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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ESG 스완의 경고

등록 2025.09.22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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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스완의 경고 기사의 사진

연쇄적 사건, 그 뒤에 숨은 진실

한국 주요 기업들이 연이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올해 5월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여성 종업원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7월에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협력업체 소속의 60대 남성 종업원이 배관 철거 중 추락해 사망했다. 기업 내 안전불감증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들이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SK텔레콤에서 2600만건의 고객 유심 정보가 해킹당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부터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 1,347억을 부과받았다. KT 역시 웹하드 이용자 PC 해킹으로 고객 정보 유출 사건이 터졌다. 최근에는 롯데카드가 외부 해킹으로 297만명의 고객 정보가 털렸다. 통신과 금융 섹터에서 고객들의 개인 정보가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산업재해와 정보 유출, 언뜻 전혀 다른 내용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사고들은 하나의 공통된 뿌리를 가지고 있다. 대다수 한국 기업들에 뿌리 박힌 反 ESG경영 패러다임의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라는 점이다.

탄소만이 ESG는 아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에는 ESG 열풍이 불었다. 이상했다. ESG가 마치 '기후변화 대응'의 다른 말인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RE100이 키워드로 부상했다. 기업들은 앞다투어 탄소 저감 정책을 발표하고, 재생에너지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물론 기후변화 대응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균형 잡힌 발전을 의미한다.

사회(S) 영역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종업원 안전과 고객 정보를 지키는 보안 영역이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기업들이 여전히 안전 관리를 비용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고객 정보 보안에 대한 투자도 비용으로 인식한다. 특히 금융과 통신 섹터에서 정보 보안 사고는 기업의 존립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치명적 리스크임에도 사후약방문식 대처에 머물고 있다.

나는 이를 'ESG 스완(ESG Swan)'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심 탈레브의 블랙스완처럼 예측하기 어렵지만 일단 발생하면 기업에 치명타를 가하는 ESG 관련 위기들 말이다.

변화하는 기업 생존의 조건

기업 경영의 범위는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좋은 제품을 만들어 널리 팔면 된다'는 단순 논리가 통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소비자들은 기업 이미지, 명성(Reputation), 브랜드 가치를 중시하고, 투자자들은 ESG 성과를 평가와 투자의 잣대로 삼기 시작했다. 규제당국은 환경, 안전, 정보보호, 투명성에 대한 기준을 계속 높이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의 성공 사례를 보면 이런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한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2020년 마이크로소프트는 2030년까지 탄소 중립을 넘어 '탄소 네거티브'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동시에 강력한 사이버보안 체계를 구축해 클라우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유니레버는 '지속가능한 생활 계획(USLP)'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경영의 핵심으로 설정함은 물론, 이를 치밀하게 경영에 내재화하며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단기 성과주의의 함정

그렇다면 왜 한국 기업들은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을까? 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일층 한국기업을 지배하는 단기 성과주의 때문이다. 반면 ESG 경영은 당장의 비용 증가를 의미하기에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안전설비 확충, 정보보안 시스템 강화, 환경친화적 생산공정 도입, 탄소 저감 시설 투자 등은 당기 순이익을 제한할 수 있다. 분기 실적에 매달리는 경영진은 이런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근시안적 사고다. 산업재해로 인한 법적 처벌 및 사회적 신뢰 실추,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배상책임과 고객 이탈은 비용 절약으로 얻는 단기 이익을 훨씬 넘어선다. SK텔레콤에서 보듯 고객 이탈로 인한 매출 감소, 천문학적 규모의 과징금은 결국 주주이익도 훼손한다.

한국형 ESG 자본주의를 향하여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양극화, 저성장, 청년실업, 노동시장 이중구조, 지방 소멸 등의 구조적 문제들도 결국 단기 성과주의적 기업 경영과 무관치 않다. 단기주의에 매몰되어 주주 이익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경영 방식은 주주 이외의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후생과 지속가능성을 저해하고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대다수 주주들은 주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특정 기업의 종업원이기도 하고, 여러 기업들의 고객이기도 하고 지역사회 구성원이기도 하다. 이처럼 주주와 이해관계자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얽히고 섞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다. 주주자본주의 2.0, 즉 ESG 자본주의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주주 이익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장기적 관점에서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면서도 동시에 이해관계자들도 배려하는 경영을 하자는 것이다. 그럴 때 장기적 주주이익은 더욱 지속가능하게 커나갈 가능성이 높다.

정부 역시 이런 변화를 뒷받침할 정책 프레임워크를 마련해야 한다. 단순한 규제나 처벌을 넘어서, ESG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들이 실질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인센티브 체계가 필요하다. 자본시장의 ESG투자 확대를 통한 기업의 자본비용 감소, 다층적 세제 혜택, 정책 금융 지원, 공공조달 우대 등 다양한 정책 수단들을 통해 ESG 경영이 우리 사회와 기업 내에 착근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 기업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ESG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생존조건이라는 것, ESG 스완은 언제든 날아와 준비되지 않은 기업을 강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사건들이 한국 기업들에게 경영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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