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툰 가상자산 과세, 산업 이탈의 방아쇠 될라

오피니언 기자수첩

서툰 가상자산 과세, 산업 이탈의 방아쇠 될라

등록 2026.09.02 10:49

한종욱

  기자

미흡한 과세 기준, 개인 투자자 부담 가중주식과 달리 취득가액·손익 확인 어려워투자 위험 관리 상품·보호장치도 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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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입장에서 세금 확대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새로운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수익이 발생한 자산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조세 형평의 명분도 얻는다. 정부는 이 같은 명분을 앞세워 내년부터 가상자산 과세에 나선다.

하지만 지금 가상자산에 세금을 매기는 일은 조세 정의보다 행정의 성급함에 가깝다. 그렇다고 가상자산만 과세의 예외로 남겨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과세를 시작할 만큼 시장과 제도를 준비했느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 이르다.

현행법상 가상자산 양도·대여 소득은 2027년 1월 1일부터 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된다. 연간 손익에서 기본공제 250만원을 뺀 금액에 소득세와 지방소득세를 합쳐 22%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미 세 차례 시행을 유예했지만 횟수가 과세 준비의 완성도를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예 기간에도 과세의 토대는 충분히 다져지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인프라의 부재다. 주식은 증권사 계좌와 거래소 기록, 수탁 체계 안에서 취득가액과 매매 시점, 손익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가상자산은 국내외 거래소와 개인지갑, 블록체인 서비스에 거래가 흩어져 있다.

가상자산은 실물이 아닌 무형자산인 탓에, 단순 지갑 이동과 실제 양도·교환과 보상 수령을 구분하는 일도 복잡하다. 세율을 정하는 일보다 무엇을 언제, 어떤 가격으로 과세할지 가려낼 인프라부터 갖춰야 한다.

과세 인프라의 공백은 투자 인프라의 공백과도 맞닿아 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제도권 투자 수단은 여전히 현물 거래에 쏠려 있다. 가격이 오르면 사고 내리면 손실을 감내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투자 위험을 전문적으로 관리할 운용사도, 현물 변동성을 낮출 상품도 충분하지 않다. 상품과 보호 장치는 비워둔 채 현물 투자 수익에 대한 과세만 먼저 서두르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일이다.

시장 상황도 과세 강행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정보분석원이 발표한 2025년 하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거래가능 이용자 계정은 1113만개로 늘었다.

같은 기간 국내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8% 감소했고, 일평균 거래규모는 15%, 사업자 영업손익은 38% 줄었다. 이용자 계정은 증가했지만 시장의 활력과 사업자의 체력은 후퇴했다.

대다수 이용자는 큰손도 아니다. 보유액 100만원 미만 계정이 전체의 약 74%에 이르고, 3040세대가 주요 이용층이다. 높은 변동성을 감수하는 개인 투자자에게 불완전한 과세 기준까지 더해진다면 국내 시장 이탈은 더 빨라질 수 있다.

과세 유예는 특혜가 아니다. 부족한 기반을 바탕으로 과세부터 강행하면 투자자들은 더 쉬운 거래 환경을 찾아 해외로 이동할 수 있다. 거래량이 줄면 국내 가상자산사업자의 수익성은 더 악화되고 주변 산업군도 함께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가상자산 과세를 다시 미뤄야 하는 이유는 세금 자체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과세의 성급함이 이제 막 제도권에 뿌리내리려는 국내 디지털자산 산업의 성장 동력까지 꺾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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