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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서만 머무르는 재계 인문학 열풍

책상에서만 머무르는 재계 인문학 열풍

등록 2015.04.20 07:59

정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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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풍 이후 해고자는 더 늘어···‘사람이 우선’ 가르침은 어디로재벌 소유 대학서는 기초 인문계열 학과 통폐합 추진 잇달아

재계 안팎에서 인문학에 대한 학습 열풍이 불고 있지만 경영 현장에서는 정작 인문학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회사 경영에서는 돈보다 사람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가르침이 책상에서만 머물고 있는 셈이다.

재계 안팎에서 본격적으로 인문학 열풍이 분 것은 대략 2012년부터다.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서 제품을 개발하고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고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의 발언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우리 기업인들도 인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업인들이 듣고 배운 인문학의 중심에는 사람과 역사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사람이 사회에서 적응해 온 과거의 흔적을 공부하는 것이 인문학의 핵심이다. 이를 경영에 대입하면 비자발적인 인력 조정을 줄이고 가치를 공유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문학 이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기업은 회사의 환경과 돈의 논리에 따라 사람을 경시하는 풍조를 현실에서 나타내고 있었다.

지난해 말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진행한 ‘201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회사를 떠난 사람은 전체 이직자 263만명 중 71만8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직 경험자 10명 중 2~3명은 원치 않게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이중에서 경영 악화에 따른 정리해고자는 38만4000명이었고 계약기간 만료 등 임시적 업무 종료에 따른 이직자는 33만4000명이었다. 특히 소득 하위 20%인 저소득층의 정리해고는 더욱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오히려 기업이 양극화 현상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내 다수의 기업은 회사 경영 원칙에 인문학 이론을 중시하고 적극 포용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밝혔다. 그러나 정작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이들의 대기업 채용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점도 인문학 열풍의 어두운 이면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교육업체 종로학원하늘교육이 발표한 계열별 취업자에 따르면 지난해 순수 인문계열 출신 졸업생의 취업률은 42.1%로 공학계열(66.7%)와 경상·사회계열(56.6%)의 취업률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기업에서 인문학 육성을 위해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만 그치지 말고 더 많은 인문계열 인재를 채용해 인문학 전공자들의 활동 폭을 키워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학의 현실을 돌이켜보면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지난 5년간 전국의 4년제 일반대학에서 사라진 인문학 관련 학과는 457개나 된다. 특히 대기업이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국내 일부 대학에서는 효율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탓에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계열 학과가 고사(枯死) 위기를 겪고 있다.

회사 내부의 인문학 교육도 여전히 미흡하거나 형식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직원 대상 인문학 강좌에 참석한 한 대기업의 교육 장소에서는 교육을 듣지 않고 스마트폰 게임을 즐기거나 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김혜숙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는 “사회 안팎에서 인문학 열풍이 분다고 하지만 인문학은 정작 연구 기반이 고사 위기에 있다”며 “특히 인문학적 소양 축적이 원래의 목적이 아닌 과시를 위한 문화자본처럼 보이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경고했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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