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국회법 개정안에 임기 첫 거부권 행사(종합)

국무회의서 재의요구안 의결···“행정업무 마비시켜 국가위기 자초”

국회에 주도권 내줄 수 없다는 인식 작용한 듯···조기 레임덕 경계도

행정부-입법부 갈등 불가피···野 반발 속 6월 임시국회 파행 국면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위헌 소지를 들어 거부권을 행사했다. 임기 중 처음 행사한 거부권으로, 개정안은 국회의 재의 절차를 거칠 예정이나 결국 폐기될 전망이다.

이날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 요구안이 상정돼 의결됐다.

대통령령 등 정부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요구 권한이 담긴 개정안이 정부의 행정입법권과 사법부의 명령·규칙 심사권을 침해하는 등 위헌요소가 있다는 것이 거부권 행사의 배경이다.

박 대통령은 “국회가 정부와 정책에 대해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 비판만을 거듭해왔다”며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업무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지난달 29일 본회의를 통과해 이달 15일 정부로 이송됐고 법적 처리시한은 30일까지였으나 이날 거부권 행사에 따라 다시 국회로 되돌아가게 됐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개정안이 돌아오면 이에 대한 재의를 시도할 방침이다. 그는 중재안 마련 당시부터 거부권이 행사되면 개정안을 재의에 부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개정안은 국회 재의결 절차에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의 2/3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되지 않을 경우 폐기된다.

현재로선 폐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가의 관측이다. 새누리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개별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지만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의원들이 개정안을 재의에 부치지 않고 폐기하는 쪽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거부권 행사는 임기 반환점을 돈 박 대통령이 국회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올초 여당 내 비박 지도부 구성과 최근 메르스 사태 등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박 대통령은 집권 3년차 중반에 접어든 지금 시점에서 뒤로 더 밀려날 경우 국정 동력을 완전히 잃고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결단에 따라 정치권은 적잖은 혼란에 빠져들게 됐다. 국회의장이 여야를 설득해 중재안까지 내놨음에도 대통령이 이를 정면으로 내쳤다는 점에서 행정부와 입법부 간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당에서는 당내 갈등에 다시금 불이 붙으면서 유승민 원내대표는 책임론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비박계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셀 경우 당정 및 당청관계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거부권 행사 소식을 접한 뒤 6월 임시국회 남은 모든 의사일정의 보이콧을 선언했다. 당초 정부·여당이 원하는 경제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는 수준에서의 대응이 예상됐으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관련 법안까지 내거는 강수를 뒀다.

이는 국회법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 당시 야당의 요구로 함께 다뤘던 법안이란 점에서 야당 입장에서는 입법을 정면으로 거부 당한 셈이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창희 기자 allnew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