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 규모 원점 재검토···당국 '엄정 대응' 기조 바뀌나추가 충당금 압박 덜어낸 은행권···"합리적 수위 조절 기대"
금융당국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해 은행권에 부과할 '조 단위' 과징금 제재안의 최종 확정을 재차 미뤘다. 금융위원회가 이례적으로 금융감독원의 제재안을 반려하면서 '과징금 폭탄' 위기에 처했던 은행권도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전날 정례회의에서 홍콩H지수 ELS 불완전판매 관련 제재 안건을 심의했으나 의결하지 않고 금감원에 되돌려보내며 보완을 요구했다.
금융위가 금감원의 주요 제재안을 공개적으로 반려한 것은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태 이후 8년 만이다. 소위원회 단계에서 보완 요구가 나오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정례회의 안건으로 상정된 뒤 다시 금감원으로 넘어간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사실상 금융위가 금감원의 제재안을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조치를 두고 시장에서는 금융위가 은행권에 부과될 조 단위 과징금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앞서 지난 2월 금감원은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에 대해 총 1조4000억원 규모 과징금과 기관경고를 의결했다. 당초 금감원은 과징금을 총 4조원 규모로 산정했지만 이후 논의 과정에서 절반 수준인 약 2조원으로 낮춰 은행권에 사전 통보했다. 이어 지난 2월엔 과징금 규모를 다시 1조원대로 낮췄다.
거듭된 하향 조정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에서는 현행법상 보장된 '피해 회복 노력'이 더 전향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미 상당수 투자자와 자율 배상 권고안에 따른 합의를 마친 만큼, 선제적인 사후 피해 회복 노력을 과징금 산정에 대폭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금융회사가 위법 행위를 자진 시정하거나 사후 피해 보상 등 소비자의 재산상 피해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경우 사유에 따라 과징금을 감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융위가 8년 만에 제재안을 돌려보낸 배경에도 이러한 사안의 복잡성과 팽팽한 입장 차에 대한 법적·현실적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이 이미 징벌적 수준의 배상금을 지출하며 소비자 보호에 나선 만큼, 행정 처분인 과징금까지 과도하게 부과될 경우 '이중 처벌' 논란과 함께 법적 공방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법원이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을 일부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로 시중은행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도 부담이다. 과도한 과징금을 강행할 경우, 추후 은행권과의 대규모 행정소송에서 당국이 패소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은행권 내부에서는 과징금 규모가 지나칠 경우 행정소송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금융위 입장에서는 무리한 제재보다는 법원 판결과 보조를 맞추며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실익이 크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더해 생산적·포용 금융 확대를 요구하는 정부 기조도 부담이다. 현재 주요 시중은행들은 정부 기조에 맞춰 대규모 자금 투입을 예고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천문학적인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 은행의 자본 건전성 악화는 물론 대출 공급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과징금으로 인해 생산적 금융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념하고 있다. 앞으로 그런 문제의식은 계속 유지되고 관철될 것"이라고 발언해 어느 정도 '공감대'는 형성된 상황이다.
제재안이 재검토 단계로 넘어가면서 은행권은 당장의 추가 충당금 적립 부담을 덜게 됐다.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제재 수위가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되면서 안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 재검토로 합리적인 수위 조절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사실 현재로서 은행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관망하고 있다"면서도 "섣불리 예상할 수 없지만 사실상 금융위가 금감원에 제재 수위를 낮출 것을 요구한 만큼 감경 폭이 더 커지길 바라고 있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업계에서는 금융위가 조 단위 과징금이 과도하다는 신호를 보낸 만큼 과징금 규모가 수천억원대로 대폭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이 자칫 금융당국의 '소비자보호' 의지 후퇴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대규모 불완전 판매로 시장 혼란을 야기한 은행권에 제재 수위를 낮춰주는 것이 '잘못해도 배상만 하면 징벌은 피할 수 있다'는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교수는 "과거 문제가 됐을 때는 엄격하게 제재해야 한다더니 이제 와서는 생산적 금융 확대 등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으니 이를 반영하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소비자 입장에서 시대 흐름에 따라 기조가 달라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원칙적으로 가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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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김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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