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자회사에 다니는 A씨가 지난 10월22일 KT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영화 ‘산다’를 보고 나와 한 말이다.
그 역시 영화 속 ‘산다’의 노동자들처럼 KT에 다니던 직원이었다. 당시 국내 최대 통신사인 KT에 당당히 들어간 것이 자랑스러웠던······.
평생을 KT를 위해 일했지만 20년 넘게 몸 바쳐 일한 회사에서 결국 자회사로 쫓겨나 듯 나가야했던 A씨의 사연을 <뉴스웨이>가 직접 들어봤다.
A씨는 1986년 당시 입사 선호도 1위 회사인 KT에 30살의 나이로 입사했다. 입사 후 처음 5년간 전화선 설계 감독 분야의 직무를 맡았던 그는 통신이 꽃을 피우고 삐삐와 천리안이 태동하던 시기 IT분야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 KT에는 IT인력이 거의 없어 A씨는 이곳에서 노력만 하면 IT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겠다는 꿈을 품었다. 일을 할수록 꿈은 현실이 됐고 A씨에게 나름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안겨줬다.
하지만 그런 자부심은 2002년, KT가 민영화된 이후 사라졌다. KT는 IT본부를 분사하면서 A씨의 자리와 직급을 빼앗겼고 그가 하던 업무는 KTDS라는 자회사에 넘어갔다. 여기에 20년 이상 장기근속자라는 이유로 CP(인사 고가에서 낮은 등급인 C등급을 받은 사람) 프로그램 대상자로 분류됐다.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회사는 A씨가 아침에 출근하면 각종 회의에 불러 “그러니까 왜 아직도 회사를 다니느냐”며 망신을 주기 일쑤였다. 자정에 상사가 비상을 걸어 출근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A씨는 가족을 생각하며 버텼고 회사는 그를 사무직에서 경기도 전화국으로 쫓아냈다.
전화국에서는 전기선을 고치는 일부터 전주 설치하는 일까지 다양한 일을 해야 했다. 사무직만 해왔던 A씨에게는 막노동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정작 그를 가장 어렵게 만든 것은 ‘왕따’였다.
회사는 한 번의 교육 후 직원들이 A씨를 도와주지 못하도록 막았고 경험상 채득할 수 있는 것들도 누구에게 물어볼 수 없도록 했다. 또 A씨와 대화를 나누거나 점심 약속을 하는 직장 동료에게는 직장 상사가 우회적으로 압력을 줬다.
처음엔 친하게 지냈던 직원들도 A씨가 CP라는 것을 알고 멀어졌고 나중엔 회식에도 갈 수 없었다.
그러던 2008년, KT는 2008년 고충처리업무(VOC)를 분사하면서 정규직 직원 500여명에 대한 명예퇴직을 실시하면서 A씨에게 자회사로 가라고 강요했다. 당시 KT는 500여 명에 대해 자회사인 KTis와 KTcs에 3년간 고용보장, 이전 급여 70% 지급, 새로운 인센티브 제공, 추후 지속적인 고용 보장 등을 약속하며 명예퇴직을 권고했다.
회사는 자회사로 가지 않을거면 퇴사하라고 A씨를 압박했다. A씨는 회사가 CS부분을 크게 키울 예정이며 기간제법에 의하면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고용이 보장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자회사로 옮겼다. 원래 VOC 관련 일을 하던 직원들도 계약직으로 일터를 옮겼다.
하지만 3년이 지나자 KT 본사는 A씨가 맡은 민원처리업무를 다시 본사로 가져가면서 기존의 KTis와 KTcs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은 일자리를 뺏었다. 3년의 계약기간이 만료됐으니 나가라는 것으로 애초부터 자연스럽게 퇴사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A씨는 말도 되지 않는다며 퇴사를 거부했지만 회사는 그럼 100번 콜상담 센터에서 일하라며 A씨를 떠밀었다. 급여도 절반 이상 깎였다. 이 과정에서 최초 전출자 500여 명 가운데 40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전화 상담원으로 직무가 전환된 후 A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직원들과 노동조합을 만들고 현 상황이 KT가 기획한 위장 정리해고라며 KT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100콜센터로 전보한 것은 부당한 직급 강등이자 KT가 기획한 위장 정리해고’라며 노동조합을 만들고, KT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등을 걸었다.
소송에서는 기간제법에 따라 2년을 초과해 고용한 사람은 무기 계약직으로 인정,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하지 못한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지난 4월 패소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민사 41부(재판장 정창근)는 원고 청구 기각 판결을 내렸다. 이에 A씨 등은 항소를 진행했고 오는 22일 첫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A씨는 “평생을 일한 회사에서 버림받고 압박에 밀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자신이 대신 해고되기 싫으니 남을 밀어내고 왕따를 시키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회사를 보면서 나 자신의 자존감을 많이 잃었었다”며 “반평생을 일한 회사에서 이제 와서 ‘싫으면 나가’라는 말은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왜 직원들이 일을 하고 헌신해왔는지를 안다면 회사가 이렇게 사람을 일회용품 다루듯이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항소를 통해 직원들을 기만한 KT의 실상이 밝혀지고 내 자신의 명예회복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아연 기자 csdie@
뉴스웨이 김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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