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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파업은 옛 말"···완성차 노사관계 새 시대 열렸다

산업 자동차

"파업은 옛 말"···완성차 노사관계 새 시대 열렸다

등록 2023.10.18 14:26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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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 사 이어 기아 노사도 임단협 잠정 합의KGM 14년, 현대차 5년 연속 무분규 달성전동화 전환‧경쟁 심화에 노사 상생 모드 조성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지난 20여년간 경직됐던 완성차 업계의 노사관계가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2019년 이후 대부분의 업체가 무분규 기록을 이어가면서 파업은 옛말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동화 전환 등 산업 패러다임 급변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노사의 교섭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18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지부는 전날 진행된 16차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 사측과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오는 20일 진행될 찬반투표에서 조합원 과반이 찬성하면 기아는 3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미 현대차와 한국GM, KG모빌리티, 르노코리아자동차는 이미 임단협을 마무리한 상태다. 기아까지 교섭을 끝내면 완성차 업계는 파업리스크에서 벗어나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국내 완성차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전 국민적인 비판을 받아왔다.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매년 파업에 나선다는 이유에서다. '귀족노조' 프레임에 갇힌 노조의 반복된 파업은 국민적 공감을 얻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25년간 파업···생산 차질로 성장 발목
완성차 노조의 파업 역사는 아시아 외환위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측이 인적 구조조정을 시도하자 노조는 파업으로 대응했고, 이후부터 노사갈등과 파업이 이어져 왔다. 1996년부터 2019년까지 25년간 현대차 노조가 파업하지 않은 기간은 3년(2009~2011년)뿐이다.

매년 여름마다 노조의 '하투(夏鬪)'가 이어지면서 완성차 업계의 3분기 실적은 늘 안갯속이었다. 실제로 지난 2016년과 2017년 현대차의 파업으로 인한 손실 대수는 각각 14만2000대, 8만9000대에 달한다. 이에 따른 손실액은 무려 3조1000억원, 1조890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인 2019년부터 완성차 노사의 교섭문화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특히 KG모빌리티 노사는 지난 2010년 이후 14년 연속 무분규 달성이라는 대업을 이뤘다. 쌍용차 시절인 2009년 '옥쇄파업' 이후 금속노조를 탈퇴한 KG모빌리티 노조는 모범적인 선진 노사문화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년 임금협상을 속전속결로 끝낸 KG모빌리티는 올해 상반기 7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도 2019년부터 5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이어갔다. 특히 올해는 반도체 공급난에 따른 생산 차질에 벗어나 역대 최대 실적을 내고도 노사가 빠르게 합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는 평가다.

금속노조 소속인 한국GM 노조 역시 3년 연속 무분규 타결 기록을 세웠다. 한국GM 노조는 1차 잠정 합의안을 부결시키고 파업을 추진했지만 2차 잠정 합의안은 전체의 57.3%가 찬성하며 가결됐다.

지난 2021년 파업에 나섰던 르노코리아 노조도 2년 연속으로 분규 없이 임단협을 마쳤다. 강성성향의 집행부가 들어선 2019~2021년을 제외하면 르노코리아 노사는 대부분 무분규로 임금협상을 타결해 왔다.

전동화 전환에 생산직 20% 감소 전망···고용안정 공감대
이렇듯 완성차 노조들이 파업 깃발을 내려놓은 배경으로는 산업 패러다임 전환이 첫손에 꼽힌다. 전동화 전환과 글로벌 경쟁 심화 등으로 위기감이 조성되면서 생산성 강화와 미래 먹거리 확보에 사측과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얘기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전기차의 부품 수는 내연기관차의 64% 수준인 1만8900개에 불과하다. 복잡한 엔진 대신 배터리와 모터가 적용돼 생산직의 숫자는 최소 2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사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이에 완성차 노사는 올해 임단협에서 임금인상뿐만 아니라 고용안정과 미래 경쟁력 강화에 공동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르노코리아는 지난 2월 회사의 미래 청사진 완성을 위한 노사 상생 공동 노력 선언문을 함께 발표했고, KG모빌리티도 경영정상화를 위한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에 뜻을 모았다.

특히 현대차와 기아는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방안을 합의서에 함께 담았다. 미래 동반성장 특별협약을 체결한 현대차 노사는 2026년 하이퍼캐스팅을 도입해 전기차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대규모 알루미늄 주조 프레스를 도입할 계획이다. 특히 현대차 노조는 정년 연장(60세→64세) 요구를 정부 정책의 변화와 사회적 인식 변화를 지켜본 후 추후 의논하기로 했다.

또 기아 노사는 사회적으로 '고용세습'이라 비판 받아온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채용 조항을 개정하고, 청년실업 난 해소를 위해 300명의 신규인원을 채용하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현재 진행 중인 신공장의 성공적인 건설 및 양산에도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노사는 신사업 및 미래 차 핵심부품에 대한 국내 투자 확대, 미래 사업 전환에 따른 국내 물량 확보와 고용안정도 함께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완성차공장의 은퇴 인력 증가와 함께 25년간 지속된 노사 리스크가 해소되는 중"이라며 "이제는 파업하는 것이 더 이상해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지난해 10만대 규모의 울산 전기차 공장 신설을 결정한 현대차는 테슬라의 기가캐스팅을 벤치마크해 하이퍼캐스팅 생산설비에 투자할 예정"이라며 "제네시스와 픽업 전기차 등 대형차를 위한 하이퍼캐스팅은 현대차가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중소형 전기차는 차체‧섀시 부품사가 담당하는 방식으로 원가절감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산업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미래 차를 둘러싼 글로벌 업체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노사가 미래 발전과 고용안정을 위해 교섭의 틀을 바꾼 모습"이라며 "파업리스크에서 벗어난 완성차 업계는 경영 목표 달성과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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