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데이터와 기술이전, 투자자 신뢰 회복 관건데이터·현금흐름·투명한 정보제공만이 생존의 열쇠

최근 국내 주요 바이오 기업 경영진이 앞다퉈 주주 서한을 띄웠다. 셀트리온, 리가켐바이오, 에이비엘바이오 등 굵직한 기업이 "주가 하락을 초래할 내부 악재는 전혀 없으며, 핵심 파이프라인은 계획대로 순항 중이니 하반기 성과를 지켜봐 달라"는 요지의 메시지를 냈다. 주가 급락과 흉흉한 소문 앞에서 침묵하는 대신, 경영진이 직접 나서 적극적인 소통을 택한 것은 상장사로서 당연하고 바람직한 조치다.
하지만 시장의 싸늘한 시선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올해 상반기 바이오주 부진은 금리 등 매크로(거시경제) 환경 악화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실제 이달 초 기준 KRX 헬스케어 지수는 연초 대비 10% 넘게 빠졌고, 코스피와 코스닥 제약지수 역시 동반 두 자릿수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반도체나 인공지능(AI) 등 타 업종을 향한 수급 쏠림 현상도 한몫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K-바이오' 스스로 누적한 신뢰의 위기에 있다.
근래 들어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삼천당제약이다. 한때 장중 128만4000원까지 도달했던 삼천당제약 주가는 이달 20만원대 중반을 맴돌고 있다. 주가가 80% 가까이 급락하며 해외 기관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NDR)에 이어 국내 개인주주 설명회까지 잇따라 개최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에스패스(S-PASS) 플랫폼의 상업화 가능성을 입증하기 전까지는 신뢰 회복이 쉽지 않은 모양새다.
투자자가 경영진의 '자신감'을 더 이상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간 업계 일부에서는 임상 결과에 대한 자의적인 '성공' 해석, 조건부 기술이전 계약의 최대치 총액만을 부각한 과대 포장, 불리한 핵심 계약 조건 비공개 등 투명하지 못한 공시로 스스로 발등을 찍었다. 지난 4월 금융감독원이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고 정보 구조와 기재 기준을 전면 손질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런 곪은 상처가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다. 코스닥 시가총액의 30%에 육박하는 제약·바이오 업종의 공시가 흔들리면 자본시장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금융당국의 엄중한 경고인 셈이다.
이런 와중에 말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주주가치 제고에 나선 몇몇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이를테면 셀트리온은 5% 무상증자에 이어 자사주 매입 1000억원, 임직원 우리사주 취득 700억원, 최대주주인 셀트리온홀딩스의 1000억원 주식 취득까지 총 2700억원 규모의 실질적인 자본 배치 계획을 내놨다. 주식 수만 늘리는 무상증자를 넘어, 소각을 전제로 한 대규모 자사주 매입과 대주주의 직접 매수를 동반했다는 점에서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다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연구개발(R&D) 중심 바이오 기업은 자사주를 대거 사들일 만큼 현금성 자산이 넉넉하지 않다. 이들에게 지금 당장 요구되는 최선의 주주환원은 배당이나 매입이 아닌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 제공' 그 자체다.
투자자가 알고 싶은 것은 임상시험이 '순항 중'이라는 말이 아니다. 환자 모집 현황과 데이터 기준일, 1차 평가변수 충족 여부, 부작용의 크기 그리고 다음 임상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명확한 수치적 기준이다. 임상시험계획(IND) 제출은 개발의 시작일 뿐 성공의 보증수표가 아니며, 굵직한 해외 학회 발표 일정 역시 그 자체로 데이터의 질을 담보하지 않는다.
기술이전 공시도 마찬가지다. 수조원대라는 허수 섞인 총계약 규모보다 계약 즉시 손에 쥐는 '선급금(Upfront)'이 얼마인지, 단계별 마일스톤의 세부 조건은 무엇인지, 파트너사가 언제든 권리를 반환할 수 있는 독소 조항은 없는지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여기에 남은 보유 현금과 연간 소진 속도(Cash burn rate), 향후 자금 조달 예상 시점까지 밝혀야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발행에 따른 주가 희석 리스크를 시장이 미리 가늠할 수 있다.
올해 하반기, 주요 기업의 임상 데이터 발표와 기술수출 협상 등 주가를 움직일 만한 굵직한 이벤트가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일정표에 적힌 날짜가 도래했다고 해서 기업가치가 오르는 시대는 지났다. 파트너사가 실제로 투입하는 자금의 규모, 기존 치료제 대비 확실한 비교우위 데이터 그리고 다음 검증 단계까지 버틸 '기초 체력(현금)'이 확인돼야 비로소 시장은 지갑을 열 것이다.
최근의 주가 조정을 K-바이오 전체의 실패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맹목적인 기대감에 편승해 묻지마 투자가 이어지던 과거보다, 냉정하게 데이터의 질과 재무 구조를 따지는 지금의 시장이 산업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서는 훨씬 건전하다. 경영진의 주주서한은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주가 방어용 수사로만 소비된다면 약효는 금세 떨어질 수밖에 없다.
'K-바이오에 이상 없음'을 진짜 증명하는 것은 결국 명확한 데이터와 현금흐름 그리고 투명한 공시다.
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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