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사들이 해약환급금준비금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IFRS17(새 국제회계기준) 도입 이후 보험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자본 변동성에 대응하고 계약자에게 돌아갈 해약환급금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취지만 놓고 보면 필요한 제도다. 보험사가 회계상 이익을 냈다고 해서 계약자에게 지급해야 할 재원까지 배당으로 소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도가 시행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준비금이 보험사의 자본 운용과 주주환원까지 제약하는 수준으로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신계약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준비금 부담도 함께 커지는 구조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보험사가 보장성보험 등을 통해 신계약을 확대하고 미래 이익을 키워도 준비금 적립 부담이 커지면 당장 주주에게 돌려줄 수 있는 배당가능이익은 줄어들 수 있어서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주요 생·손보사의 해약환급금준비금은 지난해 말보다 25% 넘게 증가했다.
보험사는 '성장한 회사일수록 배당 여력이 커진다'는 일반적인 기업의 공식과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셈이다. 증권가에서는 현대해상의 경우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률이 10%포인트 완화되면 배당가능이익이 약 5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준비금 적립 기준이 보험사의 주주환원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보험사들의 요구대로 적립 규모를 일괄적으로 낮추는 것이 답은 아니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의 본래 목적은 어디까지나 계약자 보호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보험사라면 준비금 완화가 곧 지배주주의 배당수익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계약자 보호 장치를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해법은 준비금의 존폐가 아니라 적립 기준을 보험사의 건전성에 맞게 정교하게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이 계약자 보호를 위한 안전판이라면 모든 보험사가 똑같은 수준의 안전판을 필요로 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지급여력비율(K-ICS)과 가용자본 규모, 자본 변동성 등을 종합해 일정 수준 이상의 지급여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보험사에는 적립률을 대폭 낮추고 자본여력이 부족하거나 변동성이 큰 보험사는 현행 수준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대신 완화된 준비금이 과도한 배당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자본확충이나 배당정책 등에 대한 별도의 관리 장치를 두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논의의 초점도 달라진다. '보험사의 배당을 얼마나 늘려줄 것인가'가 아니라 '계약자 보호를 위해 보험사별로 얼마만큼의 재원이 필요한가'를 기준으로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
IFRS17 도입 당시에는 자본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이제는 제도가 실제 시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은 무조건 많이 쌓는다고 좋은 것도, 없앤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이제 금융당국이 답해야 할 질문은 '얼마나 쌓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보험사에 얼마만큼 쌓게 할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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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진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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