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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영지 “편한 가수, 편한 사람이고 싶어요”

[인터뷰] 가수 영지 “편한 가수, 편한 사람이고 싶어요”

등록 2015.05.30 00:02

김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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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영지 “편한 가수, 편한 사람이고 싶어요” 기사의 사진


지난 2000년대 초반, 가요계에는 알앤비 뮤지션들이 대거 데뷔했다.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가수 거미를 비롯해 휘성, 빅마마, 버블시스터즈 등 솔로는 물론 그룹까지. 뛰어난 가창력을 앞세운 이들의 데뷔는 가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뉴스웨이와 만난 가수 영지도 그 중 하나였다. 2003년 그룹 ‘버블시스터즈’로 데뷔해 가수의 길로 접어든지 벌써 12년의 시간이 지났다.

현재는 버블시스터즈의 영지가 아닌 가수 영지로 조용하면서도 강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버블시스터즈로 데뷔해 1집에만 참여한 후 탈퇴한 영지는 음악에 대한 굳은 심지가 있었다.

“버블시스터즈가 소울, 알앤비, 흑인 음악을 지향하는 그룹이었죠. 하지만 전 록과 백인 음악을 좋아했어요. 대학교 시절 이정, 이영현,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제아 등의 동기들과 록밴드를 만들어 음악을 하다가 우연히 버블시스터즈의 오디션을 봤죠. 그리고 그 당시에는 흑인음악에 심취했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제가 팀에 해가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당시 버블시스터즈는 흑인 분장을 하고 무대에 설 정도로 소울, 알앤비 장르의 뜻을 이어가야 했는데 제 창법이 너무 팝스럽고 록스러운 느낌이 있어서 정의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웃음) 어린 마음에 스스로 음악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준비가 덜 됐다라는 생각이랄까요. 제가 먼저 나가겠다고 하고 스스로 나왔어요. 하하하”

영지는 인터뷰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당시 파격적인 콘셉트와 폭발하는 가창력으로 가요계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여성 보컬그룹 버블시스터즈에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껴 나왔다는 정의감 넘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여장부’라는 단어가 떠올랐을 정도다.

그렇게 버블시스터즈를 나온 영지는 4년이라는 시간동안 연습실에만 있었다. 그리고 4년만에 뮤지컬 ‘헤드윅’으로 무대에 대한 공포심을 뗄 수 있었다. 그리고 탈퇴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뒤에는 ‘버블시스터즈’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뮤지컬이 보통 두 달 연습하고 한 달 공연을 하는데 ‘헤드윅’ 작품은 6개월을 연습하고 7개월을 공연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무대에 대한 공포가 없어졌어요. 버블시스터즈에 있을 때는 넷이서 공연하다가 혼자 솔로로 처음 무대에 서는 거라 많이 두려웠죠. 혹시나 제가 잘 못해서 버블시스터즈라는 팀에 누를 끼칠까봐 부담이 되더라고요. 아직도 많은 분들이 저를 버블시스터즈의 영지로 알고 계세요. 10년동안 버블시스터즈의 멤버였죠. 지금도 사실 그 부분이 예민해요. 전 이제 솔로 가수 영지거든요. 멤버들과는 여전히 응원해주고 있어요. 나중에 제가 더 잘된다면 프로젝트 앨범을 함께 내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가수 영지 “편한 가수, 편한 사람이고 싶어요” 기사의 사진


영지의 노래 실력은 고스란히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어머니가 아직도 공연을 하고 다니세요. 앨범을 내드리고 싶어요. 어릴때부터 어머니가 노래를 하시니까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죠.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 친척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시작했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소풍을 간다고 하면 늘 전교생들 앞에서 MC를 봤어요. (웃음) 처음에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죠. 4학년부터 6학년까지는 성적도 곧잘 나왔어요. 그런데 중학교1학년 때 부반장 딱 한번 하고 그때부터 쭈욱 놀았죠. (웃음) 그리고 나서 대학도 실기로 실용음악과에 진학을 했고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에 공부를 놨습니다. 하하하. 사실 제 이름도 노래할 영, 지혜로울 지라고 해서 영지가 됐거든요”

영지는 이름부터가 노래를 해야하는 운명이었다. 아직도 공연을 다니시며 노래를 하신다는 어머니를 보며 자연스럽게 성장해 온 영지가 가수가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만약 영지가 가수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영지의 명품 보이스를 듣지 못하는 불행(?)을 겪을 뻔 했다.

지난 5월 초, 영지의 둘도 없는 친구인 가수 거미 콘서트가 개최됐다. 영지는 이날 거미를 응원하기 위해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대 됐다. 관객들은 박수를 보냈으며 두 사람은 뜨거운 우정만큼이나 멋진 호흡으로 공연을 더욱 빛냈다.

영지가 이날 더욱 빛났던 건 가창력에 더한 재치 있는 입담 때문이었다. 콘서트 전체 분위기를 좌지우지 할 만큼 뛰어난 진행 실력은 콘서트의 백미였다.

“사람이 멍석을 깔아주면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멍석을 제게 깔아주는 사람이 거미예요. 제가 학창시절에 학교 행사가 있으면 사회를 많이 봤는데, 가수가 되면 발라드 가수이니만큼 말을 많이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적으로 이야기 해야지’ ‘분위기 있게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거미가 자신의 팬미팅 때 제게 MC를 보라고 했고, 그때부터 시작했어요. 하다보니 자아를 찾게 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요즘 하고 있는 ‘봄바람’ 콘서트에서도 억눌릴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해요. 발라드 가수가 노래할 때는 진지하고 집중하다가 말할 때는 또 재미있게 말하니 오히려 편하더라고요. 관객분들도 저의 그런 모습을 좋아해주시고요. 그래서 ‘아 이제 해도 되는거구나’라고 생각했죠. 거미에게 고마워요. 저 자신을 모를 때가 많았고, 남들만 생각하기 바빴거든요”

 가수 영지 “편한 가수, 편한 사람이고 싶어요” 기사의 사진


영지와의 인터뷰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거웠다. 이 한정된 공간에 몇 글자로 표현하기 아쉬울 정도로 재치 있는 입담에 인터뷰가 아닌 자칫 수다의 장(?)이 될 수 있었던 60분 남짓의 인터뷰는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영지의 매력을 혼자서 고스란히 느끼기에는 미안할 정도의 매력을 흠뻑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영지는 가수, MC 뿐 아니라 현재 사장님이라는 직업까지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영지네 포장마차’를 개업했다. 그리고 음식 맛은 물론이고, 영지와 친한 연예인들은 자주 찾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장사가 잘되는 것은 당연하고 한번 찾았던 손님은 두 번, 세 번 찾으며 단골 손님이 된다. 그리고 현재는 1호점인 압구정에 이어 강남구청역에 2호점 분점을 낼 정도로 성공한 사장님이다.

“원래는 제가 집에만 있었어요. 나갈 일이 있어서 나가면 잘 놀지만 굳이 나가지를 않았었죠. 그러다 포장마차를 개업하게 됐고 관계자, 연예인 분들이 많이 오시면서 점점 입소문이 타기 시작했어요. 제가 좀 오지랖이 넓은 편인데 그 오지랖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 오지랖 때문에 버블시스터즈도 탈퇴했고, 늘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 아닌지, 그래서 손해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살았던 결과물이 결국 제게는 다 돌아오잖아요. 포장마차를 하면서 피부로 느껴지고 나니 마음이 편하고 스스로에 대한 애착도 생기더라고요. ‘나는 잘 살았어’라는 생각이요. 저의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이제 가게를 개업한지 2년째가 된 영지는 “‘토토가’ 열풍이 불기 1년 전부터 저희 가게에서 90년대 음악을 틀기 시작했어요”라고 말했다.

“중학교 때 제 또래의 분들이 노래방에 가서 불렀던 노래들을 위주로 가게에서 많이 틀었어요. 저희 가게 찾아오시는 손님분들이 20대 중반부터 30~40대 초반의 연령대 분들인데 술을 드시면서 힘든 이야기를 하시는데 90년대 음악을 틀었더니 힘들어하고 삶에 찌들어 있다가도 그 당시의 추억들을 이야기하면서 기분 좋게 한잔씩 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게 음악의 힘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그래서 지금껏 저희 가게에는 한 번도 술을 마시고 진상을 부리는 취객들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불려지는 음악들이 꼭 유행가가 되지 않더라도 10~20년 후에라도 저희 가게에서 들려지면서 휴식같은, 놀이터 같은 가게가 됐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자신의 노래를 마음껏 틀고 싶어서 가게를 오픈하게 됐다며 멋쩍게 웃었지만 손님들과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며 또 다른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영지를 보면서 음악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위대하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되내었던 것 같다.

 가수 영지 “편한 가수, 편한 사람이고 싶어요” 기사의 사진


집에서 술을 한잔 마시고 싶을 때, 친구 없이 술 마시지 말고 자신의 포장마차에 놀러오라는 모습에서 이름이 알려진 가수 영지라는 생각을 잊게 할 만큼 포근함이 느껴졌다.. 음악과 포장마차 모두 영지에게는 ‘힐링’이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지금 자신의 위치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참 다행인 게 제가 여기서 더 유명했거나 성공했더라면 손님들이 제게 쉽게 다가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지금이 참 편해요. 전 직업이 가수인 사람일 뿐이지 유명인이 아니거든요. 포장마차를 하면서 일반 손님들이 이제 제게는 지인이 됐어요. 누군가 소외 당하는게 이상하게 싫더라고요. (웃음) 처음에는 사람들의 눈을 잘 못 봤어요. 사람들 얼굴을 기억 못하는데 이 일을 하면서 가만히 쳐다보게 되더라고요. 500명보다 1명이 무섭다는 것도 느꼈고요. 처음에는 콘서트에서 관객을 보는 게 두려웠는데 지금은 한결 편해졌어요. 저를 보러 와주시는 거잖아요. 가수도, 포장마차 사장님도. 모두 소중해요. 저는 음악이든 일이든, 사람이 우선이라는 걸 배운 것 같아요. 모두 사람을 위해 하는 거고요”

‘사람 냄새’가 나는 가수였다. 영지는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가질만한 인기에 대한 욕심도 없었다. 사람을 좋아했고, 자신을 찾아와주는 손님들이 고마웠고, 영지를 사랑해주는 지인들을 한 없이 아꼈다.

13년차 가수 영지에게는 그리 크지 않은 꿈이 있다. 가수로써의 성공과 부와 명예가 아니다. 그저 ‘편한’ 가수가 되는 것이다. 영지가 지금까지 행복하게 가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믿고 듣는다’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요. 제 음악을 믿고 저를 보러 오시는 분들. 저는 믿음이 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늘 진실한 사람이요. 음악에도 사심이 들어가는 순간 빛이 바래지는 것 같아요. 제가 방송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 인데 콘서트 장에서 같이 웃고 같이 호흡한 분들은 저와 인연이 되는 분들이잖아요. 저는 그런 인연이 너무 좋아요. 단독 콘서트를 자주 하고 싶어요. 저를 보러 공연장이든, 포장마차든, 어디로든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편한 가수, 편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가수가 될게요.” [사진=라우더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아름 기자 beaut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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