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여의도］내부정보 이용 불법 거래 잇따라 적발··· ‘모럴해저드’ 빠진 기업

금융당국, 삼성 최고위 임원에 대한 조사 착수

거래소 직원 포함된 부당 주식매매 알선도 적발돼

기업 임직원-증권사 연계된 불법 거래 잇따라

“법적 제재 강화·관리시스템 정비 절실” 목소리 높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당 주식거래에 금융당국의 칼날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주요 대기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적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고위 임원진이 직접 나서 사적 이익을 취하는 경우가 잇따르면서 기업 내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4일 금융투자업계 및 금융당국에 따르면 최근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삼성그룹 계열사의 최고위 임원 9명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과정에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에 나선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지난 5월26일 합병을 전격 선언했으며, 미국계 헤지펀드 기업 엘리엇매니지먼트와의 치열한 법적 공방 끝에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으로 출범했다.

이들은 지난 5월 합병 공시 직전 제일모직 주식을 400억~500억원 가량 사들인 것으로 전해졌으며, 거래소로부터 관련조사를 접수한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미공개정보를 활용한 부당이득을 취했을 것으로 보고 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대0.35로 결정됐으며, 삼성물산과 달리 제일모직은 발표 직전까지 주가가 크게 오른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은 외국계 자본을 비롯한 일부 소액주주로부터 합병 과정에서 양사의 기업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주주가치를 훼손시켰다는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특히 합병 의결을 위해 그룹 차원의 대국민 광고까지 제작하는 총력을 쏟았던 시기였다는 점에서도 향후 큰 논란이 예상된다.

올 한해 초대형 규모 기술 이전 계약을 연이어 성사시키며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던 한미약품 역시 최근 미공개 정보를 통한 부당 주식거래가 적발돼 수사가 진행중이다.

앞서 한미약품은 지난 3월19일 미국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릴리와 78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공식 발표 전 해당 정보를 펀드매니저들에게 흘려 미리 매수하도록 하고 대규모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자본시장법에서는 미공개중요정보 이용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여기서 미공개중요정보 이용행위란 상장법인의 내부자 등이 상장법인의 업무 등과 관련된 미공개 중요정보를 특정증권 등의 매매, 그 밖에 거래에 이용하거나 이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특히 해당 법인 임직원 등의 미공개정보를 통한 투자행위를 원천 봉쇄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에 대한 징벌조항이 미약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더욱이 거래를 중개하는 증권사 직원은 물론 이 같은 문제를 관리해야 할 감독기관까지 개입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뚜렷해진다.

전날 한국거래소 직원이 카카오 주식매매를 알선하다가 적발된 것 역시 시장에 만연한 ‘도덕 불감증’을 나타내는 사례 가운데 하나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일부 주가조작 세력 주도로 일어나던 문제가 최근에는 회사 임직원은 물론 증권사 펀드매니저까지 개입되는 등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며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부당한 주식거래에 대한 법적 제재를 강화하고, 내부적으로 이를 적발할 수 있는 시스템 정비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민수 기자 h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