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질환 치료제, '대리지표' 근거로 조기 시장 진입환자 접근 앞당기되 승인 후 확증시험 의무화임상적 이익 입증 실패하면 적응증 철회 가능성
제약·바이오 관련 기사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 가속승인을 받았다'는 문구를 접하면 흔히 신약 심사 속도 자체가 빨라졌다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다. 영어 명칭인 'Accelerated Approval'이 주는 뉘앙스 때문이다.
하지만 가속승인은 단순히 FDA가 행정 서류를 빠르게 검토해 주는 제도가 아니다. 중대하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 특히 미충족 의료 수요가 높은 분야의 치료제를 대상으로 환자의 최종 생존 기간이나 증상 개선을 끝까지 확인하기 전에 이를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지표'를 근거로 앞당겨 승인하는 특별한 경로다. 쉽게 말해 '시험을 덜 보고 통과시키는 제도'라기보다는 '최종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중간 성적표를 믿고 먼저 합격시키는 제도'에 가깝다. 물론 중간 성적이 실제 실력으로 이어지는지는 승인 뒤에 반드시 재확인해야 한다.
핵심은 '빠른 심사'가 아닌 '빠른 근거'
가속승인은 1992년 HIV·에이즈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신약이 절실한 환자에게 약을 일찍 제공하려면 수년간 생존 여부를 기다려야 하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오늘날 암과 희귀 질환 치료제 개발의 핵심 루트로 자리 잡았다.
이 대목에서 무엇이 '가속'되는지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서류 검토 목표 기간을 단축해 주는 제도는 '우선심사(Priority Review)'다. 반면 가속승인은 허가 판단에 사용하는 임상 근거의 '성격'을 바꿔 시장 진입 시점을 앞당긴다. 심사 기간이 아니라 유효성 입증에 걸리는 물리적 시간을 단축해 주는 것이다.
가속승인을 이해하는 열쇠, '대리지표'
가속승인의 근간은 '대리지표(Surrogate Endpoint)'다. FDA는 대리지표를 검사실 측정값, 영상검사 결과, 신체 징후 등 임상적 이익을 직접 측정하지는 않지만 이를 예측할 수 있는 합리적 지표로 정의한다.
예를 들어 항암제의 궁극적 목표는 '생존 기간 연장'이지만, 이를 확인하려면 기나긴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 따라서 종양이 줄어들거나 사라진 비율을 뜻하는 '객관적 반응률(ORR)'을 먼저 측정해 향후 임상적 이익을 가늠한다. 질환에 따라 바이러스 수치, 특정 단백질 농도 등 다양한 기준이 활용되며, 최종 사망보다 일찍 측정 가능한 '중간 임상지표'가 쓰이기도 한다.
종양이 줄면 반드시 환자가 더 오래 살까
문제는 대리지표가 어디까지나 '예측치'라는 점이다. 종양 크기가 줄었다고 환자의 생존 기간이 반드시 늘어나는 것은 아니며, 검사 수치가 호전돼도 삶의 질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가속승인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제약사는 승인 직후 '확증시험(Confirmatory Trial)'을 통해 대리지표의 긍정적 변화가 실제 생존 기간 연장이나 증상 개선으로 이어졌는지를 엄격히 검증해야 한다. 확증시험에서 애초 기대했던 임상적 이익이 증명되면 가속승인 꼬리표를 떼고 '전통적 승인(Traditional Approval)'으로 완전히 전환된다.
임상적 이익 입증 실패 시 시장 퇴출··· 깐깐해진 FDA
반대로 확증시험에서 긍정적 결과를 얻지 못하면 상황은 반전된다. 이익의 크기가 약물의 위험을 정당화하지 못하거나 제약사가 시험을 불성실하게 수행할 경우, FDA는 승인 철회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실제로 가속승인 획득 후 최종 검증 문턱을 넘지 못해 시장에서 쫓겨난 사례는 적지 않다. 2011년 확증시험에서 생존 기간 연장 입증에 실패해 유방암 적응증이 강제 철회된 로슈의 항암제 '아바스틴'이 대표적이다. 특히 약효 검증에 실패하고도 제약사가 3년 가까이 청문회를 요구하고 온갖 행정 절차를 지연시키며 퇴출을 지연시킨 조산 방지제 '마케나' 사태(2023년 철회)를 계기로, 미 의회는 2022년 말 '식품의약국 통합개혁법(FDORA)'을 제정해 FDA에 '신속 철회 권한'을 부여했다.
이를 바탕으로 FDA는 2024년 말과 2025년 1월, 가속승인 및 확증시험 관리에 관한 가이던스 초안을 연이어 발표했다. 해당 지침에 따르면 특별한 예외가 없는 한 제약사는 가속승인을 받기 전에 확증시험을 이미 '진행 중(Underway)'인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약이 시장에 풀린 뒤에는 위약군을 모집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최근에는 확증시험에서 고배를 마시거나 규제 당국의 부정적 기류를 감지한 제약사가 알아서 적응증을 포기하는 '자진 철회'도 줄을 잇고 있어, 가속승인이 결코 신약의 완생(完生)을 보장하는 프리패스가 아님이 증명되고 있다.
기사를 읽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포인트
가속승인은 긴급사용승인(EUA)과 같은 한시적 허가가 아니라 정식 판매가 가능한 승인이다. 다만 '진짜 시험'은 승인 직후부터 시작된다. 향후 제약·바이오 기업의 가속승인 소식을 접한다면 투자자와 독자는 다음 세 가지를 점검해야 한다.
▲첫째, 어떤 '대리지표'를 근거로 승인되었는가 ▲둘째, 아직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는 진짜 '임상적 이익(생존 연장 등)'은 무엇인가 ▲셋째, FDA가 강제하는 '확증시험'이 현재 어느 단계까지 진행되고 있으며, 최종 결과는 언제 발표되는가.
결국 가속승인은 환자의 조기 치료 접근권과 과학적 검증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제도다. "FDA 가속승인 획득"이라는 헤드라인 이면에는 "일단 처방은 허락하지만, 당신의 약이 진짜라는 것은 스스로 증명해 내야 한다"는 규제 당국의 엄중한 숙제가 숨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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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bottlee@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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