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 증가율 1% 미만···주담대 둔화세 뚜렷내년부터 주식 위험가중치 250% ···자본여력 숨통규제 완화에도 성장 불투명···건전성 우려는 확대
2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7월 4조1400억원에서 8월 3조9300억원, 9월 1조2000억원으로 석 달 연속 줄었다.
특히 전세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7월 4조5500억원, 8월 3조7000억원에서 9월 1조3100억원으로 크게 축소됐다. 지난달 신용대출도 –2700억원을 기록해 감소세로 전환했다. 대출 증가의 대부분이 주담대에 집중됐지만 이마저도 전월 대비 증가폭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대출 총량 규제의 영향으로 은행들은 연말로 갈수록 추가 대출을 더욱 억제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의 과도한 확대를 막기 위해 매년 은행별로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를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총량 한도를 넘길 경우 당국 제재나 영업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연말에는 남은 여력을 계산하며 대출 취급을 보수적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다.
이사 수요가 줄어드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대출 수요 자체도 약화될 전망이다. 연말에는 주택 매매와 전세 수요가 감소하는 계절적 특성이 나타난다. 여기에 가계소득 부진과 소비 위축까지 겹치면서 은행권은 연말까지 대출 수요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6·27 대책을 통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제성장률 수준(약 3~4%)으로 묶어두겠다고 밝힌 만큼 4분기 가계대출 성장여력은 사실상 남아있지 않은 셈이다.
이 같은 대출 부진 속에서 금융당국은 최근 위험가중치 조정안을 확정하고 은행 자본 건전성 규제를 완화했다. 이르면 내년 1분기부터 적용되는 새 기준에 따르면 국내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분의 위험가중치 하한은 현행 15%에서 20%로 조정된다. 이는 주택금융 비중이 높은 은행의 자본부담을 일정 부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반대로 은행이 보유한 비상장주식에 대해서는 기본 위험가중치를 400%에서 250%로 낮추되 단기매매나 벤처투자처럼 변동성이 큰 자산만 기존 400%를 유지하기로 했다. 업력 5년 이상 비상장주식은 일률적으로 250%가 적용된다. 여기에 정책 목적의 펀드에는 100% 특례를 명확히 적용해 펀드 투자자산에 대한 위험가중치도 합리화했다.
총자본비율 0.24%p 개선 기대···추가 대출 여력 확보
규제 변화가 시행되면 은행들은 같은 자본으로 더 많은 대출을 취급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게 된다. 금융당국은 은행 전체의 BIS 총자본비율이 약 0.24%포인트 개선되고, 위험가중자산은 31조6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기업대출 평균 위험가중치 43% 수준으로 환산하면 약 73조5000억원 규모의 추가 대출 여력이 생기는 셈이다.
나민욱 DB증권 연구원은 "3분기 주요 은행의 원화대출 성장률은 1% 미만으로 예상되고 계절적 비수기를 감안 시 4분기에도 저성장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며 "은행 자본비율이 개선됨에 따라 내년도 대출 공급 여력은 기존 대비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자본규제 완화를 둘러싼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국제 신용평가사 S&P글로벌신용평가는 지난달 29일 보고서를 내고 "위험가중치 완화는 단기적으로 은행의 대출여력을 넓히겠지만 자본 적정성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이 더 많은 대출을 취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더라도 그만큼 자본완충력이 줄어들어 위기 시 손실 흡수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S&P는 한국의 은행산업이 이미 높은 가계부채와 경기 둔화라는 구조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규제가 느슨해질 경우 경기 충격이나 부실 확대에 대응할 수 있는 체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결국 규제 완화가 대출 활성화로 이어지는 동시에 은행 건전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성장 막힌 은행권···자본여력 배분 전략 고심
특히 가계와 기업 모두 뚜렷한 대출수요를 보이지 않아 은행들이 자금을 적극적으로 풀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금융당국이 대출 총량 관리 방침을 분명히 한 만큼 규제 완화 효과도 결국 정책 기조와 수요 환경에 의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은행권 내부에서도 신중론이 지배적이다. 주담대는 강력한 규제로 신규 공급 확대가 어렵고, 기업대출 역시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우량 차주 위주로만 문이 열려 기대만큼 늘어나기 힘들다는 평가다.
내년 대출시장의 관건은 위험가중치 완화로 확보된 자본여력을 어디에 배분하느냐다.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기업대출이나 신산업 투자 쪽으로 자금이 이동할 수 있지만 경기 둔화가 길어질 경우 이마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위험가중치 완화로 자본여력은 분명 넓어졌다"면서도 "가계대출은 규제에 묶여 있고 기업대출은 경기 변수에 크게 흔들리기 때문에 늘어난 여력을 어디에 활용할지 은행마다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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