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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유혹’, 결코 거부할 수 없는 110분의 제안

[무비게이션] ‘은밀한 유혹’, 결코 거부할 수 없는 110분의 제안

등록 2015.06.04 16:52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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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밀한 유혹’, 결코 거부할 수 없는 110분의 제안 기사의 사진

‘신데렐라’의 정의를 따져보자. 서양의 고전 동화 제목이 아니다. 현대판 ‘신데렐라’의 뜻풀이는 ‘신분상승’이란 단 네 글자로 압축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단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말한다. 비루하고 시궁창 같은 삶이 지겹다. 빠져나오고 싶다. 역겨움의 연속이다. 주변을 돌아봐도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은 날 위한 올가미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이 악몽의 순간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있다.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신데렐라’로 변신하는 것이다. 누구나 꿈꾸고 누구나 바라는 동화 속 해피엔딩이다. 영화 ‘은밀한 유혹’이 현대판 신데렐라를 그리고 있다. 영화 속 여주인공은 과연 왕자님과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그리고 그의 앞에 나타난 백마 탄 왕자님은 정말 꿈속에서도 그리던 그 왕자님이었을까. 이 두 사람은 연결한 고리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무엇을 꿈꿨을까. 그 꿈은 호몽(好夢)이었을까. 아니면 악몽(惡夢)이었을까.

영화 ‘은밀한 유혹’은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술집 서빙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가던 지연(임수정)과 마카오 최대 갑부 김석구(이경영) 회장, 그리고 그의 비서이자 혼외 아들인 성열(유연석)이 바라보던 서로 다른 ‘호접몽’(胡蝶夢)처럼 달콤하다. 이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지점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바라보던 곳은 한 곳이었다. 이 영화의 결말이 그리는 마지막 장면 뒤 관객들은 결국 세 사람이 바라보던 한 곳을 뚜렷하게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은밀한 유혹’, 결코 거부할 수 없는 110분의 제안 기사의 사진

환락의 도시 마카오. 지연은 여행사를 경영하던 중 친구의 배신으로 나락으로 떨어진다. 시궁창 같은 술집에서 취객들의 희롱을 받으며 하루를 연명한다. 어느 날 신문 광고를 보게 된다. 마카오 카지노 거부 한국인 회장의 개인 간병인 고용 광고다. 한국인 우대. 면접을 보러 간 자리에서 회장의 개인 비서로부터 충격적인 제안을 받는다. 회장을 유혹해 결혼을 하라는 것. 이후 유산을 상속 받으면 그 절반을 자신의 몫으로 달라는 것이다. 이 남자는 회장의 혼외 자식인 성열(유연석). 여자는 지연(임수정).

두 사람은 철저하게 계산된 일상의 패턴을 그려나간다. 회장의 심리를 자극해 점차 호감을 이끌어 낸다. 숨소리 하나 말투 하나까지도 모두가 거짓뿐이다. 그저 돈을 위해서다. 지연은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다. 자신의 삶 속에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게서. 반면 성열은 지연의 불안을 이용해 더욱 그를 독려한다. 포기하고 시궁창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내 말을 듣거나.

 ‘은밀한 유혹’, 결코 거부할 수 없는 110분의 제안 기사의 사진

영화 속 성열의 대사는 이 영화의 모든 상황을 말해준다. “우리는 지금 판돈이 엄청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성열은 지연에게 또 관객들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마치 영화는 거대한 장기판과도 같다. 지연과 김 회장은 ‘말’이다. 성열은 그 말을 손에 움켜쥔 겜블러. 관객들은 훈수꾼. 성열의 지시에 따라 자리를 바꿔가며 김 회장을 몰아붙이는 성열. 그리고 성열은 이따금 관객들을 바라본다. “자 이제 당신이라면 어떤 수를 두겠나”라고.

하지만 훈수를 두기도 전에 장기판의 형세는 예측 밖의 묘수를 관객들에게 던진다. 지연과 결혼한 마카오 카지노 거부 김 회장이 죽은 채 발견된다. 지연은 물론 게임을 진행하던 성열도 예상 밖의 한 수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급박하게 모든 상황을 마무리하기 위해 무리수를 던진다.

 ‘은밀한 유혹’, 결코 거부할 수 없는 110분의 제안 기사의 사진

영화는 초반 멜로 영화의 문법으로 따라가며 나이든 돈 많은 남자와 미모의 젊은 여성이 감정의 교감으로 그려가는 멜로의 외피를 따라간다. 물론 이 방식이 한 남자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이뤄진다고 해도 말이다. 계산속에서 벌어지는 의외성으로 김 회장은 진정한 사랑의 고백을 던지고, 지연은 순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어떤 방식을 따르던 ‘은밀한 유혹’은 분명 멜로의 과정을 따라간다.

하지만 김 회장의 죽음 뒤 스릴러의 반전이 급박하게 이뤄진다. 과연 이 판을 짠 진짜 겜블러는 누구이며, 김 회장의 살인범으로 몰린 지연의 상황과 모든 판을 한 순간에 덮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성열의 모습은 불안과 초조함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이들 세 사람 주변을 서성거리는 여러 인물들의 수상쩍은 움직임과 표정 그리고 작은 복선들은 마치 승자를 정해놓고 패를 돌리는 사기꾼들의 도박 놀음처럼 급박하게 속도를 낸다.

 ‘은밀한 유혹’, 결코 거부할 수 없는 110분의 제안 기사의 사진

익숙한 패턴과 인물들의 관계 그리고 반전이란 장치는 달고 달은 국내 관객들에겐 큰 무기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은밀한 유혹’을 게임의 법칙이 지배하는 한 판의 도박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측과 오판 그리고 가능과 불가능의 연속성이 지배하는 삶의 축소판처럼 느껴질 수도 있게 된다.

영화 마지막 거대한 스크린을 가득 채운 한 인물의 얼굴 속에서 관객들이 느낄 감정이 무엇인지에 따라 ‘은밀한 유혹’은 그 몫을 제대로 다 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속았거나 혹은 속임을 당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한 판의 도박에 올인 후 빈털터리가 된 자신의 바닥난 감정을 보거나.

 ‘은밀한 유혹’, 결코 거부할 수 없는 110분의 제안 기사의 사진

당신이 본 ‘은밀한 유혹’은 어떤 꿈인가. 호몽인가 악몽인가. 그 해답은 영화 마지막 스크린 속 얼굴에 담겨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흔들릴 만한 유혹이다. 프랑스 작가 카트린 아를레의 소설 ‘지푸라기 여자’가 원작이다. 4일 개봉.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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