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론 시대 데이터 병목 해소 해법 부상샌디스크와 개방형 표준 구축 생태계 주도권 확보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이어 차세대 메모리로 꼽히는 고대역폭플래시(HBF) 시장 선점에 나섰다. HBM이 AI 학습 시대를 견인한 핵심 메모리였다면 HBF는 AI 추론 시대의 데이터 처리 병목을 해소할 차세대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제품 경쟁을 넘어 표준 주도권을 선점함으로써 차세대 AI 메모리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업체 샌디스크와 공동 개발한 HBF 표준 규격을 4일 공개했다. 양사는 개방형 규격을 기반으로 GPU·CPU·SSD·서버 업체들이 참여하는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HBF 시장 확산을 주도한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가 HBF 표준 경쟁에 뛰어든 배경에는 HBM 시장에서 축적한 전략적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HBM 시장은 단순히 성능 우위의 제품을 먼저 선보인 기업이 주도권을 가져가는 구조가 아니었다. 엔비디아 AI 가속기 생태계에 신속히 진입하고 고객사와 공동 최적화 과정을 거치며 공급망을 구축한 기업이 시장의 중심에 섰다.
SK하이닉스는 HBM에서 확보한 생태계 구축 역량을 HBF에도 이식한다는 전략이다. 시장이 본격 개화하기 전에 업계가 활용할 수 있는 기술 규격을 제시해 차세대 AI 메모리의 표준 지위를 선점하겠다는 의미다.
HBF는 낸드플래시를 기반으로 데이터 처리 대역폭을 확대한 차세대 메모리다. HBM의 초고속 처리 능력과 낸드플래시의 대용량 저장 역량을 결합해 HBM과 SSD 사이를 잇는 새로운 메모리 계층을 겨냥한다.
HBF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AI 산업의 무게중심 변화가 있다. 기존 AI 모델 학습 단계에서는 GPU 연산 성능과 이를 뒷받침하는 HBM의 대역폭이 핵심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다수 이용자의 요청을 실시간 처리하는 추론 환경에서는 방대한 데이터를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능력이 새로운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추론 단계에서 모든 데이터를 HBM으로 처리하는 방식은 비용과 용량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업계에서는 HBF가 HBM을 대체하기보다 상호 보완적 관계를 형성하며 AI 데이터센터의 메모리 아키텍처를 재편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향후 AI 메모리 시장은 HBM과 HBF가 경쟁하는 이분법적 구조보다 기능별 역할 분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HBM은 고성능 연산을 위한 핵심 메모리로, HBF는 대규모 데이터 처리와 시스템 효율성을 높이는 메모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HBF 시장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는 기술 완성도보다 시장 채택 여부다. HBM이 메모리와 GPU 간 긴밀한 협력이 중요했다면 HBF는 GPU·CPU·서버·소프트웨어까지 아우르는 통합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독자 규격만으로는 시장 확산에 구조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와 샌디스크가 개방형 표준을 선택한 것도 시장 확장을 염두에 둔 전략적 판단이다. 경쟁사의 참여 가능성을 열어두는 대신 다양한 기업이 해당 규격을 기반으로 제품을 개발하도록 유도해 HBF 생태계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표준 확보는 곧 시장 지배력으로 연결된다. 특정 규격이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 메모리 업체뿐 아니라 장비·시스템 업체까지 해당 생태계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결국 HBF 경쟁의 본질은 누가 더 빠른 제품을 출시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차세대 AI 메모리 시장의 기준을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 HBF가 실제 AI 인프라의 핵심 메모리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기술 검증을 넘어 고객사 채택과 생태계 확장이 필수적이다. 특히 AI 서버 시장이 엔비디아 중심으로 형성된 만큼 GPU와 서버 업체들의 참여 여부가 시장 확산 속도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HBF는 단순한 메모리 제품 경쟁이 아니라 AI 시스템 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플랫폼 경쟁"이라며 "표준과 생태계를 선점하는 기업이 차세대 AI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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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강준혁 기자
junhuk210@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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