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연체율 6년 9개월 만에 최고치고환율·경기침체에 연체율 지속 상승 전망 전문가 "동태적 대손충당금·관계형 금융 필요"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은행권 기업대출 연체율은 0.61%로 전달 대비 0.11%포인트(p) 높아졌다. 대기업 대출 연체율은 0.05%로 비교적 양호했으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0.77%), 한달 만에 0.15%p 상승했다. 이는 2017년 5월(0.85%) 이후 6년 9개월 만의 최고치다.
중소기업 연체율은 코로나19 금융지원이 종료된 이후 꾸준히 오르는 추세다. 1년 전에 비해서도 0.17%p 높아졌고, 2년 전(0.39%)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아직 집계되진 않았지만 2월 연체율은 1월보다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대출 부문의 연체율 급등으로 국내 은행들의 자산건전성 지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부실채권 규모(고정이하여신)는 2024년 말 기준 5조5807억원으로, 1년 새 1조 원 이상 급증했다. 부실채권으로 분류되는 무수익여신(이자 미수입 대출)도 같은 기간 24% 늘어나 4조3000억원을 넘어섰다.
고환율·수출둔화에 부실채권 급증···자본비율도 하락 압박
기업대출 연체율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배경에는 복합적인 대내외 요인이 자리한다. 국내외 경기 둔화로 기업 매출이 감소하고 한계기업이 늘면서 채무 상환 능력이 약화된 점이 첫손에 꼽힌다. 특히 고물가와 고금리로 소상공인·중소기업의 경영 부담이 커지면서 폐업과 도산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중 무역갈등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기업들의 상환능력을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상호관세 부과 등으로 수출로 먹고사는 제조업·부품업체 등의 경영 환경이 악화됐다는 평가다. 주요 교역국의 수요 부진과 공급망 불안으로 중소 수출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무역분쟁이 고조되면서 위험통화인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미국 상호관세의 정식 발효를 앞둔 지난 9일 원·달러 환율은 1480원대를 넘어서며 2009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치솟았다. 원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기업의 수입원자재 비용이 상승하고 외화부채 상환 부담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
환율 급등은 기업의 실적뿐만 아니라 은행 건전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원화가치 하락으로 은행들의 외화자산 규모가 불어나면서 RWA가 늘고, 그 결과 BIS 자본비율 하락 압력이 높아지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4분기 국내은행들의 보통주자본비율은 환율 상승 영향으로 분모인 RWA가 늘어나 전 분기 대비 0.26%p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금감원은 "고환율 지속과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신용손실 확대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은행들의 자본여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도 한국 은행산업의 전망에 우려를 나타냈다. 무디스(Moody's)는 한국 은행업 전망을 '부정적'으로 유지하며 앞으로 12~18개월 동안 경영환경과 자산건전성, 수익성이 모두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무디스는 지난달 13일 '한국 은행시스템 전망 부정적 전망 유지' 보고서에서 "국내 소비 부진, 건설업 침체, 수출 성장 둔화 등의 요인으로 올해 내내 대출 연체율이 상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실채권 정리와 여신심사 강화로 대응나선 은행들
이에 은행들은 자산건전성 관리를 위해 서둘러 대응에 나서고 있다. 우선 연말부터 부실화된 대출채권을 적극 상각 및 매각해 연체율을 관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약 4조원에 달하는 부실채권을 정리하며 연체율을 낮췄으나 1월에는 정리 규모가 1조원대로 줄면서 연체율이 다시 상승한 바 있다.
또한 은행들은 신규 부실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여신 심사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 대한 대출을 보수적으로 운용해 부실 증가 속도를 통제하기 위한 조치다.
통상 1분기 결산이 끝나는 4월부터 금융권은 기업 신용도 재평가에 돌입한다. 4월부터는 연체율이 높은 업종이나 한계기업에 대해 대출 만기 연장이나 신규 자금 지원에 보다 신중을 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까지 은행들이 사상 최대 이익을 내며 완충자본을 상당 수준 확보한 만큼 당국의 적극적인 감독 하에 현 상황을 버텨낼 여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도 있다. 올해 1분기에도 주요 은행들의 수익성이 양호할 것으로 예상돼 이익 증가를 통한 자본 보강이 가능할 전망이다.
관건은 실물경제 회복···은행 대출 포트폴리오도 다변화돼야
결국 관건은 실물경제가 얼마나 회복될 수 있느냐다. 연체율 급등으로 촉발된 은행권 건전성 악화 우려가 향후 현실화되지 않도록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와 경제 활력 제고를 통한 악순환 차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뉴스웨이와의 통화에서 "내수기업들은 경기에 민감하고 수출기업들은 환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내수 활성화와 더불어 선도환거래를 통해 환율 리스크를 줄여주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은행들은 경기 변동성에 따라 예상되는 대출 위험을 미리 고려해 충당금을 적립하는 '동태적 대손충당금'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대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집중리스크'를 줄이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관계형 금융'을 활성화해 부실을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pkb@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