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웃음은 보는이들을 즐겁게 만든다. 배우 강하늘의 미소가 그러하다.
강하늘은 동료 배우, 스태프들에게 평판이 좋다. 혹자는 ‘혹시 가식일까’하고 의심했다지만 ‘진짜 착한거였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좋아해줘’(감독 박현진) 개봉을 앞두고 만난 강하늘도 그러했다.
강하늘은 정말 밝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자의 질문에 지칠법도 하지만 강하늘은 어떻게 하면 최선을 다해 대답할 수 있을지 골몰했다. 우문에 현답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강하늘은 진지하고 밝은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시대의 아픔을 안은 윤동주로 변신했다.
‘동주’는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1945년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빛나던 청춘을 담은 영화다. 강하늘은 영화에서 윤동주로 분해 송몽규를 연기한 박정민과 호흡을 맞췄다. 교과서에 흑백으로 박제된 윤동주를 스크린에 살게 해야하는 부담감과 주연으로 극을 이끌어 가야하는 부담을 동시에 짊어진 강하늘이었다.
“‘동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담이었어요. 원래 윤동주 시인의 팬이었어요. 집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이 다른 버전으로 여러개 있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팬이였죠. 그런 윤동주 시인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인데, 윤동주를 연기할 수 있는 영광을 저에게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보처럼 바랐었죠. 치기 어리게 선택하고 나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기대감과 흥분감이 걱정과 중압감으로 바뀌어갔죠.”
강하늘은 당시를 회상하며 도망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도망가기에는 멀리와있었다.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당시를 떠올렸다. 수많은 말이 떠오르는 듯 말을 뱉었다 말았다를 반복하며 착찹한 심경을 대변했다.
“못할 것 같았어요. 잠수를 탈까 싶었던 작품이 처음이었어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부담감을 이겼다고 안했죠. 떨쳤다, 견뎠다는 말을 안했어요.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부담감이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그저 부담을 안고 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동주’는 저예산으로 5억으로 제작되었다. 현장에는 영화 작업 이상의 사명감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모두가 얼싸안고 ‘동주’를 향해 달렸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의 그림을 보고 어깨를 나란히했다. 스태프도 배우도 없는 현장이었다. 어깨에 힘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배우, 스태프들이 모두 얼싸안고 있었어요. 물리적 예산은 적었지만 함께 ‘동주’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마음은 수천억대 할리우드 불록버스터 감이었죠.”
그렇게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서였을까. 강하늘은 생전 처음 황정민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다고 했다. 황정민은 강하늘이 몸담고 있는 소속사 샘컴퍼니의 수장이자 그를 영화계로 이끌어준 장본인이다. 천만배우라는 호칭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황정민은 후배들에게 유독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동주’를 본 후 강하늘에게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이었어요. 정민이형 한테 고마워요. 황정민 선배 위치 정도면 말 한마디로 섭외에 영향력을 줄 수도 있는 분이잖아요. 그런데 저를 위해 가만히 계셔주셔서 감사하죠. 혹자는 ‘강하늘 회사에 황정민이 있으니 영화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해요. 그렇지만 한 번도 그런식으로 저를 도와주신 적이 없어요. 늘 ‘너 혼자해야 네게 남는다’라고 가르쳐주셨어요. 그게 감사해요. 칭찬을 듣고는 어안이 벙벙했어요. 기분이 이상했죠. 나를 이제 안 볼건가 하는 마음도 들었죠.(웃음)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되었어요.”
윤동주는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한다. 냉철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정진을 멈추지 않는다. 강하늘도 윤동주처럼 자신을 늘 성찰하고 엄격히 감시할까. 영화 속 동주와 본인의 모습이 얼마나 닿아있을까.
“윤동주 시인은 자아성찰적이고 반성적인 분이셨죠. 시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에요. 한마디로 생각해서 자신을 사랑하니 비판도 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을 사랑하니 비판하고 되돌아보는 부분은 저와 닮았어요. 저도 제 자신을 멀리서 돌이켜 생각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어요. 언행이 잘못되지 않았나 제 자신을 채찍질하죠.”
‘동주’를 통해 윤동주는 수많은 물음을 던지고, 메시지를 말하고 있다. 강하늘은 윤동주의 어떤 모습에 집중하려 했을까. 마지막으로 물었다.
“윤동주에 다른 의도를 넣고 싶지는 않았어요. 의미를 넣기 시작하면 폭력이죠. 누군가는 윤동주 시인을 저항시인으로 부르고, 패배주의로 불러요. 그렇기에 저는 윤동주에게 의도를 담지 않고 싶었어요. 그러나 윤동주의 올곧음은 버리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 마음으로 연기하려고 했어요.”
이이슬 기자 ssmoly6@
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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