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 정황 드러난 메신저 대화 공개경쟁사 가격 모니터링 일상화 확인전쟁 기회 삼아 실적 확대 충격
"올해 2조 벌 듯", "트럼프 만세."
미국·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던 지난 3월 4일, 국내 정유사 가격결정부서 직원들이 메신저로 주고받은 대화다. 소비자들이 치솟는 기름값을 우려하던 순간 내부에서는 전쟁을 수익 확대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듯한 대화가 오갔다.
서울고검 공정거래조사부는 6일 미국·이란 전쟁 직후 14조원 규모의 기름값 담합해 인상한 혐의로 HD현대오일뱅크·GS칼텍스·SK에너지·에쓰오일(S-OIL) 등 정유 4사와 실무진들을 기소하며 이들의 주고 받은 메신저 대화 일부를 공개했다.
검찰이 확보한 내부 메신저에는 당시 가격 결정 과정과 내부 분위기가 시간순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난 2월 한 정유사 가격결정 부서 대화방에서는 "우리는 독자적으로 줏대 있게 한다면서요"라는 말에 "줏대 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경쟁사 가격을 의식하는 분위기가 이미 일상화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한 직후에는 경쟁사 가격 동향을 공유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한 직원이 "소문엔 A사와 B사는 일일 가격 적용으로 한다"고 하자 다른 직원은 "부문장님께서 타사나 알뜰 입금가 보고 결정하자고 한다. 유가가 너무 급등해서 안 올리기도 뭐한데 일단 파악하고 정리하시죠"라고 답했다.
국제유가 급등이 소비자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오던 시기였지만, 내부에서는 가격 인상에 따른 실적 확대를 기대하는 듯한 인식이 드러난 셈이다.
실제 검찰이 확보한 가격회의 회의록에도 경쟁사의 가격 인상·인하 폭과 자사 가격 차이를 일일이 비교하며 대응 전략을 논의한 기록이 담겼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국내 정유시장에서는 경쟁사 가격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이를 기준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관행이 과점시장 특유의 '의식적 병행행위'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의식적 병행행위 자체는 현행 공정거래법상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시장 경쟁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직접 담합 규모를 약 14조2000억원으로,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가격 추종 효과까지 포함한 경쟁 제한 효과는 약 26조원으로 추산했다. 당시 정유사들이 상당한 양의 원유를 비축하고 있어 원가 상승 요인이 크지 않았음에도 공급가격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으로 일제히 인상됐고,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됐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장기간 이어진 가격 정보 교환과 경쟁사 가격 추종 관행이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례로 보고 있다. 법원의 최종 판단은 남아 있지만, "우리 올해 2조 벌 듯",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라는 내부 메신저는 전쟁과 고물가로 국민들의 부담이 커지던 시기 정유업계 내부의 가격 결정 문화와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기록으로 남게 됐다.
뉴스웨이 신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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