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금융당국, '취약차주 보호' 나섰지만 '빚 탕감' 정책에 형평성·모럴 해저드 논란 금융권, '리스크 관리'에 부담 우려 높아져
18일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은행권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내놓은 취약차주 보호 프로그램에 맞는 전략을 짜느라 고민에 빠졌다. 금융권은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대출 원금 면제가 이뤄질 경우 금융업계에 도덕적 해이 분위기는 물론 리스크가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지난 14일 열린 대통령 주재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정부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저신용자, 청년층 등 취약차주를 위한 각종 금융 지원책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청년 특례 프로그램'이 문제가 됐다.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주식·가상자산 등 자산 가격이 큰 폭으로 조정되며 투자 손실 등을 본 저신용 청년들을 위해 마련됐다. 만 34세 이하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채무 정도에 따라 이자를 30∼50% 감면하고, 최대 3년간 원금 상환유예를 하면서 해당 기간 이자율을 3.25%로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최대 90%까지 원금을 탕감해주는 '새출발기금' 역시 '성실하면 손해본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근까지 소상공인에 공급한 금융지원액은 최소 24조5000억원에 달한다.
정책이 발표되자 마자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성실히 노동(근무)하면서 빚을 갚아온 시민들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반발도 적지 않다. 이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취약계층에 대해서, 더군다나 2030 세대는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갈 미래의 핵심"이라며 "이들이 재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빨리 마련해 주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나중에 부담해야 할 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빚을 안 갚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차원이 아닌 정상적으로 채무를 이행할 수 없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대책으로 해석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같은 뜻을 밝혔다. 이 원장은 15일 외국계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소상공인이라든가 2030 청년들이 일시적인 외부 충격으로 인해 단기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넛지(Nudge)' 같은 형태로 조금의 도움을 줘 생태계의 일원으로 남도록 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 측면과 꼭 상충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은행권의 고민은 깊어지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민간 금융사의 팔을 비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들의 의무인 리스크 관리를 넘어서는 과한 정책을 압박해 오히려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오는 9월 말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의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종료 후 대출 소상공인들이 원할 경우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대출 만기나 상환 유예를 연장해줄 수 있도록 유도한다고 밝혔다. 은행이 자율적으로 90∼95% 수준까지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해주는지를 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점검단을 가동한다. '자율적'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상 유예를 해주라는 뜻으로 읽혀서다.
부실 가능성이 큰 소상공인들의 이자 유예를 하게 되면 그만큼의 리스크가 커지는 것이어서다. 당장 이자를 내지 못하는 소상공인의 경우 이자 유예가 의미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리스크 관리'"라면서 "정부와 금융당국은 리스크 확대를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취약차주 보호의 뜻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금융 형평성에 맞아야 한다"면서 "당분간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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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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