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김명민 인터뷰 20년 배우 외골수, 연기는 내 운명
본좌란 해당 분야의 최고 또는 시초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만큼 김명민은 어떤 작품, 배역이든 믿고 볼 수 있는 훌륭한 연기력으로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그의 연기에는 빈틈이 없다. 완벽하게 캐릭터를 입고 또 본인 고유의 것으로 소화하는 김명민이다.
그가 지어내는 배역에는 빈틈이 없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속 정도전이 그랬고, 영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2015) 속 김민이 그러했다.
김명민은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감독 권종관, 이하 특별수사)에서 실력도 싸가지도 최고인 사건 브로커 필재로 분한다. 영화는 필재가 사형수로부터 특별한 편지를 받은 뒤, 경찰도 검찰도 두 손 두 발 다 든 대해제철 며느리 살인사건의 배후세력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유쾌한 범죄 수사물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명민은 밝고 유쾌했다. 작품과 배역을 대할 때는 늘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인터뷰를 앞둔 김명민은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반겼다. 여유로운 오후 한 가운데서 만난 김명민은 매너와 센스를 겸비한 특급 에티튜드로 인터뷰를 주도했다.
◆ 김명민, ‘특별수사’ 탄탄 시나리오에 매료
김명민에게 물었다. 왜 ‘특별수사’ 였을까.
“재밌었어요. 시나리오가 주는 재미와 캐릭터간의 플레이가 좋았어요. 비슷한 영화가 많았지만 영화가 주는 차별된 느낌이 분명 있었죠. 강자와 약자의 대립이 아니라 대립구도고 가는 구성이 좋았어요. 필연적 관계에 의해 의도치 않게 참여하게 되고 끼어들게 되죠. 사건들이 발발한 인연도 흥미로웠고요. 그 모든 것들이 통하고 있는 흐름이 좋았습니다. 어떻게 관계들을 유기적으로 굴비 엮듯이 잘 엮었나 싶었죠. 감독님께서 글을잘 쓰시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완벽한 시나리오를 쓰실 줄 몰랐어요.”
김명민은 영화의 매력으로 탄탄한 시나리오를 꼽았다. ‘특별수사’의 원재는 ‘감옥에서 온 편지’. 개발 과정을 거치며 원제를 벗고 ‘특별수사’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다시 태어났다. 흐름 역시 가볍게 가져갔다.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 영화는 산고 끝에 세상에 나왔다.
“‘감옥에서 온 편지’는 제목부터 무겁고 칙칙한 부분이 있었어요. 영화에서도 등장부터 무거운 부분이 있었는데 기술 시사회 때 본 영화는 완전히 다른 영화였어요. 장점은 잘 캐치하고 단점은 제거한 기름기가 쫙 빠진 영화가 되었죠. 조금이라도 늘어지는 부분, 스피디한 전개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과감하게 편집했죠. 회상 장면 등 앞뒤가 바뀌면서 적재적소에 잘 자리잡았어요. 포인트적인 부분도 잘 살아서 좋게 봤습니다.”
김명민은 공개된 영화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늘 작품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기로 유명한 김명민. ‘특별수사’에서는 어떤 점에 머리를 싸맸을까. 영화와 필재에 가장 중요하게 다가온 부분을 물었다.
“권동현(김향기 분)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영화의 주요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처음엔 동현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게 되는데 서서히 변화되죠. 필재의 입장에서 보는 영화의 주요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어요. 명확하게 선이 나눠져 있지는 않죠.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았어요. 왜 갑자기 이럴까, 저럴까 명확하게 설명된 부분이 시나리오에 있었지만 편집 과정에서 삭제된 부분도 있었고요. 결국 필재가 마음을 돌이키는 건 아버지 때문이에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 이후 동현에게 자신을 느끼게 되면서 달라지게 되죠.”
◆ “권종관 감독은 완벽주의자”
김명민을 비롯해 김상호, 김향기 등 배우들은 현장에서 고된 촬영에 혀를 내둘렀다. 권종관 감독의 열정은 엄청났다. 배우들은 쉽지 않은 권종관 감독과의 작업에 앓는 소리로 하나 되었다. 이에 대해 물으니 김명민은 호방한 웃음을 지으며 “말 못할 게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공공연한 사실이에요. 감독님도 알고 계시죠.(웃음) 감독님께서 10년이라는 오랜 시간 칼을 갈았어요. 오죽하면 감독님이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기 싫다고 하시더라고요. 더 찍고 싶다는 것이죠. 한 장면을 오래 찍으세요. 배우들은 힘든 장면을 찍을 때는 마음 속으로 컷을 외치죠. 연기하는 입장에서 포기할 수도 없지만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하는 오만생각이 다 들었어요. 목을 졸리는 장면에서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어요. 이후 조용히 감독님과 면담을 하기도 했죠. 결국 감독님께 다짐을 받아냈어요.(웃음)”
‘특별수사’는 사회적 사건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가볍게 다루기에는 부담이 되었을 터. 영화가 유쾌했다고 짚어내자 김명민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길고 긴 이야기를 꺼냈다.
“영화의 무거움을 상쇄시키는 것은 캐릭터들이에요. 심각한 장면에서 던지는 농담과 여유, 사연이 많은 사람들이죠. 배역을 연기한 배우들 조차 그런 사람들이에요. 무겁게 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잘 극복해나간 것 같아요. 처음엔 감독님이 모티브로 한 사건을 말해주시지 않았어요. 크랭크인 하는 시점보다 지금 갑질의 횡포나 약자의 고통에 대한 문제들이 수면위로 많이 떠오른 것 같아요. 그렇기에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자신있게 내뱉을 수 있었죠.”
◆ 배우=무당, 연기는 내 운명
김명민은 솔직했다. 1을 물으면 덧칠하지 않은 1로 대답이 돌아왔다. 기분 좋은 인터뷰였다. 영화에 대한 충분한 대화가 오갔다. 김명민에게 ‘솔직해서 좋다’고 말하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걷어붙였다.
“저는 솔직해요. 저 솔직한 인터뷰를 하기로 유명하지 않나요?(웃음) 저는 오히려 기자님들이 더 걱정돼요. 이런 이야기를 어디까지 쓰시려나.”
여세를 몰아 ‘본좌’라는 대표 수식어에 대해서도 물었다. 김명민은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을 수식하는 본좌라는 말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대배우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저한테 그런 수식어를 붙여주시다니요. 정말 연기의 달인들에게 본좌라고 말을 하던가요. 아마 드라마 ‘하얀거탑’, ‘베토벤 바이러스’까지 연타를 날리다보니 거기서 붙여진 말 같은데 그만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더 무서운건 저도 어느새 무뎌지고 있다는 것이에요. 어느 순간 끄덕끄덕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는게 무서워요. 부끄럽고 민망한 수식어에요. 그냥 배우 김명민이라고 불러주세요. 배우, 연기 잘하는 배우 김명민. 그게 최고의 수식어가 아닐까요.”
김명민은 데뷔 20년차 배우다. 하나의 일을 20년 동안 직업으로 갖는다는 것에 인간적인 존경심이 들었다. 하루하루 버티기도 녹록지 않은 세상에 하나의 일을 20년 동안 끌어안았다는 것은 자기관리와 신념이 없이는 쉽지 않았을 터다.
“연기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오던 일이도 어느 순간부터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되었지요. 그 두 가지 조건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이 같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죠. 안 좋은 일들도 있었고 한 때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 제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 바뀌지 않았기에 계속 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대답을 들으니 더욱 궁금해졌다. 20년 동안 김명민을 배우로 붙들어준 지혜는 무엇이었을까. 김명민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같은 길이라는 소회를 전하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기자를 바라봤다.
“결국 무당이 신내림을 받고 거부한다고 해도 몸이 아프도 결국 돌아가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은 타고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에요. 유치원 때 학예회 무대에 처음 올랐을때부터 지금까지 돌아보게 되네요. 늘 무대에 서지 않았던 적이 없어요. 또 무대에 올랐을 때가 가장 행복했죠. 그런 과정들이 나란 사람을 배우가 아닌 길을 생각할 수 없게 했던 것 같아요. 배우는 사람이 아이어야 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배웠어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들의 유희가 배우의 기원이죠. 퍼포먼스를 통해서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고 공감을 전하는 일은 평범한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요.”
김명민은 배우는 곧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삶이라고 역설했다. 그렇게 걸어온 20년 길을 되돌아보면 김명민은 그 무게에 취하지 않겠다는 겸손한 태도로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제가 20년차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어요. 그리고 인식하는 것은 연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응원이 될 수는 있겠죠. 20년이 주는 의미는 참 많은 것 같아요. 독이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기를 하며 얻을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있어요. 많은 후배와 감독들이 대우를 해주는 상황이 되었죠. 거기에서 오는 나태함, 스스로에 관대해 지는 것들은 저에게 독이 될 수도 있지요. 그러지 않기 위해 늘 경계하며 연기하고 싶어요.”
이이슬 기자 ssmoly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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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ssmoly6@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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