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세월호 침몰 참사로 ‘역린’ 홍보 프로모션이 전면 취소된 바 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 개봉한 ‘역린’은 화제작답게 올해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며 28일 현재 누적 관객 수 4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개봉과 함께 쏟아진 혹평에 출연 배우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조정석은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는 연출을 맡은 이재규 감독과의 작업에 대한 매력을 ‘역린’ 출연의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다모’를 너무 좋아했죠. 더군다나 ‘더 킹 투하츠’에선 감독님과 함께 했었구요. 솔직히 그래요. 어떤 감독님이던 같은 배우를 두 번이나 불러주신다는 건 배우로선 정말 영광이죠. 사실 감독님이 영화가 처음이시잖아요. 신인 감독이시고. 뭐 저도 신인급이고. 좀 불안한 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전 이재규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분명했어요. 감독님이 저를 믿고 두 번이나 불러주신 것처럼 저도 감독님을 전적으로 신뢰했어요. 영화요? 첫 번째는 평균적으로 봤어요. 두 번째부터는 출연한 배우인 저도 몰랐던 부분이 좀 보이는 것 같더라구요. 전 100% 만족합니다.”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 촬영 당시 이재규 감독님에게 영화 얘기를 들었다. 당시 초고 수준의 시나리오를 전달 받았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출연을 결정하고 마음속에 ‘역린’을 뒀다. 우선 출연 배우들이 문자 그대로 ‘어벤져스’급이었다. 현빈부터 정재영 조재현 김성령 한지민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이재규’와 ‘역린’ 두 이름 아래에 뭉쳤다.
“그렇게 여쭤보시는 분들도 있어요. 너무 대단한 선배들 안에서 연기하는 게 어땠냐고. 쉽게 말하면 ‘기에 눌리거나 하지는 않았냐’는 거죠. 에이, 그럴 생각이 어떻게 들어요, ‘내가 이런 선배들과 함께 할 수 있다니’란 생각에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데요. 대신 고민은 있었죠. 저와는 좀 틀린 이미지였던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작품을 마다해야 하나.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너무 완성도가 탁월했어요. 더군다나 거의 주연급이잖아요. 하하하.”
유약하고 둥그스름하게 보이는 조정석이 ‘역린’ 속 굴곡진 삶을 살아온 살수란 점에서 그 자신도 잠시 고개가 갸우뚱했단다. 드라마 ‘더 킹 투하츠’의 ‘은시경’이 카리스마란 번외편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 대부분 조정석이 연기한 배역들은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등 기본적으로 코미디란 베이스를 깔고 있었다.
“하하하, 동의하는 부분도 있구요.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매번 새로운 작품을 하고 주변 지인이나 아니면 인터뷰를 하면 꼭 받는 질문이에요. ‘연기 변신’ 혹은 ‘새로운 도전’ 등등. 글쎄요. 전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거죠(웃음). 뭘 해도 저한테는 ‘납뜩이’가 족쇄처럼 따라다녀요. 물론 그게 결코 싫지는 않아요. 필모그래피라는 게 쌓여갈수록 전작에 대한 느낌이 겹쳐지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뭘 하더라도 그렇구요. ‘더킹 투하츠’ 은시경일 때는 납뜩이(건축학개론), 신준호(최고다 이순신)일 때는 은시경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젠 아마도 ‘역린’의 살수를 말씀하지 않으실까요.(웃음)”
조정석은 주변에서의 그런 시선에 오히려 약이 올랐을 것이다. 살수(을수)에 집중하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특별한 노력(무술 트레이닝)도 있었지만 배우로서 기본인 인물 자체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우선 영화를 본 관객들의 평가를 기본으로 하자면 조정석의 그런 집중은 완벽히 성공했다.
“을수라는 인물에 대해 감정이 어떤지 생각해 봤죠. 우선 시나리오에는 그리고 영화에도 을수는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에요. 단순하게 텍스트에 나와 있는 부분 외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쉽게 말하면 시나리오 상의 텍스트 외에 숨은 서브 텍스트가 무엇일까죠. 광백(조재현)과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광백의 소굴에서 어떻게 자라왔을까. 그 안에서 어떻게 생존했고, 또 어떻게 빠져 나왔을까. 무언가에 짓눌린 삶을 살아온 을수에게 월혜(정은채)는 어떤 존재인지 등등.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실 조정석은 이재규란 감독의 믿음이 ‘역린’ 출연의 첫 번째 이유라고 했다. 하지만 진짜 더 중요한 이유는 을수와 갑수(정재영)의 관계가 더 호기심을 끌었단다. 스토리상의 악역이 을수지만 그런 을수가 선택할 수 밖에 없던 그 행동에 동정심이 앞섰다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월혜와의 사랑을 지키고 갑수와의 처절한 관계가 가슴을 잡아 당겼다.
“제 생각에 이런 역할은 한국영화에서 쉽지 않을 것 같았어요. 왕이 죽이러가는 장면이 우선 그렇잖아요. 안가도 죽고 가서 왕을 죽여도 을수는 죽어요. 그런데도 가죠. 월혜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갑수와의 기억에 더 아련해지고. 비극이죠. 정말 힘든 비극, 을수에겐 죽음보다 더 한 슬픔이었을거에요.”
을수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조정석은 정말 자신의 얘기인 듯 슬퍼했다. 영화 속 감정의 깊이가 그러하듯 조정석은 조금은 힘들어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역린’의 하이라이트인 ‘존현각’ 전투 장면에 대한 설명에선 진짜 육체적인 고통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 금새 유쾌한 조정석으로 돌아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진짜!!! 너무 힘들었다”며 격하게 손사래를 쳤다.
“진짜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어요. 그 존현각 전투 장면만 정확하게 한달을 찍은 거에요. 전남 담양에서 찍었는데 배우들끼리는 진짜 웃긴 얘기를 많이 했죠. ‘대체 왕은 언제 죽이는 거냐’라고. 하하하. 그 장면을 보면 존현각 마당에서의 전투가 있는데 그 장면만 3주를 찍었어요. 그 장면 찍을 때는 ‘우리 들어가기는 하는 거냐’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쏟아냈죠. 그리고 들어가서 현빈과 칼을 맞대고 싸우는 장면이 2주짜리에요. 진짜 대박이죠. 하하하.”
정말 죽을 만큼 힘이 든 촬영이었지만 그와 반대로 그 장면이 앞으로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가장 기억에 남을 장면이라고 한다. 일종의 쾌감이라고. 짜여진 ‘합’(액션에서 상대 배우와 맞춘 동선)이 딱딱 들어맞았을 때의 기분을 아직도 잊기가 힘들단다. 그는 “감독님이 원하는 부분을 내가 해냈다는 게 정말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끼게 했다”고 씽긋 웃었다.
인터뷰 내내 유쾌함을 잃지 않는 조정석이다. 그는 주변에서 가끔은 자신을 진짜 ‘납뜩이’로 오해하는 부분에 대해선 섭섭함을 숨기지 않았다. “참 유쾌하다”는 질문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며 의미 있는 웃음을 지었다. 분명 어떤 의미가 숨은 듯 했다.
“제가 공연을 많이 했잖아요. 공연 쪽은 위계질서도 좀 더 엄격하고, 막내였던 시절이 많아서 굳은 일을 많이 도 맡아했죠. 뭐 재롱 피우는 것도 제 일이었구요. 그냥 그건 사회생활이잖아요. 그래서 그게 제 일이라 생각하고 별 거리낌 없이 해왔구요. 근데 가끔은 제게 지금도 ‘야, 좀 웃겨봐’라고 툭 던지시는 분도 있어요. 많이 당황스럽죠. 전 우스운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배우란 직업을 가진 사람이죠.”
인터뷰 전날에도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 연습을 새벽까지 했다는 조정석은 이날도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시간에 쫒기 듯 연습장으로 직행했다. 물론 그 특유의 환한 웃음으로 1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참 밝은 기운이 넘치는 배우 조정석이다. 그래서 그가 연기한 배역들이 우리에게 여러 감정을 전해주는 가 보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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