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일성에 “금융감독 본분은 감독 아닌 지원”금융사 CEO들과 만나 검사체제 전면 개편 예고지난달 부원장 임명에 이어 내달 부원장보 인사CEO중징계 소송·가계부채 관리 등 현안은 과제
강력한 규제를 내세웠던 윤석헌 전 금감원장과 달리 감독 당국이 시장친화적 기조로 돌아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감독 체제 손보겠다”···금감원 재량적 판단 최소화=금감원은 당초 이달 중순으로 예고됐던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잠정 중단하고 검사·제재체계 개편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사전 컨설팅식 검사를 도입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 원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정 원장의 뜻은 취임사에서부터 드러났다. 그는 취임사에서 “금융감독의 본분은 규제가 아닌 지원에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면서 “민간에 대해 금융감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로서 사후 교정뿐만 아니라 사전 예방에도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일 금융지주 회장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검사 체계를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두는 세련되고 균형잡힌 체계로 개편할 예정”이라면서 종합검사를 포함한 금융사 감독 체계 변화를 예고했다.
정 원장은 “현행 종합검사와 부문검사로 구분되는 검사 방식을 개선하겠다”며 “실제 검사 현장과 제재심의 과정에서 금융사와 소통채널을 확대해 검사의 주기, 범위, 방식 등도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직 종합검사 폐지를 결정한 상황은 아니지만 종합검사를 포함한 부문검사 등의 대대적인 변화가 예고된 셈이다.
9일과 11일 시중 은행장과 지방은행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같은 뜻을 내비쳤다. 정 원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 금융감독 행정을 수행하고 사전적 감독과 사후적 감독 간에 조화와 균형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은행이 금감원의 감독 기능을 예측할 수 있도록 당국의 재량적 판단과 결정을 최소한으로 반영하겠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정 원장은 “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는 예측 가능성에서 나온다”면서 “법과 원칙에 따라 금융감독을 집행할 때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이 확보 될 수 있고 재량적 판단과 결정이 법과 원칙에 우선할 수 는 없다”고 말했다.
금융업계에서는 금융시장 및 업계와의 협력을 강화해 감독 정책과 집행의 조화가 이루어지면 시장질서를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일각선 ‘금융사 봐주기’ 지적도=반면 정 원장이 금감원의 본연의 역할에서 너무 ‘힘 빼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친화적 기조가 자칫 감독을 느슨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이 곧 소비자 보호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 시민단체 금융정의연대는 정 원장이 금융사 종합검사 개편을 예고한 데 대해 금융소비자 보호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금융정의연대는 “2015년 금융위원회가 규제를 완화하면서 종합검사가 폐지된 적이 있는데 이는 대규모 사모펀드 피해 양산이라는 쓰나미를 일으켰다”면서 “규제 완화의 결과를 알면서도 반복하는 것은 금융사의 불법행위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금융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기관장이 본연의 목적도 잊은 채 부적절한 발언을 일삼고 있다”며 “종합검사마저 약화되면 금융지주 경영진의 전횡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일부 임직원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관계자는 “업무에선 금융위에 치이고 일선 현장에선 금융사에 치이는데 금감원장이 지나치게 시장 친화적으로 웅크리고 가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금감원 감독 부서 직원들 사이에선 “사고가 터지면 금융위는 뒤로 숨고 금융사는 소송으로 맞대응해 그 사이에서 어려운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도 이런 기조가 달라질 것 같진 않다”라는 푸념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정 택한 부원장 인사···부원장보 인사 이후 조직 개편 시동=취임 직후 임원 전원에게 일괄사표 제출을 요구한 정 원장은 지난달 22일 조직 인사 혁신의 첫발을 뗐다. 부원장 4명 가운데 3명이 교체됐는데 금감원과 금융위원회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수석부원장 자리에는 정 원장과 기획재정부 시절 호흡을 맞춘 이찬우 전 기재부 차관보가 임명됐다. 부원장에는 김종민·김동회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임명됐다.
해당 인사를 두고 관(官)과 내부 인사를 등용하며 안정적인 조직 쇄신을 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부원장 인사에서 안정을 택한만큼 후속 부원장보 인사에서도 비슷한 방향성을 가질 것이란 전망이다.
11일에는 신임 부원장보 인사를 단행했다. 이준수 은행감독국장과 이경식 자본시장감독국장을 각각 은행 담당, 금융투자 담당 부원장보로 임명하며 “금융시장 안정과 금융산업 발전을 도모하고 금융소비자 보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같은 날 3명의 부원장보가 조기 퇴임함에 따라 조만간 추가 임원 인사도 이뤄질 예정이다. 앞서 김종민 기획경영 부원장보와 김동회 금융투자 부원장보가 신임 부원장으로 승진했고 김동성 전략·감독 부원장보, 이성재 중소서민금융 부원장보, 장준경 공시조사 부원장보의 퇴임으로 3자리가 추가로 공석이 됐다. 금융보안원장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인 김철웅 소비자권익보호 부원장보가 사직하면서 4자리가 공석으로 남았다.
금감원은 임원 인사 이후 조직개편에 나선다. 금융업계에서는 내년 1월 국장급 인사와 함께 조직개편을 발표할 것이란 관측이다.
◇CEO 중징계 소송 등 남은 과제는=정 원장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현안은 산적해 있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와 관련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중징계 소송이 관심사다. 재판부가 중징계 취소 판결을 내리면서 금감원은 이에 대해 항소를 한 상태다. 판례가 형성돼 있지 않은 사건에 금융당국이 항소를 포기할 경우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어서다.
손 회장 뿐만 아니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과도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다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를 판매한 금융회사 CEO(최고경영자)들의 징계 수위도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금융당국과 업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머지포인트 등 사태에서 드러난 금융소비자 보호 빈 틈을 채우고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금융시장 리스크 점검에도 나서야 한다.
특히 내년까지 이어질 가계부채 관리 기조를 이어가기 위한 정책과 실수요자 보호 등도 과제다. 이외에도 유동성 과열로 인한 불공정거래에 대한 단속도 필요한 상황이다.
뉴스웨이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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