형 상병수당 구축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간 국내 건강 정책은 '소득 보장'보다는 '의료 보장'에 우선순위를 두고 의료 접근성을 높이면서 보장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주는 방안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코로나19의 지역사회 내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아프면 쉬기'라는 방역 지침이 시행됐지만, 임금 보전 없이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상병수당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 상병수당, 질병→빈곤층 악순환 끊는 '안전망'···국내선 법적 근거만 명시
복지부는 상병수당이 도입될 경우, 질병으로 경제적 능력을 잃고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안전망' 기능과 함께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건강권이 확대된다고 설명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아픈 근로자가 이를 참고 일할 때 나타나는 생산성 저하나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의 직장 내 전파를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에서는 한국과 미국을 제외하고 모두 상병수당을 도입한 상태다. 미국에서도 뉴욕·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이미 상병수당이 도입됐다.
우리나라도 국민건강보험법을 통해 상병수당 지급의 법적 근거를 명시했지만, 시행령 등 하위 법령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이후 2020년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중 사회안전망 과제를 비롯해 같은 시기 열린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사회적 협약 체결'을 통해 상병수당에 대한 논의가 점진적으로 진행됐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1969년 상병급여협약을 통해 모든 근로자와 경제활동 인구의 75% 이상에 대해 최저 52주 이상 이전 소득의 60%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국제기준을 발표한 바 있다.
◇ 재원 마련 어떻게···도덕적 해이 막는 '대기기간' 설정 논의도 필요
이날 자문위에서는 해외 주요 사례를 살펴보고 대상자 범위와 재원 조달 방법 등 제도 도입에 필요한 논의 사항을 구체화했다.
복지부는 ▲ 재원 조달 방법과 대상자 선정 ▲ 보장 기간과 급여 수준 ▲ 보장 질환 범위와 인증 체계 ▲ 사후관리 등을 주요 논의 과제로 꼽았다.
재원 조달·대상자 선정과 관련해선 조세와 사회보험 중 어떤 것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지, 또 임금·비임금 근로자를 모두 대상자로 포괄할지, 한쪽만 선택적으로 선정할지 등이 포함된다.
2019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추계에 따르면 상병수당 도입 시 국내총생산(GDP) 대비 최소 0.04%(8천55억원)에서 최대 0.1%(1조7천718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집계가 나온 바 있다.
또 보장 기간과 급여 수준 부분에서는 상병수당 대상자로 인정받기 위한 '대기기간'은 어느 정도로 설정할지, 기존 소득의 대체율은 어느 정도로 산정해야 할지 등의 논의 과제가 남아있다.
대기기간은 상병수당 지급에 앞서 치료 기간이 일정 기간 이내로 길지 않은 경증 환자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해 도덕적 해이를 막도록 한 장치다. 대부분의 국가가 상병수당 대기기간을 '유급병가' 지원 기간과 연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의 경우, 임금 근로자는 상병 직후부터 16일까지는 유급병가를 받는데, 16일간의 대기기간이 지난 후에도 질병이 계속될 경우 17일째부터 '상병수당'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유급병가 제도가 없는 국내에서는 이처럼 대기기간을 산출할 기준이 마땅하지 않게 때문에 이를 상병수당으로 모두 포괄할지, 또는 유급병가 제도를 신설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보장 질환 범위 측면에서는 별도의 의료 인증 절차를 도입해 근로자가 일하기 어려운 '근로무능기간'을 산정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사회보험으로 상병수당을 운영할 경우 보험료율은 소득의 어느 정도 비율을 적용해야 할지 등 지속가능한 제도 시행을 위한 사후 관리 문제도 있다.
◇ 복지부 "마지막 남은 빈 퍼즐···내년 시범사업 추진 계획"
김헌주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지난 13일 사전설명회에서 이날 개최된 자문위 회의가 "상병수당의 큰 틀을 소개하고 앞으로 제도를 만들 때 어떤 부분에서 검토가 필요하고, 준비해야 할지를 논의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김 국장은 특히 상병수당이 "우리나라 사회보장 정책 발전 수준으로 봤을 때는 때늦은 감이 있는, 마지막 남아있는 빈 퍼즐"이라면서 "여러 사회 보장 제도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건강보험은 아플 때 치료를 보장하지만, 상병수당은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고, 산재보험은 업무상 질병에만 해당하지만, 상병수당은 업무와 무관하게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고용 보험은 실업으로 일하지 못할 때 지원하지만, 상병수당은 아파서 일하지 못할 때 지원하는 것이며, 병가의 경우 지원 주체가 기업이지만 상병수당은 병가 이후에도 질병이 이어질 때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는 제도"라며 상병수당과 여타 사회보장 제도와의 지원 범위 및 대상의 차이를 짚었다.
복지부는 이날부터 올 12월까지 매월 1회씩 9차에 걸쳐 자문위 회의를 이어가는 동시에 논의 내용을 토대로 내년부터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변성미 상병수당 태스크포스(TF) 팀장은 이와 관련해 "시범사업 모형은 본 사업 모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 시행할지 기간을 결정하게 된다"며 "앞서 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할 때는 3년간의 시범사업을 거쳐 본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를 벤치마킹해서 사업 기간을 설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범사업 규모 및 대상과 관련해선 "장기요양보험 시범사업의 경우, 1단계에서 기초생활수급 노인 대상, 2단계에서는 대상자 확대, 마지막 3단계에서는 본 제도 모형을 그대로 축소해 운영한 뒤 이듬해 본 제도를 시행했다"며 "아직 (상병수당 시범사업) 설계 단계지만, 임금 노동자와 비임금 노동자를 모두 포함해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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