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진혁이 입대를 앞두고 숨을 골랐다.
성실하다. 2014년 최진혁은 참 성실하게 일했다. ‘구가의서’ ‘응급남녀’ ‘운명처럼 널 사랑해’ ‘오만과 편견’까지 배우 최진혁(본명 김태호)은 바쁜 한해를 보냈다.
최진혁은 지난해 의사에서 순애보를 지닌 청년으로 또 검사로 변신을 거듭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지난달 13일 종영한 MBC ‘오만과 편견’에서 불의에 맞서 싸우는 열혈검사 구동치로 분한 최진혁은 좋은 성적은 거둔 드라마 덕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입대를 앞두고 있다.
차기작에 대한 부담을 덜어낸 덕분일까. 최진혁은 목포에서 맨 주먹으로 상경했을 때를 회상하며 생각에 잠겼다. 전라남도 목포에서 무작정 상경해 집도 절도 없이 꿈을 향해 달렸다는 그는 쉼 없이 달려온 한해를 돌아볼 새도 없었다고.
◆ “박경림 아니었다면 록커 최진혁이 되었을지도”
“가수 김정민, 최재훈을 보고 밴드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가수가 꿈이었죠. 록을 하려고 서울에 상경했는데, 막막하더라고요. 가진 돈도 없었고 딱히 묵을 집도 없어요. 그 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박경림 누나에요. 박경림 누나가 록 가수가 되겠다는 제게 배우를 하라고 추천해줬어요. 방송국에 저를 데리고 다녔죠. 밥 사먹이고 사람들도 소개시켜주고.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안쓰러웠나봐요”
그는 어려웠던 과거를 덤덤히 회상했다. 방송인 박경림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는 록커 최진혁을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데뷔시절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최진혁은 대뜸 박경림 이름 석자를 꺼냈다.
최진혁은 “박경림과 11년 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면서 “시골에서 갓 상경했을 때 ‘다 죽여버리겠다’는 생각으로 덤볐다. 거칠었다. 승부욕도 강했고, 내가 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박경림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덤비고 있구나’ 생각했을 것 같다”고 말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루지 못한 록커의 꿈에 대한 아쉬움이었을까. 최진혁은 지난해 연말 MBC 연기대상에서 밴드 로열 파이럿츠와 함께 특별 무대를 꾸몄다. 더넛츠의 ‘사랑의 바보’를 열창한 것. 당시 무대를 언급하자 최진혁은 민망한지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저 가수 안하기를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시상식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정말 어색했어요. ‘드라마 세트장에 있을 때가 좋구나’ 싶었죠”
◆ 가장 최진혁, 경제적 어려움 딛고 지난해 빚 다 갚아
뜻밖의 인물 박경림의 도움으로 최진혁은 연기를 시작했다. 귀공자풍 외모에 큰 키, 떡 벌어진 어깨는 부잣집 아들을 연상시켰지만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제가 집안의 가장이에요. 배우는 경제적으로 힘든 직업이잖아요. 집이 잘 살아서 뒷바라지를 많이 해주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직업이죠. 그런데 집안 환경이 넉넉지 않았어요. 집에 빚이 있었어요. 그걸 제가 갚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엄청난 스트레스였죠. 사실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기보다 돈을 벌어야 하는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힘들더라고요. 지난해 빚을 다 갚았어요. 몇 번 던지고 뛰쳐나갈 뻔 했어요”
실제로 만난 최진혁은 묵직했다. 남자답고 단호한 말투로 그 어느 배우보다 솔직한 속내를 풀어냈다. 가난과 무명시절조차 숨기지 않았다. 그에게 데뷔 시절을 물었다.
“첫 드라마 촬영 당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죠. 자존심이 센 성격이라 (감정이) 통제가 안되더라고요. 나는 배우감이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맞나 고민했어요”
우직하면서 프로페셔널한 성품이 ‘오만과 편견’ 속 구동치와 닮은 모습이었다. 최진혁은 “동치는 매력있다. 일을 할때 야무지게 하고 장난 칠 때도 확실하게 장난치는 면이 나와 닮았다”고 말했다.
◆ 무섭기로 소문난 MBC 3대 PD와의 작업, “제 점수는요”
타 미니시리즈와 달리 수사극 장르에서 중견배우 최민수, 손창민, 장항선 등과 함께 호흡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을 터. 방송에 앞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최민수는 “우리 드라마는 머리 나쁜 사람이 보기 힘들다”고 말한 것처럼 실제 다수의 복선과 반전, 추리 요소가 깔린 만만치 않은 드라마였다.
“작품이 어려웠어요. 대본으로 보는 그림은 특히 어려웠죠. 대본에 알기 쉽게 설명이 되어있지 않았거든요. 1,2회 대본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몰라요.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고민을 멈출 수가 없었죠. 구동치는 사건을 이끌어가는 캐릭터라서 자칫 잘못하면 헷갈리겠더라고요. 공부를 많이 했어요. 대본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잠을 못잤어요. 날을 새고 촬영장에 나간 적도 많았죠. 손수 노트에 필기하며 대본을 분석했는데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러면서 느낀 것은 ‘그동안 날로 먹었구나’ 싶더라고요.(웃음)”
최진혁은 ‘오만과 편견’ 김진민 PD에 대해 “엄하기로 소문난 MBC 3대 PD”라고 꼽으며 “최민수 선배한테 ‘연기를 왜 그렇게 하냐’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분”이라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김진민 감독님은 츤데레 스타일이에요. 애정 표현을 따뜻하게 하지 못하고 좋다고도 말을 못하면서 뒤로는 묵묵히 챙겨주는 스타일이거든요. 말도 직설적으로 나오는 분이라서 현장에서 싫으면 싫다고, 또 좋으면 좋다고 바로 표현하셨죠. 그렇지만 현장에서 해주시는 조언이 다 저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죠. 내면에는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분이에요”
◆ “최민수는 호랑이, 현장에선 귀여운 모습도···”
‘오만과 편견’에서 카리스마 부장검사 문희만으로 분한 선배 연기자 최민수와의 호흡은 어땠을까. 카리스마의 대명사인 배우 최민수에 대해 그는 “초반에는 불편했다. 어떻게 보면 기에 눌렸던 거다. 눈을 보고 연기하는게 쉽지 않았다. 최민수 선배는 호랑이다”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어 최진혁은 “알고보면 귀여운 면이 있는 선배다.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연기도 잘 받아주신다. 엄마가 뜨개질 하는 걸 뒤에서 보고 배운 아이처럼 최민수 선배에게 연기를 많이 배웠다. 존경심이 생겼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8년 무명을 버텨낸 최진혁은 연기에 욕심이 많다. 최진혁은 “잘 버텼다”고 본인을 되돌아보며 “자칫 굴러 떨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끝까지 버텼다. 어떻게든 버텨야지 무너지면 끝이라는 생각을 늘 했었다”며 주먹을 꽉 쥐었다.
연기적 한계에 부딪힐 때가 가장 힘들다는 그는 ‘오만과 편견’ 촬영하면서 힘겨운 장면과 마주했을때 허벅지에 힘을 주면서 버텼다고 한다. 어떻게든 부딪혀서 깨고 싶었단다. 연기는 한계를 마주하는 것의 연속이라는 그의 말에서 강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오만과 편견’ 촬영 당시 ‘다,나,까’ 어투가 어색했어요. 말 같지도 않고 대사 같았죠. 아무리 연습해도 입에 붙지 않았어요. 하지만 잘 버텼어요. 발가락에 힘주면서 ‘물러나면 끝이다’ 라는 생각을 했죠.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한계에 부딪힌 적이 무수히 많았어요. 학창시절부터 책임감이 강한 편이었거든요. 이번 드라마에서 제가 주연인데 무너지면 끝이겠구나 싶었거든요.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기는 싫었어요”
올해 서른에 접어든 최진혁은 군입대를 앞두고 있다. ‘오만과 편견’을 끝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는 담담하게 입대를 기다리고 있다. 최진혁은 “30살이 된 형들이 ‘죽겠다’고 하면 ‘뭘 저리 엄살을 떨까’ 싶었는데, 요즘은 1년 2년이 다르더라고요. ‘응급남녀’ 촬영할 때는 3~4일씩 밤을 새고 촬영해도 멀쩡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하루만 밤을 새도 정말 힘들어요”
흥행가두를 달리고 있는 최진혁은 입대 후 더욱 성숙한 배우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다. 최진혁에게 입대 시기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그런데 2월 쯤 영장이 나온다면 3월쯤 입대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고 답했다.
최진혁은 지난해 초부터 경찰홍보단 지원을 준비했었고, 지난해 3월, 면접과 체력테스트까지 최종 합격했다. 하지만 그는 입대를 미뤘다. 지난해 연기 활동을 통해 빚을 다 변제했다는 최진혁. 그는 어깨에 놓인 짐을 털고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입대할 수 있게 되었다.
몸 건강히 군 생활을 마치고 더욱 늠름한 배우로 돌아올 최진혁을 기대해본다.
이이슬 기자 ssmoly6@
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ssmoly6@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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