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대우조선 인수 무산 위기①]외신, EU가 LNG선박값 인상 우려해 최종 불허 보도2019년 신청 기업결합 심사, 3개국서 미결론작년 현중-대우조선 LNG선 시장 점유율 60%독과점 부추기는 꼴···사업 일부 매각 요구해압도적 경쟁력·미래 성장성 고려 수용 힘들어
1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EU 경쟁당국은 오는 20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M&A)을 불허할 예정이다. 아직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았지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EU 내부적으로 두 기업의 결합을 승인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는 얘기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EU 집행위원회이 “두 조선사의 합병을 막는 것은 유럽 소비자들이 LNG에 대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2019년 3월 대우조선해양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본계약을 체결하며 본격적인 인수 절차에 돌입했다. 현대중공업은 3개월 뒤 조선 계열사를 관리할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을 설립하는 등 속도감 있게 M&A를 진행했다.
합병 선결조건은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이다. 그해 7월 총 6개 국가에 기업결합 심사를 신청했고, 카자흐스탄과 싱가포르, 중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 공정거래위원회와 EU, 일본으로부터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당초 공정위는 지난해까지 기업결합 심사를 마무리할 방침이었지만, 아직까지 유의미한 진전은 없다. 심사가 종료되지 않은 국가 중 한 곳이라도 M&A를 거절하면, 최종 결렬된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 EU 등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 결과를 지켜본 뒤 판단하겠다는 의미다.
EU가 이번 M&A를 불허할 것이란 전망은 지난해 말부터 외신 보도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국내 조선사들의 글로벌 LNG선 시장 점유율이 90%에 달하는 만큼, 대형선사들이 몰려 있는 유럽 내 선사들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반영됐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3사의 최근 4년간 글로벌 LNG선 점유율은 2018년 98%, 2019년 94, 2020년 72% 수준이었다.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던 수주량은 2021년 들어 다시 상향세를 보였다. 지난해 전세계에 발주된 LNG선박 78척 가운데 국내 조선 3사가 총 68척(87%)을 수주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점유율만 따져봐도 60%가 넘는다. 두 기업은 전체 수주잔량이 세계 1·2위인 거대 조선사인데, 글로벌 LNG선박 시장을 독식하는 상황이다. EU가 두 기업의 합병을 승인해 준다면, 오히려 독과점을 재촉하는 그림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LNG 수요가 급증했고, 이를 실어나를 선박 수요도 덩달아 늘어났다는 점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18년 ‘2050년까지 선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을 2008년 대비 50% 저감’의 탄소중립 전략을 채택했다. 2023년까지 저효율 노후선 등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선박을 퇴출한다는 게 골자다. EU도 자체적으로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를 해운으로까지 확대 적용하는 규제를 만들었다.
LNG선 발주 전망은 밝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31년까지 연평균 발주량은 2020년의 2배 수준인 1900여척으로 예상되는데, 35% 수준인 친환경선 비중 역시 더욱 확대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유럽운송환경연합은 2035년까지 역내 기항하는 선박의 55% 이상이 LNG나 바이오 연료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한다.
합병이 추진되던 시점과 비교할 때, 조선업황이 급변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두 기업 합병이 결정된 2019년만 해도, 조선업계는 최악의 불황기를 겪었다. 당시 선박 가격을 흥정할 수 있는 쪽은 선사였다. 하지만 2020년 하반기부터 그동안 묶여있던 선박 수주가 몰리면서,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게 된 것이다.
EU는 네 번이나 심사를 유예한 대외적인 이유로 코로나19를 꼽았다. 하지만 이 기간 현대중공업에 LNG선 사업 일부를 매각하는 방향으로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수용하기 힘든 제안이다. 합병 목적이 경쟁 조선사가 넘볼 수 없는 ‘초격차’ 전략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고부가가치이자 미래 성장이 담보된 LNG선 사업을 쉽게 놓을 수 없다.
더욱이 국내 조선사들이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오래 기간 공 들인 결과다. 우리 정부와 조선사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세계 에너지원 다변화로 천연가스 수요가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 선점을 위한 선행 투자가 이어졌고, 선견지명은 오늘날의 세계 LNG선 시장 재패로 이어졌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과의 합병을 조건없이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점유율로만 지배력을 평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또 EU 조건을 거절하는 대신 ▲일정기간 LNG선 가격 고정 ▲해외 경쟁사로 기술 이전 등으로 설득에 나섰다. 하지만 EU는 임시방편식 장치에 불과하다고 판단했고, 자국 선사를 보호하는데 주안점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EU가 아니더라도, 일본의 기업결합 승인을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일본 역시 EU 승인 여부를 살피느라 심사를 마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국내 조선사를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합병을 최종 미승인할 수 있다.
일본이 지난 2018년 세계무역기구(WHO)에 “한국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에 약 12조원 규모의 선박을 발주하며 자국 조선사를 지원했다”며 제소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일본이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조선 시장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국내 기업간 통합을 반대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일본은 2020년 말 일본 1위 조선사인 이마바리조선과 2위인 저팬 마린 유나이티드(JMU)가 합작사 ‘니혼 십야드’(NSY)를 설립했지만, 여러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했다. 대부분 자국 물량을 소화한다는 점과 글로벌 시장에 끼칠 반향이 거의 없을 것이란 판단이 선 것이다.
이만큼 경쟁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한국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것을 두고만 볼 리 만무하다.
만약 EU나 일본에서 기업결합 심사를 거절한다면, 공정위 승인은 무의미하다. 이 경우 ‘메머드급 조선사’ 탄생은 물거품이 된다.
뉴스웨이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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