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업 커지면 코스피로 이동···저평가 악순환 반복좀비기업 장기 잔존에 정상기업 가치까지 동반 훼손퇴출 강화·세그먼트 도입으로 시장 체질 개선 '시동'
출범 30주년을 맞은 코스닥 시장이 '저평가'라는 오랜 꼬리표를 떼기 위한 전환점을 맞았다. 국내 대표 혁신기업 시장으로 성장했지만 코스피와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기업들마저 이전상장을 기업가치 재평가의 통로로 인식하고 있어서다. 앞으로는 외형 확대보다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고 우량기업이 제값을 인정받는 시장으로 거듭나는 것이 최대 과제가 될 전망이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은 1996년 출범 이후 양적 성장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상장사는 개장 당시 341개에서 지난해 말 1827개로 5배 이상 증가했고 시가총액도 7조원에서 올해 처음 600조원을 넘어섰다. 일평균 거래대금 역시 22억원에서 14조1000억원 수준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코스피와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시장의 위상은 오히려 후퇴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올해 첫 거래일인 1월 2일 945.57에 마감한 코스닥은 지난달 30일 916.18로 거래를 마치며 연초 대비 3.1%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4309.63에서 8476.48로 96.7% 급등했고 지난 6월 19일에는 장중 9385.59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반도체주로 자금을 끌어들이면서 성장주 비중이 높은 코스닥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는 분석이다.
"코스피 가야 인정받는다"···30년 이어진 저평가
하지만 코스닥의 부진을 단순히 수급 문제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혁신기업이 성장하면 코스피로 이전상장해야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코스피로 이전상장한 코스닥 기업들이 가장 많이 꼽은 이유는 '기업가치 평가 개선에 대한 기대'였다. 하지만 실제 결과를 보면 이전상장 자체가 기업가치 재평가로 이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사례도 적지 않았다. 최근 10년간 이전상장 기업을 분석한 결과 이전상장 시점과 그해 연말 시가총액을 비교했을 때 오히려 감소한 사례가 많았다.
최지우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상무는 이날 열린 코스닥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기업 가치 제고가 단순히 시장으로 옮기는 것만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코스닥 안에서도 충분히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산소사'가 키운 좀비기업···시장 신뢰 갉아먹었다
코스닥 시장 신뢰 저하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좀비기업' 문제가 첫 손에 꼽힌다. 부실기업 퇴출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한계기업이 장기간 시장에 잔류하고 일부는 불공정거래에 악용되면서 시장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지적이다. 일부 기업의 문제가 코스닥 전체의 할인 요인으로 이어진 셈이다.
IBK경제연구소는 코스닥의 신규 상장은 활발하지만 퇴출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다산소사(多産少死)'가 고착됐다고 지적했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시가총액이 15.6배 증가할 동안 지수가 1.8배 상승하는 데 그친 건 부실기업이 장기간 연명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부실기업이 자본과 인력, 기술 등 생산요소를 점유하고 있는 탓에 정상기업의 자금조달과 성장이 어려웠다는 얘기다.
닷컴버블 이후 우회상장 확대와 상장폐지 지연, 글로벌 저금리 환경, 코로나19 시기 대규모 유동성 공급 등이 맞물리면서 한계기업이 시장에 누적됐다는 분석도 있다. 상장폐지 심사 과정에서 반복적인 개선기간 부여와 소송 등이 퇴출을 지연시키면서 시장의 자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말부터 시장 체질 개선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부터는 1000원 미만 동전주를 새로운 상장폐지 사유로 도입했고 시가총액과 매출액 등 상장폐지 요건도 단계적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실질심사 절차를 단축하고 불성실공시 벌점 기준을 높여 부실기업 퇴출 속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특례상장기업에 대한 관리 강화와 저주가순자산비율(PBR) 기업의 기업가치 제고 유도, 생성형 AI 기반 기업분석보고서 확대도 함께 추진한다.
세그먼트 도입 승부수···전문가들은 "장기적 생산성 확보해야"
거래소가 제시한 핵심 해법은 세그먼트 도입이다. 우량기업과 일반기업을 일정 기준에 따라 구분해 대표기업을 명확히 보여주고 기관투자가가 보다 쉽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거래소는 미국 나스닥 사례를 대표적인 벤치마킹 대상으로 제시했다. 나스닥 역시 과거에는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2부 시장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2006년 글로벌셀렉트마켓, 글로벌마켓, 캐피털마켓으로 시장을 세분화한 이후 대표 기술주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에는 NYSE에서 나스닥으로 이전하는 사례보다 나스닥을 선택하는 기업이 늘었고 현재는 시가총액도 대등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코스닥 3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코스닥이 성장주 투자의 종착지이자 세계 최고의 기술주 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체질 개선을 추진하겠다"며 "세그먼트 분리를 통해 대표기업을 선별하고 기관투자자의 벤치마크 지수 편입과 연계 ETF 개발 등을 추진해 다른 시장으로 이전할 이유가 없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장 신뢰 회복과 함께 생산성을 확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남궁설 IBK경제연구소 차장은 "장기적인 생산성 확보를 위해서는 진입과 퇴출의 선순환 구조가 확립돼야 하고 이는 과거부터 누적된 부실기업의 퇴출이 수반돼야 가능하다"며 "단기적인 생존 유지에 치우친 지원은 지양하고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나 스케일업이 필요한 기업에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의 리서치센터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투자자 기반 확대와 시장 유동성 형성, 자금조달을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가 돼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스닥 기업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하고 장기 투자로 연결하는 시장의 중개 기능이 보완적으로 강화돼야 한다"며 "중소형 증권사의 산업 전문 리서치와 기업·투자자를 연결하는 코퍼레이트 액세스(Corporate Access) 기능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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