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자연흡기 V10의 마지막 포효"···인제 달군 람보르기니 라스트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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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흡기 V10의 마지막 포효"···인제 달군 람보르기니 라스트 질주

등록 2026.07.20 17:21

권지용

  기자

인제스피디움 현장, 선수들 공력·타이어 세팅 경쟁레이스카 제한적 내부, 전문화된 경주 설계 돋보여V8 터보 엔진 탑재 '테메라리오' 등장 예고

18일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열린 '2026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4라운드 현장. 사진=권지용 기자18일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열린 '2026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4라운드 현장. 사진=권지용 기자

짙푸른 산자락과 장마철의 습한 기운이 둘러싼 강원도의 한 산골짜기.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개러지(Garage·차량 정비 구역)에 숨죽이고 있던 형형색색의 람보르기니 경주차들이 일제히 그리드(Grid·출발 정렬 구역)로 향했다.

12대의 람보르기니 우라칸이 동시에 회전수를 끌어올리자 5.2L 자연흡기 V10 엔진 특유의 고음이 산속을 가득 뒤덮었다. 차들이 코너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도 굉음은 계곡을 타고 되돌아왔다. 귀로 듣는 소리라기보다 온몸으로 전달되는 진동에 가까웠다. 관중석에서는 연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 18일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열린 '2026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아시아' 4라운드 현장이다. 올해 대회는 슈퍼레이스 챔피언십과 함께 열린 '강원 국제 모터 페스타'의 메인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무엇보다 이번 대회는 람보르기니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슈퍼 트로페오에 투입되는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 에보 2'가 사실상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는 후속 모델인 '테메라리오 슈퍼 트로페오'가 V8 트윈터보 엔진을 품고 새로운 시대를 연다. 인제에 울려 퍼진 자연흡기 V10 사운드 역시 이제 마지막을 장면을 향해 가고 있었다.

슈퍼 트로페오는 람보르기니가 유럽과 북미, 아시아에서 운영하는 대표적인 원메이크 챔피언십이다. 모든 참가팀이 동일한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 에보2를 사용한다. 엔진과 섀시, 타이어, 주요 부품이 모두 같기 때문에 결국 승부는 드라이버의 기량과 엔지니어의 세팅 능력에서 갈린다.

18일 강원도 인제에서 열린 '2026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현장. 사진=권지용 기자18일 강원도 인제에서 열린 '2026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현장. 사진=권지용 기자

패독의 12대 레이스카가 일렬로 놓인 개러지에서는 마지막 점검이 한창이었다. 카본파이버로 만든 거대한 리어윙과 디퓨저, 노출된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분주하게 움직이는 엔지니어들이 긴장감을 더했다. 한쪽에서는 노트북을 펼쳐 차량 데이터를 분석했고 다른 쪽에서는 타이어 온도와 공기압을 세밀하게 조정했다.

레이스카 내부는 양산차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내장재와 오디오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롤케이지와 소화장치, 레이싱 시트가 들어섰다.

드라이버들이 손에서 놓지 않는 탈착식 스티어링 휠에는 ABS(Anti-lock Braking System·잠김 방지 제동장치)와 TC(Traction Control·구동력 제어 시스템), 피트 리미터 등 수십 개 버튼이 배치돼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개러지 투어를 진행한 이탈리아 레이싱팀 빈센조 소스피리 레이싱(VSR)의 유키 네모토 팀 매니저는 "모든 팀이 같은 차를 사용하지만 경기력은 세팅에서 갈린다"고 말했다.

그는 경주차 뒤편의 거대한 리어윙을 가리키며 "각도를 한 단계만 바꿔도 드라이버는 즉시 차이를 느낀다"며 "직선 속도를 높일 것인지 코너 안정성을 높일 것인지 그 균형점을 찾는 것이 엔지니어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주행 중에도 드라이버는 스티어링 휠을 통해 ABS와 TC 개입 수준을 바꾼다. 비가 내리면 TC를 높여 안정성을 확보하고 숙련된 드라이버는 개입을 줄여 차를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같은 차를 타더라도 제동 시점, 전자제어 설정, 공력 세팅에 따라 랩타임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VSR 팀 매니저 유키 네모토가 우라칸 에보 2 경주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권지용 기자VSR 팀 매니저 유키 네모토가 우라칸 에보 2 경주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권지용 기자

실제 레이스에서도 세팅과 전략의 차이가 승부를 갈랐다. 17일 열린 레이스 1에서는 배트모빌 레이싱의 윌리엄 트레거사와 조나단 체코토가 안정적인 피트 전략과 꾸준한 페이스를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다.

18일 열린 레이스 2에서는 빗물이 남은 노면을 가장 효과적으로 공략한 이탈리아 레이싱팀 빈센조 소스피리 레이싱(VSR)의 리암 시츠와 구스타프 비시니에프스키가 정상에 올랐다. 람보르기니 분당 바이 레이스그래프와 람보르기니 부산 바이 레이스그래프도 각각 프로 클래스 포디엄에 오르며 존재감을 나타냈다.

레이스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팬들과의 접점이었다. 그리드워크가 시작되자 관람객들은 출발선으로 내려와 레이스카를 눈앞에서 살펴보고 드라이버들과 사진을 찍었다. 패독 역시 일반에 개방돼 엔지니어들이 분주하게 차를 손보는 모습까지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슈퍼 트로페오는 이를 단순한 경기 관람을 넘어 팬이 브랜드와 직접 교감하는 모터스포츠 경험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람보르기니는 서킷 밖에서도 레이싱 DNA를 이어갔다. 행사장 한편에서는 내년 슈퍼 트로페오의 주인공이 될 신형 '테메라리오'를 활용한 드리프트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운전자는 드리프트 모드를 선택한 뒤 원을 그리며 차를 미끄러뜨렸다. 자세제어장치를 적극적으로 제어해 오버스티어를 만들지만 차량은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자세를 유지했다. 강력한 성능에도 누구나 쉽게 차를 다룰 수 있도록 설계된 람보르기니의 방향성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양산형 테메라리오는 V8 트윈터보 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사용하지만, 내년 슈퍼 트로페오 레이스카는 하이브리드 없이 내연기관만으로 경쟁한다. 자연흡기 V10이 남긴 빈자리는 터보 V8이 이어받게 된다.

람보르기니 테메라리오 드리프트 체험 현장. 사진=권지용 기자람보르기니 테메라리오 드리프트 체험 현장. 사진=권지용 기자

체커기가 내려간 뒤 인제스피디움에는 다시 산속의 적막이 찾아왔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계곡을 울리던 V10 엔진의 고음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올해 인제에서 울려 퍼진 굉음은 단순한 레이스 소리가 아니었다. 10년 넘게 람보르기니 원메이크 레이스를 상징해온 자연흡기 V10 시대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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