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시가 좋아진다고 모든 기업이 제값을 받는 것은 아니다. 성장 기대가 높은 일부 기업으로 자금이 몰리는 동안 다른 기업은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이러한 격차 가운데 실적과 경쟁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부분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투자 성과가 주주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부족해 발생하는 할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평가 해소는 개별 기업의 주가 관리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와 경쟁력을 높이는 과제이다.
최근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에 나선 유통·식품기업들도 저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현실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이는 주주환원이 불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주환원은 가치 제고의 중요한 조건이지만 본업 경쟁력과 자본 배분에 대한 신뢰를 대신할 수는 없다.
국내 기업의 저평가를 진단할 첫 번째 축은 자본의 생산성이다. 내수 의존도가 높고 가격 경쟁이 치열한 기업이 저수익 점포와 비핵심 사업을 계속 보유하면 자산 규모와 이익 창출력의 간격이 벌어질 수 있다. 매출과 외형을 키우는 것만으로 기업가치가 높아지지는 않는다. 신규 투자로 얻는 수익이 자금조달 비용을 웃도는지, 기존 사업에 묶인 자본을 더 생산적인 곳으로 옮길 수 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두 번째 축은 지배구조와 자본 배분의 신뢰이다. 이익이 나더라도 관계회사 지원이나 경제성이 낮은 인수합병에 쓰일 것이 예상되면 투자자는 높은 가격을 지불하기 어렵다. 합병·분할·자회사 상장 과정에서 일반 주주의 이익이 충분히 보호되는지도 중요하다. 현금을 많이 보유한 회사라도 현금의 사용 원칙이 불투명하면 주가가 낮아질 수 있다.
특히, 임직원 성과급을 결정하는 방식도 자본 배분의 신뢰와 연결된다. 성과급은 인재 확보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당한 보상이지만, 지급 기준과 규모가 불투명하고 경영진의 재량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면 주주는 해당 기업을 외면한다.
영국의 호텔업체인 휘트브레드(Whitbread)는 2019년 코스타 커피(Costa Coffee) 매각 이후 호텔 브랜드 프리미어 인(Premier Inn)의 영국·독일 성장 기회에 투자를 집중하였다. 호텔사업의 성장에 필요한 투자자금을 확보하되, 수익성 있는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잉여자금은 주주에게 돌려주겠다는 원칙도 제시했다.
핵심은 매각으로 확보한 돈은 경쟁력 있는 사업에 투자하되,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면 무리하게 사업을 늘리지 않고 주주에게 환원하는 것이 합리적인 자본 배분이라는 의미이다.
미국 이베이(eBay)의 페이팔(PayPal) 분리 방식도 참고할 만하다. 이베이는 2015년 페이팔을 독립 상장회사로 분리하면서 기존 이베이 주주에게 보유 주식 한 주당 페이팔 주식 한 주를 배분했다. 중요한 것은 사업 분리 자체가 아니라 기존 주주가 분리된 사업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는 핵심 사업을 떼어내는 과정에서도 소액 주주가 해당 사업의 미래 성과에 참여할 권리를 유지하게 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합병·분할·자회사 상장을 추진할 때 자금조달이나 경영 효율성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기존 주주의 경제적 이익을 어떻게 보호할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기업의 구조가 바뀌어도 주주의 권리가 공정하게 보장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지배구조에 대한 가치할인을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국내 증시의 대외 신인도 제고를 위해서는 외국 우량기업의 국내 상장을 유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가치를 합리적으로 평가하는 시장부터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 상장했다는 이유로 낮은 평가를 받는다면 해외기업이 국내 증시를 선택할 유인은 줄어든다. 저평가 해소와 함께 충분한 투자자 확보, 명확한 상장 절차를 갖춰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가 오래 머물고 해외 우량기업이 상장을 검토하는 시장이 되려면 기업의 성과가 주주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분명해야 한다. 이익은 늘어나는데 경제성 없는 투자에 자금이 묶이거나, 핵심 사업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기존 주주가 성장의 과실을 누리지 못한다면 낮은 주가는 매력이 아니라 경고가 된다.
결론적으로 국내 증시의 저평가 해소를 위한 출발점은 기업이 해당 가격을 받을 이유를 만드는 데 있다. 기업은 자본의 생산성과 공정한 성과 배분으로 답하고, 투자자는 약속의 이행을 점검하며, 정부는 주주권 침해에 실효성 있게 대응해야 한다.
자산은 많지만 돈을 못 버는 기업에는 경영 개선이, 돈은 잘 벌지만 주주가 믿지 못하는 기업에는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두 과제를 해결할 때 한국 증시의 저평가 해소는 일시적인 주가 부양을 넘어 장기자금이 선택하는 시장으로 전환될 것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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