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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라면은 '밀'로만 만드는 게 아닙니다

오피니언 기자수첩

라면은 '밀'로만 만드는 게 아닙니다

등록 2023.06.20 15:49

수정 2023.06.2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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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er
정부가 식품 가격 인상에 또 한 번 제동을 걸었다. 밀 가격이 내렸으니 라면값도 인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연일 시장 원리를 강조하지만 서민 먹거리에서만큼은 물가 안정화를 위해 적극 개입해 주는 모습이다. 그런데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라면은 '밀'로만 만드는 게 아니어서다.

지난 18일 추경호 부총리는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난해 라면값이 많이 올랐는데 밀 가격은 그때보다 50% 떨어졌다"며 "이에 맞춰 기업들이 가격을 내리는 식으로 대응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라면 같은 품목의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해 나가는 것이라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소비자단체가 적극적으로 견제하는 등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농심과 오뚜기 등 라면 제조사는 지난해 9~11월 원가 상승을 이유로 라면 판매가를 9.7~11.3% 올렸다.

밀 선물가격이 4∼6개월 후 밀 수입 가격에 반영되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밀 수입 가격은 t당 275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추 부총리 말대로 사상 최고치였던 496달러(지난해 9월)에서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밀 가격이 라면 원가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라면회사는 '밀'이 아니라 '밀가루'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밀을 수입하는 주체는 제분사다. 제분사가 원맥(빻지 않은 밀)을 제분해 밀가루로 만들면 라면회사는 제분사와 통상 6개월~1년 단위로 계약을 맺고 밀가루를 공급받게 된다. 현재 라면 회사는 6개월~1년 전 가격으로 밀가루를 공급받고 있다는 뜻이다.

또 라면엔 밀가루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대표적 재료가 설탕이다. 최근 '슈가플레이션(설탕+인플레이션)'이란 신조어가 생길 만큼 설탕 가격은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거기에 전기와 수도세, 인건비까지 줄줄이 오른 상태다.

라면업계 한 관계자는 "서민 음식으로 꼽히는 라면 특성상 정부와 여론을 의식해 고민하고 고민하다 가격을 올린 상황"이라며 "다각도로 검토해 보겠지만 당장 가격 인하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국 추 부총리의 말은 라면을 '원맥'으로만 만든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라면 제조 과정, 밀 가공 과정, 라면사와 제분사 간 공급 관계 등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소한의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않은 발언은 또 다른 무책임함으로 이어졌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라면회사들은 정부로부터 어떤 요청이나 통보도 받지 못한 채 방송과 기자들을 통해 추 부총리의 발언을 접했다. 관계자들은 놀라움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식품업계 가격 인상에 제동을 건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9월과 올해 2월 주요 식품업체 관계자들을 불러들여 가격 인상 자제를 당부했다. 형식은 요청이지만 사실상 압박이나 다름없었다.

'이쯤 되면 식품업계가 만만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업계에서 나온다. 왜 식품업계만 희생을 감내해야 하냐는 지적이다.

실제 올 1분기엔 원부자재 가격 상승 영향으로 주요 식품업체 16개 회사 중 10곳의 영업이익률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일각에선 라면회사가 단가 인상을 통해 영업이익을 높였다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단가 인상 영향은 부정할 수 없지만, 영업이익과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예가 삼양식품이다. 삼양식품은 올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 2455억원 중 64.3%(1579억원)를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며 시장 논리를 부각하고 있으나 '선택적 시장경제' 행보를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정권하의 시장경제 체제를 보고 있자면 기업에 대한 국가 개입이 지나치게 행해지고 있다는 감상을 지울 수 없다.

뉴스웨이 유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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