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삼지창의 우아한 오픈 컨버터블V6 트윈 터보의 파워풀한 드라이빙 경험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 투명한 하늘 아래, 기분 좋은 미풍이 살결을 간지럽히는 여름의 끝물입니다. 하루 종일 정수리 위 지붕을 닫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만큼 독보적인 계절의 선물이었지요. 이런 날 고개를 들면 가슴속까지 뻥 뚫어주는 오픈 컨버터블은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니라, 일상이라는 캔버스 위에 자유라는 색채를 흩뿌리는 우아한 붓질과도 같습니다. 자동차라는 기계 덩어리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사치이자, 오직 도로 위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특권인 셈입니다.
이탈리아 삼지창 가문 마세라티의 4인승 오픈톱 그랜드 투어러(GT), 그란카브리오를 만났습니다. 낮게 깔린 보닛과 그릴 중앙에 큼직하게 자리 잡은 삼지창 로고, 매끄럽게 뒤로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유선형 몸매는 도로 위를 달리는 예술품 자체였습니다. 정차해 있는 모습만으로도 주변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하지만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탈리안 스타일링에 취해 시동을 걸고 본격적으로 도로에 들어서는 순간, 의외의 장소에서 픽 웃음이 터지고 맙니다.
먼저 저를 당황하게 만든건 뜻밖에도 방향지시등 소리였습니다. 차량 가격만 3억원을 넘나드는 럭셔리 GT 오픈톱에 올라탔는데, 깜빡이를 켜는 순간 실내에는 '뚱땅뚱땅'하는 귀여운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마치 어린이 장난감 카트나 게임기에서나 들릴 법한 경쾌하고 장난스러운 음색이라, 마세라티가 가진 정중하고 세련된 분위기와는 통 어울리지 않습니다. 삼지창의 강렬한 위용과 대비되는 어색한 소리 때문에 시승 내내 자꾸만 허탈한 미소가 새어 나왔습니다.
아쉬운 대목은 또 있습니다. 인포테인먼트 화면 하단에 자리 잡은 비상등 버튼이 터치식으로 설계되어 있어 직관성이 떨어집니다. 급정거 시 뒷차에게 신속하게 위험을 알리거나, 차선을 양보해 준 고마운 운전자에게 '비깜'으로 인사를 건네려 해도 운전 중에는 버튼 위치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몇 번이고 손끝으로 센터페시아 주변을 허둥지둥 헤매다 결국 비상등을 켜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쳐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손끝으로 바로 느껴지는 물리 버튼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센터페시아 중앙에 배치된 버튼식 변속기 디자인 역시 손맛을 기대한 운전자에게는 살짝 밋밋하게 다가옵니다. 전기차 버전 '그란카브리오 폴고레'와 부품 공유나 인테리어의 통합성을 고려한 디자인 선택이었겠지만, 강력한 내연기관 기계를 출발시킨다는 묵직한 기어 레버의 감성을 전달하기에는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불평은 여기까지. 가속페달에 힘을 실어주는 순간, 소소한 불만들은 눈녹듯 말끔히 사라집니다. 그란카브리오, 특히 오늘 만난 고성능 모델 '트로페오'의 진짜 본색은 엔진이 기지개를 켜고 도로를 가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보닛 안쪽 깊숙이 자리 잡은 3.0L V6 트윈 터보 엔진의 이름은 '네튜노(Nettuno)'. 마세라티의 상징인 삼지창(Trident)이 그리스·로마 신화 속 바다의 신 넵튠(Neptune·포세이돈)의 삼지창에서 유래한 만큼, 엔진 이름에도 마세라티의 뿌리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최고출력 550마력, 최대토크 66.3kgf·m 성능을 내며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립니다.
낮게 가라앉아 "그르릉"거리는 배기음은 숲속을 고요히 기어가는 호랑이의 그로울링을 빼닮았습니다. 과거 명성을 떨쳤던 3.9L V8 자연흡기 엔진 시절의 찢어질 듯한 고음 배기음과는 또 다른 달콤함입니다. 마세라티가 독자 개발한 V6 엔진은 고회전 영역까지 매끄럽게 솟구치는 가속력과 중저음의 단단한 울림으로 충분히 제 몫을 해냅니다.
승차감 역시 장거리 여정에 최적화한 GT답게 매우 정교하면서도 편안합니다. 드라이브 모드를 컴포트에 두면 도로의 잔진동을 둥글게 걸러내어 다소 물렁하다 느껴질 정도로 편안하죠. GT 모드로 돌리면 차체를 단단하게 잡아주며 일상적인 도심 주행부터 고속도로 크루징까지 딱 좋은 탄탄함과 안정감이 썩 마음에 듭니다.
하이라이트는 드라이브 모드를 '코르사(Corsa·레이스)'로 맞출 때 찾아옵니다. 코르사 모드에 들어서는 순간 그란카브리오는 숨겨둔 발톱을 드러내며 거친 맹수로 변신합니다. 스티어링 휠은 묵직해지고 서스펜션은 더욱 팽팽하게 조입니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고 패들 시프트로 업시프트를 이어갈 때마다 뒤편 배기구에서 '빵, 빵!' 터져 나오는 팝콘 사운드가 오픈톱 사이로 밀려드는 바람과 어우러져 가슴 뚫리는 짜릿한 쾌감을 선물합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코너링 실력입니다. 전장 4966mm, 공차중량 1895kg에 달할 만큼 덩치가 제법 큰 편임에도 코너에 들어서면 꽤 영민하게 움직입니다. 스티어링 휠을 꺾는 대로 차체가 빠르게 반응하고, 급격한 방향 전환에서도 자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합니다. 묵직한 차체가 맞나 싶을 정도로 경쾌하게 코너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반전 매력은 연비와 실용적인 편의성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550마력 고성능 스포츠카이지만 고속도로에서 정속 주행을 이어가면 연비가 14~15km/L 수준까지 치솟습니다. 여기에 스티어링 휠 조향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국산 순정 티맵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기본이라 답답한 길 찾기 스트레스 없이 긴 장거리 여행도 피로감 없이 가볍게 소화할 수 있죠. GT라면 이래야 합니다.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차라고 부르기엔 몇몇 엉뚱하고 허당 같은 구석이 존재하는 차입니다. 디테일한 편의성에서 느껴지는 이탈리안 특유의 고집이나 허점들은 이성적으로 계산하면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붕을 열어젖히고 완벽한 날씨 속에서 네튜노 엔진의 울림을 배경음악 삼아 도로를 내지를 때 느껴지는 독보적인 감성과 자유로움만큼은 그 어떤 단점도 너그럽게 덮어버립니다. 낭만적인 오픈 드라이빙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아름다운 삼지창은 여전히 거부하기 힘든 유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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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권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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