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은밀한 유혹’은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술집 서빙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가던 지연(임수정)과 마카오 최대 갑부 김석구(이경영) 회장, 그리고 그의 비서이자 혼외 아들인 성열(유연석)이 바라보던 서로 다른 ‘호접몽’(胡蝶夢)처럼 달콤하다. 이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지점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바라보던 곳은 한 곳이었다. 이 영화의 결말이 그리는 마지막 장면 뒤 관객들은 결국 세 사람이 바라보던 한 곳을 뚜렷하게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환락의 도시 마카오. 지연은 여행사를 경영하던 중 친구의 배신으로 나락으로 떨어진다. 시궁창 같은 술집에서 취객들의 희롱을 받으며 하루를 연명한다. 어느 날 신문 광고를 보게 된다. 마카오 카지노 거부 한국인 회장의 개인 간병인 고용 광고다. 한국인 우대. 면접을 보러 간 자리에서 회장의 개인 비서로부터 충격적인 제안을 받는다. 회장을 유혹해 결혼을 하라는 것. 이후 유산을 상속 받으면 그 절반을 자신의 몫으로 달라는 것이다. 이 남자는 회장의 혼외 자식인 성열(유연석). 여자는 지연(임수정).
두 사람은 철저하게 계산된 일상의 패턴을 그려나간다. 회장의 심리를 자극해 점차 호감을 이끌어 낸다. 숨소리 하나 말투 하나까지도 모두가 거짓뿐이다. 그저 돈을 위해서다. 지연은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다. 자신의 삶 속에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게서. 반면 성열은 지연의 불안을 이용해 더욱 그를 독려한다. 포기하고 시궁창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내 말을 듣거나.
영화 속 성열의 대사는 이 영화의 모든 상황을 말해준다. “우리는 지금 판돈이 엄청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성열은 지연에게 또 관객들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마치 영화는 거대한 장기판과도 같다. 지연과 김 회장은 ‘말’이다. 성열은 그 말을 손에 움켜쥔 겜블러. 관객들은 훈수꾼. 성열의 지시에 따라 자리를 바꿔가며 김 회장을 몰아붙이는 성열. 그리고 성열은 이따금 관객들을 바라본다. “자 이제 당신이라면 어떤 수를 두겠나”라고.
하지만 훈수를 두기도 전에 장기판의 형세는 예측 밖의 묘수를 관객들에게 던진다. 지연과 결혼한 마카오 카지노 거부 김 회장이 죽은 채 발견된다. 지연은 물론 게임을 진행하던 성열도 예상 밖의 한 수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급박하게 모든 상황을 마무리하기 위해 무리수를 던진다.
영화는 초반 멜로 영화의 문법으로 따라가며 나이든 돈 많은 남자와 미모의 젊은 여성이 감정의 교감으로 그려가는 멜로의 외피를 따라간다. 물론 이 방식이 한 남자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이뤄진다고 해도 말이다. 계산속에서 벌어지는 의외성으로 김 회장은 진정한 사랑의 고백을 던지고, 지연은 순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어떤 방식을 따르던 ‘은밀한 유혹’은 분명 멜로의 과정을 따라간다.
하지만 김 회장의 죽음 뒤 스릴러의 반전이 급박하게 이뤄진다. 과연 이 판을 짠 진짜 겜블러는 누구이며, 김 회장의 살인범으로 몰린 지연의 상황과 모든 판을 한 순간에 덮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성열의 모습은 불안과 초조함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이들 세 사람 주변을 서성거리는 여러 인물들의 수상쩍은 움직임과 표정 그리고 작은 복선들은 마치 승자를 정해놓고 패를 돌리는 사기꾼들의 도박 놀음처럼 급박하게 속도를 낸다.
익숙한 패턴과 인물들의 관계 그리고 반전이란 장치는 달고 달은 국내 관객들에겐 큰 무기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은밀한 유혹’을 게임의 법칙이 지배하는 한 판의 도박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측과 오판 그리고 가능과 불가능의 연속성이 지배하는 삶의 축소판처럼 느껴질 수도 있게 된다.
영화 마지막 거대한 스크린을 가득 채운 한 인물의 얼굴 속에서 관객들이 느낄 감정이 무엇인지에 따라 ‘은밀한 유혹’은 그 몫을 제대로 다 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속았거나 혹은 속임을 당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한 판의 도박에 올인 후 빈털터리가 된 자신의 바닥난 감정을 보거나.
당신이 본 ‘은밀한 유혹’은 어떤 꿈인가. 호몽인가 악몽인가. 그 해답은 영화 마지막 스크린 속 얼굴에 담겨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흔들릴 만한 유혹이다. 프랑스 작가 카트린 아를레의 소설 ‘지푸라기 여자’가 원작이다. 4일 개봉.
김재범 기자 cine517@
관련태그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cine517@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