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2700억원 연부연납, 절반 가량 납부항공계열사 경영제한·배당 중단···자금부담 가중'알짜' 정석기업 지분 정리, 일시불로 현금 마련
24일 재계와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총수일가 4인은 지난 2019년 10월 고(故) 조양호 선대회장의 상속세로 약 2700억원을 신고하며 5년간 여섯 차례에 나눠내는 '연부연납 제도'를 신청했다.
조 회장과 모친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동생 조현민 ㈜한진 사장은 물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까지 오너가 4인은 법정 비율대로 상속받았고, 각자 부담해야 할 세금 규모는 670억원 안팎.
조 회장 일가는 오는 2024년 10월까지 상속세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해 10월까지 3차례 총 1350억원 가량의 상속세를 납부했고,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1350억원을 조달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현금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를 키운다. 조 회장을 제외한 오너일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M&A)에 따라 항공 계열사 경영에서 손을 뗐다. 코로나19 사태로 핵심 계열사 배당금도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돈 나올 구멍'은 점점 막혀가고 있다.
조 회장은 2020년 11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합병하겠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대한항공 모회사 한진칼 주식을 취득해 현금을 지원하고, 한진칼이 다시 이 돈으로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산은은 '이 고문과 조 사장은 항공 계열사 경영에 참여할 수 없다'는 확약 조건을 달았다. 외부 세력과 경영권 분쟁 중이던 조 회장은 우군 확보가 시급하다고 판단, 이를 수용했다.
이에 따라 이 고문과 조 사장은 그해 말 지주사와 항공 관련 계열사 임원직을 내려놨다. 이 고문은 대한항공 자회사인 한국공항 자문 역에서 물러났고, 부동산 임대업의 정석기업 사내이사만 맡고 있다. 조 사장은 한진칼과 토파스여행정보 임원을 포기했고, ㈜한진과 정석기업에서 직책을 보유 중이다.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계열사 임원을 겸직할 수밖에 없다는 오너가의 계획이 무산된 셈이다.
이들이 정석기업 주식을 처분한 것만 살펴보더라도,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정석기업은 사무실 임대와 관리, 용역 업무를 주요 사업으로 한다. 경기불황 등 외부 리스크에 둔감하기 때문에 알짜 계열사로 불렸다. 특히 2015년부터 주당 5000원의 고배당을 실시해 온 만큼, 자금 마련 창구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조 회장과 이 고문, 조 사장은 지난해 3월 정석기업 주식을 외부로 매각했다. 조 회장은 0.76%(9326주)를 처분해 약 30억원을 현금화했고, 이 고문과 조 사장은 주식 전량을 팔아 각각 271억원, 181억원을 마련했다.
두 모녀가 정석기업으로부터 매년 받아온 배당금은 각각 4억원, 3억원 수준이다. 당장 연간 배당금의 70배에 이르는 돈을 일시불로 가져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고문은 지난해 10월 한진칼 주식 65만주도 시간외매매로 매각했다. 처분단가는 5만3289원으로, 총 346억원이다. 조 회장이 산은과 체결한 확약에 따라 조 전 부사장을 제외한 조 회장 일가는 주식을 매도할 때 산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단순 시세차익 등이 아닌, 산은을 이해시킬 수 있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시기적으로 따져봐도, 10월은 연부연납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달이다.
가족들 중 그나마 현금 창출이 쉬운 조 회장도 자금력이 악화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 회장은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과 주력 계열사 대한항공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만큼, 매년 30억원의 급여를 수령한다.
하지만 조 회장은 지난해 7월 상속세 납부를 위해 지인에게 30억원 조달을 부탁했다. 이후 조 회장은 20일 만에 이자를 포함한 원금을 상환했다. 하지만 조 회장 당장 수중에 떨어지는 현금이 30억원도 안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경영권 분쟁으로 가족들과 척을 진 조 전 부사장의 상황은 더욱 나쁘다. 조 전 사장은 한진칼 경영권 분쟁이 종식된 지난해 3월 이후부터 주식을 정리해왔다. 지난해 현금화한 주식만 1300억원 어치에 달한다.
올해 계열사 배당금 규모가 소액이라는 점은 오너가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대부분 계열사의 영업환경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대한항공의 이익잉여금은 2020년부터 마이너스다. 이 시기 화물사업 호조에 힘입어 영업흑자를 기록했지만, 순손실은 누적되고 있다. 항공업 불황으로 주당 1만4000원을 지급하던 토파스여행정보도 2년 연속 무배당 가능성이 높다.
한진칼은 지난 3분기 별도기준 누적 매출은 전년 대비 30% 축소됐고, 영업이익은 반토막 났다. 당기순이익 역시 적자다. 잇단 계열사 지원으로 이익잉여금은 647억원 수준이다. 지난해 연간 잉여금이 1000억원대를 회복하더라도, 경영 불안정성을 이유로 무배당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한진은 코로나19 특수에 힘입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이익잉여금은 9000억원 안팎일 것으로 추산된다. 전년에는 주당 600원을 결산배당으로 지급했는데, 올해 배당금 규모를 대폭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조 회장 3남매가 보유한 ㈜한진 주식은 5000주 미만이다. 배당금을 1000원으로 전년 대비 67% 상향하더라도, 1인당 500만원 수준을 밑돈다. 이 고문은 ㈜한진 주식을 들고 있지 않다.
뉴스웨이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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