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설립 84년 업력의 '한국 최초 조선소''중형사' 태생적 한계 그동안 특수선 중심 영업작년 새주인 맞아 '상선시장 재진입' 비전 수립친환경선 니즈 확대에 중형선 수요 덩달아 늘어 英 LR과 LNG 이중연료 추진 컨-선, 수주로 연결1년 안 돼 8척 수주, LPG·수소 연료 개발도 돌입
지난 13일 부산 영도구 HJ중공업 선박건조현장. 비가 쏟아질 듯 구름이 낀 하늘은 어두컴컴했고, 후덥지근 날씨 때문에 피부에 닿는 공기는 끈적끈적했다. 이따금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이 잠시나마 더위를 식혀줬다.
야드(작업장)에는 선체를 이루는 블록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HJ중공업 영도사업장은 총 26만4000㎡(8만평) 부지에 4개의 도크(선박 건조장)를 가지고 있다. 일제시대 당시 지어진 1도크는 규모가 협소해 HJ중공업이 강점을 가진 중소형 선박을 건조하기에도 빠듯했다. 회사는 이곳을 메우고 블록 조립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230m 길이의 2도크와 각각 300m의 3·4도크에서는 중형 컨테이너선에 속하는 6000TEU(1TEU는 6m여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선박을 건조할 수 있다.
선각공장에서는 기계들이 굉장한 소음을 내며 넓적한 철판과 기다란 철판을 작업장으로 이동시켰다. 한 여름이지만 긴팔과 장화, 안전모로 무장한 직원들은 불꽃과 소음을 내며 작업에 열중했다. '선각'은 선박을 조립하기 위한 가장 첫 과정으로, 배의 골격을 만들기 위해 철판을 자르고 용접한다.
지난해 10월 수주한 5500TEU급 컨테이너선 4척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2억7000만 달러 규모의 이번 수주는 HJ중공업이 동부건설 컨소시움으로 인수된 이후 처음으로 수주한 상선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통상 선사에 선박을 양도하기까지 15개월 가량 소요되는 만큼, 예상 인도 시기는 2024년 상반기부터다. 제대로 된 배의 모습을 갖추려면 올해 하반기 늦게나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소 내 안벽에는 10여척에 달하는 특수선이 빼곡히 계류해 있었다. HJ중공업이 선박 건조를 마치고 진수하면, 각종 운항 장비와 무기류를 장착하는 후속작업이 이뤄진다. 이 작업이 마무리돼야 인도가 가능하다. HJ중공업 관계자는 "2016년 채권단과 자율협약(공동관리)을 맺은 이후 해군 함정과 관공선, 탐사선 등 특수선을 중심으로 영업을 펼쳐왔다"며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했다.
HJ중공업은 84년의 긴 역사만큼이나 굴곡진 시간을 보내왔다. 일제강점기이던 1937년 '조선중공업'으로 설립된 HJ중공업은 해방 후인 1949년 '대한조선공사'로 사명을 바꾸며 국영기업이 됐다. 1989년 한진그룹에 편입되며 '한진중공업'이 됐고, 지난해 동부건설 컨소시엄으로 최종 인수되며 'HJ중공업'으로 재탄생했다.
조선업계 개척자 역할을 자처한 HJ중공업은 국내 최초 수출선 건조, 국내 최초 국산경비정 건조, 국내 최초 석유시추선 수출 등의 기록을 세웠다. '동양 최초'로 액화천연가스(LNG)선을 만들기도 했다. HJ중공업이 지금까지 건조한 선박수는 다 세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연달아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와 조선업황 한파를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HJ중공업이 중형 조선사라는 태생적 한계도 이 같은 위기를 고조시켰다. HJ중공업은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이른바 '빅3 조선사'와는 차이를 가진다. 이들 조선 3사는 규모의 경제를 갖췄고, 500m 길이의 도크를 보유하고 있어 초대형 선박 건조가 가능하다.
HJ중공업은 적자 누적으로 유동성 위기가 확대된 2016년 채권단과 자율협약(공동관리)을 맺었다. 특수선을 주력으로 하는 사업재편에 나선 것도 이 때부터다. 2020년부터 본격적인 매각 작업이 시작됐고, HJ중공업은 약 1년 간의 과정을 거쳐 새 주인 품에 안겼다. 주요 경영진도 바뀌었다. 지난해 9월 선임된 홍문기 대표이사 사장은 '특수선 수주 확대'와 '상선 시장 재진입'이라는 비전을 세웠다.
HJ중공업의 재도약 의지는 사명 교체에서 엿볼 수 있다. HJ는 기존 한진중공업의 정통성과 연상 효과를 유지하면서, '100년 기업'을 향해 나가겠다는 'The Highest Journey'(위대한 여정)의 약자이기도 하다. 새 CI는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모티브로 형상화하며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과 미래비전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공업 기업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새 둥지를 튼 HJ중공업을 향한 기대감은 고조되는 분위기다. 글로벌 시장에서 친환경선 니즈(수요)가 점차 확대되면서, 친환경 대형선 뿐 아니라 중형선 계약도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HJ중공업은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총 8척의 일감을 확보했고, 옵션 계약이 발효될 경우 추가 수주도 가능하다.
우선 지난해 말 수주한 4척의 컨테이너선은 친환경선으로, 에너지 절감과 온실가스 배출 감축 효과가 특징이다. 올해 3월에도 1억5000만달러 규모의 5500TEU급 컨테이너선 2척의 건조 계약을 체결했는데, 최첨단 사양의 친환경 컨테이너선이다. 지난달에는 7700TEU급 LNG 이중연료 추진 컨테이너선 2척을 수주했다. 계약금액은 2억4000만달러다. 특히 반복건조로 설계기간 단축과 작업자의 숙련도 증가, 공정 최적화 등으로 생산성 향상과 수익성 증대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HJ중공업은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환경규제 강화와 세계적인 친환경 선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수년간 주력 선종의 배출가스와 연료비 절감을 목표로 친환경 연료 연구개발을 진행해 왔다. 이중연료 추진선에 대한 엔진 배치 효율 연구와 최신 선형 설계를 개발하는 등 복합 추진 방식을 적용한 친환경 선박 기술 상용화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영국 'LR선급'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HJ중공업은 LNG 이중연료 추진 컨테이너선 설계를 담당했고, LR은 설계 도면에 대한 검토와 승인 역할을 맡는 등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지난 4월에는 LR로부터 7700TEU급 컨테이너선 기본설계 승인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HJ중공업이 개발한 LNG 이중연료 추진 7700TEU급 컨테이너선은 전장 272m, 운항속도 22노트로 최신 선형 기술을 적용해 높은 연료 효율을 확보했다. 연료 탱크를 GTT Mark III 멤브레인 탱크를 적용, 6000㎥에 달하는 저장 용량을 확보하면서도 최적 배치로 컨테이너 적재량을 극대화했다.
액화석유가스(LPG)와 수소 연료 관련 연구도 진행 중이다. 유럽 한 선사와는 LPG 연료 추진 상선 개발에 관한 계약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과제지만, 지난해부터 '중견조선소용 LNG추진 선박 및 성능 해석 시스템 개발'과 '선박용 수소 저장용기 및 연료공급시스템 안전기준 개발'을 위한 연구에도 돌입했다.
HJ중공업 관계자는 "탄소중립 시대에 발맞춰 선주사의 요구에 적극 부응할 수 있도록 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 개발과 수주에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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