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의 2026년 임금·단체협약이 지난 5월 27일 타결됐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여진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한때 7만6000명을 넘기며 창사 첫 단일 과반 노조에 올랐던 삼성그룹 초기업노조는 잠정합의 직후 약 1만8000명이 빠져나가 5만8000명 선으로 주저앉으며 한 달 반 만에 과반 지위를 내려놨다. 노조는 반도체(DS)와 모바일·가전(DX) 부문으로 교섭 창구를 쪼개는 '투트랙'으로 방향을 틀었고 17일에는 위원장 재신임 투표까지 앞두고 있다.
진앙은 성과급 차등이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DS 메모리사업부는 초과이익성과급(OPI)으로 수억 원대 보상을 바라볼 수 있는 반면, DX 부문에는 1인당 600만 원 안팎의 자사주가 돌아가고 같은 반도체 안에서도 시스템LSI·파운드리 같은 비메모리 부서엔 또 다른 줄이 그어진다.
더 까다로운 것은 반도체 생산처럼 상호 협력으로 생산성과 품질을 함께 떠받치는 일종의 '내부 생태계'를 이루는 부문에까지 이 차등을 들이대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다. 성과급이 키운 고정비 부담이라는 쟁점 너머에 '이익의 원천'이 어느 공정에서 비롯되는지 프로세스 관점에서 짚지 않으면 조직 전체의 역동성을 해칠 수 있다. 어디까지가 '공동의 이익'이고 어디부터가 '차등되어야 할 이익'인지를 가르는 일은 앞으로 훨씬 더 '정치적'인 문제로 드러날 것이다.
'관리의 삼성'이 교섭의 미숙을 드러냈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에서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도 관리자에게 허락을 맡았다는 '썰'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돌았었다. 마치 일본 기업처럼 근무 시간 최대의 생산성을 내기 위해 한 편에서는 워크 스마트를 시행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갈아 넣는다'는 집중력을 조직에 요구했던 것이 관리의 삼성이었다.
복수노조가 허용되기 이전에 노동조합 설립을 무력화했던 다양한 방법론은 웹툰과 드라마로 나왔던 <송곳>에서도 묘사되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 이병철 회장처럼 '최고의 처우'를 해주더라도 노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이제 더 이상 그렇게 관리를 할 수 없다는 방증이다.
반도체 인력난 속에서 반도체 업계의 엔지니어들은 블랙리스팅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이직이 국내에서 제한될지라도, 종합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마이크론부터 TSMC, 인텔까지 메모리 생산, 파운드리, 팹리스 업계 모두의 일자리를 타진할 수 있고, 중국은 언제나 그렇듯 한국 엔지니어들 영입을 꺼리지 않는다.
노동사를 보면 미국이나 일본 회사들은 자본주의 초창기 유동하는 숙련 노동자를 붙들기 위해 연공급제를 채택하고 임금을 올려주고 정년보장을 해줬는데, 지난해부터 올해까지의 반도체 산업 교섭은 연공급제나 정년보장만으로 사태가 해결될 수 없고 기업의 '성과'를 핵심 인력인 엔지니어들에게 얼마나 배분할 것인지에 대해 진솔하지 않으면 사업 자체의 영위가 어려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관성적인 마타도어로 엔지니어들을 규탄해봐야 사태는 달라지지 않는다. 글로벌 노동시장과의 동기화와 유동하는 노동시장에서 '이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엔지니어들의 사정에서, "일터를 사수하겠다"는 생산직 노동조합과 사측이 벌이는 게임을 투사해봐야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앞으로는 한국의 테크 기업들 역시 성숙한 노사관계 형성을 목표로 적극적으로 교섭하며, 빠르게 상생 모델을 만들 때에만 핵심 인재 확보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고 혁신역량을 키워낼 수 있을 것이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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