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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해외선 필수인 공사비 절감방법 'VE' 국내선 안 되는 이유

부동산 도시정비 NW리포트

해외선 필수인 공사비 절감방법 'VE' 국내선 안 되는 이유

등록 2024.03.27 13:49

수정 2024.03.28 08:18

장귀용

  기자

곳곳서 공사비 협상 파열음···시공사‧조합임원 해임 '극단사례'도전문가들 "설계‧시공서 VE로 효율 극대화···국내선 걸음마 수준"험난한 설계변경 ‧ 주먹구구 현장 ‧ 인색한 발주자에 선진화 '발목'

사진=강민석 기자 kms@newsway.co.kr사진=강민석 기자 kms@newsway.co.kr

"해외에선 비용대비 효율을 높이기 위해 VE 작업이 필수적으로 들어갑니다. 국내에선 2000년에 제도를 도입했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전직 대형건설사 임원 A씨)

건설원가 상승으로 인한 공사비 인상 여파가 건설업계와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 추진 단지를 옭아매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사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VE절차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공사비 인상 두고 갈등 심화···정부 조치도 '속수무책'



최근 주택사업 현장에선 공사비 갈등을 빚는 곳이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공사비에 대한 이견으로 부동산원에 검증을 맡긴 현장은 30건에 달한다. 공사비검증을 의뢰한 현장은 제도가 처음 도입된 2019년 3건에서 ▲2020년 13건 ▲2021년 22건 ▲2022년 32건으로 매년 늘었다.

업계관계자들은 그나마 공사비 검증을 접수한 현장은 협상이 원활한 곳이라고 말한다. 일부 현장에선 공사비 인상 자체를 거부하기도 하고 시공사와 계약을 해지하거나 조합임원을 해임하는 등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도 많다는 것.

실제로 부산 부산진구 범천 1-1구역은 공사비 인상을 둘러싼 내부 갈등으로 조합임원이 해임되는 일이 벌어졌다. 표면상으로는 응찰가격이 높았던 도로기반시설업체를 선정해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 해임사유였지만, 조합 안팎에선 7000억원 가량의 공사비 증액이 도화선이 됐단 시각이 지배적이다.

갈등을 빚는 현장이 늘어나자 정부와 지자체에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마련에 나서는 모양새다. 국토부는 지난 1월 공사계약 체결·변경기준을 명확히 한 표준계약서를 배포했다. 서울시도 이를 바탕으로 한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서울시는 지난 11일부터 22일까지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갈등을 빚고 있는 사업 8곳에 대한 현장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다만 업계에선 이러한 조치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공사비 갈등 대부분이 근거나 타당성에 대한 다툼보단 사업절차에 대한 이해부족이나 단순한 거부감에서 비롯하는 측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건설업계에선 통상적으로 시공사 선정 당시 계약을 가계약으로 삼는다. 이후 착공 전에 소비자물가지수 등을 반영해 공사비를 올려 변경계약을 맺는다. 그러다보니 비전문가인 주민들은 변경계약과정에서 올라가는 공사비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때가 있다.

업계관계자는 "현재 대부분의 재개발‧재건축 현장은 표준계약서를 바탕으로 계약을 작성한다. 계약상 문제는 크게 없는 셈"이라면서 "다만 공사비 인상폭이 워낙 크다보니 조합원들의 거부감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

공사비 인상은 불가피···대안은 VE 통한 절감



업계관계자들은 공사비 인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항변한다. 원자재가격과 인건비가 급등한데다 고금리로 인한 금융비용도 커져 원가가 많이 올랐다는 것. 각종 안전관련 규제로 공사기간이 길어진 것도 비용을 증가시킨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직접비용을 수치화 한 건설공사비지수를 보면 원가 부담이 크게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설공사비지수는 매년 12월을 기준으로 ▲2020년 121.80에서 ▲2021년 138.89 ▲2022년 148.56 ▲2023년 153.22로 매년 10% 이상 급격히 올랐다. 건설공사비지수는 2015년을 100으로 두고 건설원가 부담정도를 수치화한 것이다.

그래픽=장귀용 기자그래픽=장귀용 기자

전문가들은 설계와 시공과정에서 VE(가치공학)적 검토를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VE는 기능과 자재, 시공난이도, 에너지효율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개선방안을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계획부터 시공까지 전 과정에 걸쳐 아낄 수 있는 비용을 찾아내거나, 비슷한 비용으로 더 좋은 품질과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설계과정에서는 공학적 검토를 통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구조검토를 통해 과도하게 설계한 부분을 고쳐 자재비를 줄이거나, 시공이 편한 방법을 찾아내 공사기간을 줄이기도 한다. 가령 기둥과 보에 철판을 덧대는 방법으로 하중을 보강해 타설할 콘크리트의 양을 줄이는 식이다.

시공단계에서는 공정관리가 대표적인 VE활동으로 꼽힌다. 자재 공급과 이에 맞춘 인력을 투입하는 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비용과 공사기간을 줄이는 것이다. 전직 대형건설사 임원 A씨는 "현장을 가보면 CM(건설관리)와 감리가 하는 일에 큰 차이가 없다"면서 "제대로 된 CM이라면 시공과정에서의 VE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여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해외에 비해 국내의 VE는 걸음마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냉정한 평가다. 국내에서도 2000년에 VE제도를 도입하고 공공분야를 중심으로 절차를 도입했지만 시장이 크지 않고 민간시장에선 아직 제대로 도입조차 안 되고 있다는 것.

설계사무소를 운영 중인 B씨는 "해외 건설업체는 한 개 프로젝트에서 설계와 VE로만 수천억원의 실적을 올린다"면서 "반면 우리나라 건설업체는 난이도가 낮고 인력을 집중하는 시공파트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VE 자리 잡기엔 여전히 후진적 업태···개선방안은?



국내 건설환경이 VE가 자리 잡기 힘든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VE가 작동하기엔 그 권한이 제한적인데다, 수행업체에게 돌아가는 수익도 경우도 크지 않다는 것.

전문가들은 VE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초기 설계부터 VE 담당자가 관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초기 단계에 개입하지 않으면 설계의 이유와 배경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어 손을 대기 힘들기 때문이다. 설계변경을 위한 행정절차도 까다로워 처음 설계에서 큰 변화를 주기도 어렵다.

반면 초기 단계부터 VE를 적용하면 비용절감 효과가 커진다. 기본설계 이후 VE를 진행하고, 실시설계 단계에서 다시 VE를 진행해 이중삼중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선 필수인 공사비 절감방법 'VE' 국내선 안 되는 이유 기사의 사진

시공과정에서 설계도면과 시방서를 따르지 않는 현장 관행도 VE를 정착시키기 어렵게 만든다. 공학적인 검토를 통해 철근과 콘크리트 등 자재의 투입량과 위치를 조정해놓았는데, 현장에선 다르게 시공하는 바람에 균열이나 붕괴 등 문제가 생긴다는 것.

부실시공이나 오(誤) 시공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부족하다. 설계에 따른 시공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선 설계자가 직접 현장을 관리감독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현행법엔 감리나 CM을 선정 할 때 설계에 참여한 자를 배제하고 있다. 발주처와 설계자가 고의로 자재를 누락시키는 등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지만, VE 적용에는 독소조항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상이 적은 것도 VE 시장이 커지지 못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최근 VE 관련 발주를 한 조합들의 공고에 따르면 서울 내 1000가구 내외의 단지에서 VE 관련 비용으로 책정한 용역비는 5억~10억원 수준이다. 전체 사업비의 0.1% 수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인센티브제를 도입하면 업체들의 참여의향이 높아지고 절감금액도 커질 것이라고 조언한다. 설계업계 관계자는 "현재 VE를 통해 절감액의 최대 70% 수준까지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법이 마련돼 있다"면서도 "공공공사에선 발주청의 눈치를 보느라 저가 입찰을 하는 경우가 많아 VE를 적용하기 어렵다. 민간공사에선 인센티브를 주는 곳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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