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되받기·국민주택채권 이용 등 수법도 진화
내부통제 엉망·외부 감시 허술 “고객 돈은 내돈”
금융권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고객의 돈을 빼돌려 유용했던 방식은 이제 사건 축에도 들지도 못할 정도다. 대출금 일부를 돌려받거나 소멸시효를 앞둔 채권을 이용하는 등 갈수록 지능화되고 추세다.
지난 23일 터진 KB국민은행 국민주택채권 사건은 금융권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최고였다. 소멸시효를 앞둔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해 지급하는 수법으로 무려 90여억원이나 챙겼다. 무려 3년 동안이나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지만 국민은행 자체감사에서는 단 한 번도 적발되지 않았다. 오히려 영업점 창구에서 제보로 이 같은 범행이 드러났다.
국민은행뿐만 아니다. 24일에는 경남 밀양 새마을금고에서 고객 돈 94억원을 횡령한 직원이 경찰에 구속됐다. 이 직원도 2010년 4월부터 6월까지 31차례나 걸쳐 돈을 몰래 인출해왔다.
은행권만 횡령사고가 넘쳐난 것은 아니다. 최근 고객돈 9억원을 들고 사라진 보험설계사, 보험왕 고객돈 횡령, 고객돈을 마음대로 사용한 증권사 직원 등 금융권 횡령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도덕적 해이 어느 정도인가···횡령?유용이 75%
금융감독원이 최근 5년 동안 은행권 직원 횡령과 배임을 집계한 결과 18개 은행에서 311건의 금융사고가 일어났다. 손실규모만 3655억원에 달한다. 웬만한 은행의 분기 영업이익과 맞먹는 금액이다. 금융사고 한 건당 피해금액을 환산하면 11억8000만원이다.
은행권에서 일어나는 금융사고는 횡령?유용(75.2%)이 가장 많았고 내부 직원이 연루된 사건이었다. 이어 사기(14.1%), 도난(4.9%) 순이었다.
피해규모에서는 경남은행 배임사건으로 4132억원에 달한다. 이어 2010년 신한은행의 금강산랜드 불법대출(719억원)과 외환은행 자금 유용사건(499억원)이다.
보험사도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2008년부터 작년까지 5년 동안 17개 보험사에서 일어난 금융사고는 197건에 달한다. 사고금액은 총 131억2000만원이다.
보험사는 건수도 늘어나는 동시에 금액도 커지고 있다. 직원들의 횡령이 대담하지고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증거다.
증권사도 매한가지다. 증권사는 올해만 크고 작은 횡령사건이 10여건이나 발생했다. 지난 9월에는 한 증권사 지점에 근무하는 영업직원이 고객의 계좌에서 돈을 몰래 빼내 파생상품에 투자하다가 21억원의 손실을 낸 뒤 적발됐다. 또 다른 증권사 직원은 고객 계좌에서 2억5000만원을 횡령하다 적발되는 등 9월 한 달 새 3건의 횡령사건이 일어났다.
◇은행권 사고 줄지 않는 이유는
국민은행과 새마을금고 두 사건의 공통점은 직무담당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은 국민주택채권 담당자, 새마을금고는 금고 총무업무 담당자였다. 두 직원모두 자신의 직위를 악용해 문서를 위조한 것도 닮은꼴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그동안 순환근무를 통해 횡령이나 유용을 방지해왔지만 최근 업무의 전문화를 위해 오랜 시간 한자리에 두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서류조작에 더욱 능숙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권 사고가 계속 대담해지고 있는 이유는 손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돈과 관련된 직무를 담당하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횡령’을 할 수 있다는 요건이 많다.
실제 지난 8월 전남 광양시 한 농협에서 운영하는 하나로마트 점장이 3억5000만원의 공금을 횡령하기도 했다. 이 점장은 하나로마트에서 물품을 구입한 것처럼 허위 서류를 만들어 납품업자에게 물품대금을 송금하고 “잘못 송금됐다”며 다른 계좌로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공금을 빼내왔다.
직접 직무를 담당하지 않아도 은행권에만 있어도 ‘횡령’을 할 수 있다는 사례다. 최근 경찰에 적발된 경남 통영 수협도 비슷하다. 수협 직원이 2009년부터 마른 멸치 구매내역을 조작하는 수법으로 수협 돈을 빼돌려왔다. 횡령 규모만 100억원에 달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직원들의 자신의 직무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횡령하기 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무엇보다 필요하면 마치 자신의 돈처럼 쓰고 다시 메워놓는 유용 문제도 심각해 강력한 처벌이나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재영 기자 sometimes@
뉴스웨이 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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