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결제주기 'T+1' 서두르는데···투자자도 증권사도 '시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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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주기 'T+1' 서두르는데···투자자도 증권사도 '시큰둥'

등록 2026.09.04 10:18

박경보

  기자

투자자 체감 편익 크지 않은데 속도전전산개편 떠안은 증권사 비용 부담 커져'글로벌 스탠더드' 앞서 실익 따져봐야

그래픽=이찬희 기자그래픽=이찬희 기자

주식 결제주기를 현행 T+2에서 T+1으로 단축하는 방안이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지시 이후 관련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지만 정작 여의도에서는 시큰둥한 반응이 적지 않습니다. 결제일을 하루 앞당기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반면 투자자가 실제 체감할 수 있는 편익이 얼마나 될지는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T+1은 주식을 사고판 뒤 실제 주식과 대금이 오가는 결제 시점을 거래일 다음 날로 앞당기는 제도인데요. 현재 국내 주식시장은 거래일로부터 이틀 뒤 결제가 이뤄지는 T+2 방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T+1으로 바뀌면 주식을 판 투자자가 매도대금을 실제로 확보할 수 있는 시점도 하루 빨라지게 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투자자에게 나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주식을 팔고 돈을 받는 시간이 짧아지는 만큼 자금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등 주요국이 이미 T+1 결제로 전환했다는 점도 국내 도입에 힘을 싣는 배경입니다.

매도대금 하루 빨라지지만···장기투자 취지엔 '물음표'


하지만 여의도의 반응은 조금 다른데요. 결제일을 하루 앞당기는 것이 실제 국내 개인투자자에게 얼마나 큰 편익으로 돌아올지 따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제도를 바꾸는 것과 투자자가 체감하는 효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얘기죠.

주식을 판 투자자가 매도대금을 곧바로 인출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매도대금을 예탁금으로 남겨두고 다른 종목을 사거나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투자자라면 T+2가 T+1으로 바뀌더라도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제주기 단축의 필요성을 부정하기보다 실제 수혜가 누구에게 얼마나 돌아가는지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부가 강조하는 장기투자 환경 조성과 결이 맞느냐는 의문도 있습니다. T+1은 매도대금을 하루 빨리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 만큼 장기투자를 유도하는 정책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겁니다. 국내 증시의 장기투자 기반을 넓히는 것이 목표라면 결제주기 단축보다 투자자들이 오랫동안 주식을 보유할 유인을 만드는 것이 우선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시스템 손봐야 하는 증권사···'글로벌 스탠더드'에 속앓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쪽은 증권사인데요. 예탁결제원은 T+1 전환에 필요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투자자 주문과 결제 업무를 처리하는 개별 증권사들은 전산 시스템을 손봐야 합니다. 결제 시간이 하루 줄어드는 만큼 기존 업무 절차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비용 부담도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대형사보다 전산 투자 여력이 떨어지는 중소형 증권사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클 수 있습니다. 얻는 것도 없는데 비용 부담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업계가 가장 경계하는 건 T+1 전환이 충분한 논의 없이 속도전으로 흘러가는 상황입니다. 미국 등 주요국이 이미 도입했다는 명분은 있지만 국내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실익이 크지 않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증권사들 사이에서 "굳이 지금 서둘러야 하느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최근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았습니다. 해외 주요 시장과 제도적 간극을 좁혀 국내 증시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 자체는 필요한 일입니다. 다만 해외에서 시행하는 제도라는 이유만으로 국내 시장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언제나 투자자 편익으로 이어지는지는 더 따져봐야 할 문제입니다.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글로벌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도를 바꾸는 데 드는 비용과 국내 시장이 실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함께 계산해야 한다는 겁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분이 제도의 효과를 따져보는 과정까지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T+1 전환이 반드시 잘못된 선택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결제주기를 단축해야 한다면 투자자에게 어떤 편익이 돌아가고 증권사가 어느 정도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 충분한 검토가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주요국이 이미 도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서두르기보다 지금 국내 증시에 T+1이 왜 필요한지부터 설득하는 게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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