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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공모가는 ‘시장’에 맡기는 게 맞다

오피니언 기자수첩

[허지은의 주식잡담]공모가는 ‘시장’에 맡기는 게 맞다

등록 2021.07.05 14:25

허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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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신고서 정정에···IPO 기업 공모가 줄하향금융당국 과잉 개입으로 시장 위축 우려 높아

reporter
‘시장에선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경제학의 오랜 원리다.

비상장 기업이 증시에 입성하는 기업공개(IPO)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예비 상장사가 희망하는 가격을 제시하면,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투자자들이 그중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모가를 결정하고, 그 가격이 합당하다고 여기는 일반투자자들이 청약에 참여해 공모주를 배정받는다. IPO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 그 중심에 공모가가 있다.

그런데 최근 IPO 시장엔 이같은 논리가 통하지 않는 듯하다. 금융당국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 이후 공모가를 하향 조정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어서다. 일부 기업의 경우 신고서 정정을 우려해 공모가를 자진해 낮게 산정하고 나섰다. 금융당국이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로 기업의 공모가 산정에 직·간접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사상 최대 공모로 화제를 모은 게임기업 크래프톤은 당초 지난달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희망 공모가 밴드를 45만8000~55만7000원으로 산정했다. 하지만 금감원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로 지난 2일 공모가를 40만~49만8000원으로 낮췄다. 공모 예정 금액은 희망밴드 상단 기준 4조3098억원으로 줄었다.

증권신고서 정정을 수차례 거듭한 기업도 속출했다. 라온테크의 경우 증권신고서를 다섯 번이나 정정한 뒤 지난달 코스닥으로 이전 상장했다. 상반기 코스닥에 상장한 아모센스, 삼영에스앤씨, 에이치피오, 제주맥주 등도 증권신고서를 정정했다.

증권신고서는 기업이 공모 직전에 거치는 사실상 마지막 단계다. IPO는 ‘주관사 선정→기업실사→상장예비심사→증권신고서→수요예측→청약→상장’으로 이어진다. 당국이 개입하는 단계는 상장예비심사와 증권신고서다. 기업이 제출한 신고서를 토대로 각각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이 면밀한 검토를 마쳐 승인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상장예심 통과가 늦어질수록,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가 늘어날수록 기업의 상장일은 무기한 연장된다.

기업 입장에선 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IPO의 기본 목적이 공모자금 조달인 만큼 공모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경우 자칫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장예심과 신고서 단계에서 공모가가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만큼 공모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진단키트 기업 SD바이오센서의 경우 자진해서 신고서를 정정하고 공모가를 하향 조정했지만 금감원의 추가 정정 요구에 공모가 밴드를 기존 6만6000~8만5000원에서 4만5000~5만2000원으로 40% 가량 크게 낮추고서야 공모 일정에 돌입하게 됐다. 카카오뱅크 역시 공모가 밴드를 3만3000~3만9000원으로 장외가격(10만원)의 40% 수준으로 책정했다.

금융당국은 ‘기업의 공모가 산정에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라’며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고 있다. 상장 이후 주가가 부진한 공모주가 늘어나자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공모가 산정 과정을 보다 꼼꼼히 보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당국의 개입이 커질수록 투자 심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모주 열풍이 잦아들고 나면, 향후 예비 상장사들이 올바른 기업 가치를 받기 어려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모가 고평가 논란은 작년 하이브(구 빅히트) 상장 때도 거셌다. 당시 하이브는 증권신고서에서 자사 기업가치를 5조8000억원으로 추산했다. 피어그룹에 엔터테인먼트 기업 뿐 아니라 플랫폼 기업인 네이버, 카카오를 포함하며 ‘뻥튀기’ 논란이 일었다. 하이브 상장 직후 주가가 반년 넘게 부진에 빠지며 거품은 기정사실화되는 듯 했으나, 올해 하이브는 공격적인 투자 행보로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단기 주가 향방이 아닌 미래 성장성에 베팅한 투자자들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 터다.

쿠팡은 국내 증시대신 미국 나스닥을 택하면서 단숨에 시가총액 100조원을 달성했다. 시가총액 100조원을 넘는 기업은 국내에선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한국에선 꿈과 같은 시총이 ‘탈한국’을 택하는 순간 가능해졌음을 이미 많은 예비 상장사들이 경험했다. 시장에 맡기느냐, 개입을 유지하느냐. 금융당국은 기로에 서 있다.

뉴스웨이 허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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