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바이오 리간드: 표적 찾아가는 '분자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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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간드: 표적 찾아가는 '분자 열쇠'

등록 2026.08.01 07:08

이병현

  기자

호르몬·신경전달물질부터 항암 신약 후보까지 포괄결합한다고 모두 수용체 활성화하는 것은 아냐친화도·효능·선택성 구분이 신약 가치 평가 핵심

사진=AI(챗GPT) 생성사진=AI(챗GPT) 생성

제약·바이오 기업의 신약 개발 관련 기사를 읽다 보면 '리간드(Ligand)'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방사성리간드 치료제, 수용체 리간드, E3 리가아제 리간드, 리간드-약물접합체 등 쓰임새도 제각각이다.

용어는 낯설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리간드는 '다른 분자에 달라붙는 분자'를 통칭한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NLM)의 의학용어 체계(MeSH)는 리간드를 특정 표적 분자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물질로 정의하고 있다.

쉽게 말해 리간드는 우리 몸속 표적을 찾아가 결합하는 '분자 열쇠'다. 다만 일반적인 열쇠와 달리 자물쇠를 열 수도, 아예 굳게 잠가버릴 수도 있다. 때로는 문을 열지 않고 옆에 찰싹 붙어 다른 열쇠가 작동하는 방식을 묘하게 바꿔놓기도 한다.

리간드는 반드시 '약'을 의미하지 않는다


흔히 리간드라고 하면 제약사가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부터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우리 몸은 원래부터 수많은 천연 리간드를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호르몬, 신경전달물질, 성장인자, 사이토카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특정 세포의 수용체에 결합해 화학적 신호를 전달한다. 신경세포가 분비한 신경전달물질이 다음 세포의 수용체에 붙어 뇌의 명령을 전달하거나, 혈액을 타고 이동한 호르몬이 특정 장기에 붙어 대사를 조절하는 식이다.

제약사가 만드는 약물 가운데 상당수는 바로 이 원리를 교묘하게 모방한다. 몸이 원래 사용하는 리간드와 비슷한 모양의 인공 리간드를 만들어 수용체를 활성화하거나, 반대로 수용체 자리를 먼저 선점해 원래 몸속 리간드가 붙지 못하게 훼방을 놓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합성한 화합물이나 항체 등도 특정 표적에 결합하기만 한다면 모두 리간드로 불릴 수 있다.

수용체가 자물쇠라면 리간드는 열쇠


리간드를 설명할 때 가장 직관적인 비유가 바로 '열쇠와 자물쇠'다. 특정한 모양과 화학적 성질을 가진 리간드(열쇠)가 수용체(자물쇠)의 결합 부위에 정교하게 맞물려야 둘이 붙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열쇠가 문을 여는 것은 아니다. 수용체에 붙어 실제 신호를 켜는 리간드를 '작용제(Agonist)'라고 부른다. 반대로 수용체에 붙기는 하지만 활성화하지는 않는 리간드를 '길항제(Antagonist)'라 한다.

쉽게 말해 작용제는 자물쇠에 들어가 문을 여는 '진짜 열쇠'이고, 길항제는 구멍에 들어가지만 돌아가지는 않는 '가짜 열쇠'다. 길항제가 꽂혀 있으면 진짜 열쇠가 들어갈 틈이 없어 신호가 차단된다. 신약 개발 시 해당 물질이 작용제인지 길항제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같은 자물쇠라도 붙는 자리가 다르다


리간드는 수용체의 정해진 주차 구역(정위 결합 부위)에 붙을 수도 있지만, 그 옆의 엉뚱한 자리(알로스테릭 부위)에 붙기도 한다.

주 결합 부위가 아닌 다른 곳에 붙는 물질을 '알로스테릭 리간드(Allosteric ligand)'라고 부른다. 이들은 직접 스위치를 누르기보다 수용체의 전체적인 모양이나 반응성을 바꿔, 원래의 리간드가 더 잘 붙게(양성) 하거나 덜 붙게(음성) 조절한다.

비유하자면 정위 리간드가 운전석에 앉아 직접 가속페달을 밟는 운전자라면, 알로스테릭 리간드는 똑같이 페달을 밟아도 차가 더 빠르거나 느리게 반응하도록 엔진 출력을 조정해두는 정비사에 가깝다.

'잘 붙는다(친화도)'와 '잘 작동한다(효능)'는 다르다


신약 개발사의 보도자료에 단골로 등장하는 표현 중 하나가 "표적에 대한 높은 친화도(Affinity)를 확인했다"는 문구다.

친화도는 리간드가 표적에 얼마나 강력하게 자석처럼 들러붙는지를 나타낸다. 하지만 잘 붙는다고 무조건 좋은 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합 이후 원하는 생물학적 반응을 얼마나 잘 일으키는지는 '효능(Efficacy)'이라는 별도의 개념으로 평가해야 한다.

매우 강하게 달라붙지만(고친화도) 아무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강력한 억제제(길항제)가 된다. 따라서 투자자는 "결합력이 높다"는 데이터만으로 약효가 뛰어나다고 성급히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더해 '선택성(Selectivity)'도 중요하다. 원하는 표적에만 강하게 결합하고, 구조가 비슷한 다른 엉뚱한 단백질에는 붙지 않아야 한다. 아무 데나 무차별적으로 붙는 리간드는 십중팔구 심각한 부작용(오프 타깃 효과)을 유발해 임상시험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항암·표적단백질분해 신약의 핵심 기술로 진화


최근 주목받는 첨단 바이오 신약 분야에서도 리간드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방사성의약품(RPT)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노바티스의 전립선암 치료제 '플루빅토'가 좋은 예다. 플루빅토는 암세포 표면 단백질(PSMA)을 찾아가는 리간드에 방사성동위원소(루테튬-177)를 폭탄처럼 매달아 놓은 구조다. 여기서 리간드는 암세포의 주소를 오차 없이 찾아가는 정밀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차세대 신약 기술로 꼽히는 표적단백질분해(PROTAC) 기술에서는 리간드가 아예 두 개나 쓰인다.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 단백질에 붙는 리간드와, 체내 단백질 청소기를 호출하는(E3 리가아제) 리간드를 끈(링커)으로 연결한 형태다. 이때 리간드는 단순히 신호를 켜고 끄는 열쇠가 아니라, 두 단백질을 억지로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수갑' 역할을 한다.

항암제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면역관문 단백질 'PD-L1'의 'L' 역시 리간드의 약자다. T세포의 수용체(PD-1)에 암세포의 리간드(PD-L1)가 결합하면 면역세포가 눈이 멀게 되는데, 키트루다 같은 면역항암제는 이 결합을 끊어내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결국 제약·바이오 기사에서 리간드라는 단어를 마주했다면 세 가지를 따져봐야 한다. 첫째, '무엇에 붙는가(표적)'. 둘째, '붙은 다음 무엇을 하는가(작용 기전)'. 셋째, '얼마나 정확하게 찾아가는가(선택성)'이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곧 해당 신약 후보물질의 상업적 가치를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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