峨山, 일찍 후계자 낙점 애착 남달라 46년 자동차 한 우물 세계적 기업 이뤄자동차이어 부친 꿈인 '철강'도 품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선친 故 아산 정주영이 강조했던 ‘해봤어, 하면 된다’를 뚝심 경영, 현장 경영, 품질 경영으로 세계적인 자동차 전문기업 총수가 됐다. 그를 접한 사람이라면 그가 정이 많고 소탈하기로 유명하다는 것을 안다. 권위적이지 않고 스스럼없이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 정 회장의 장점이다.
정몽구는 고 정주영 회장의 2남으로 1938년 3월 19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2년 장남인 고 정몽필 회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데 이어 실질적인 장자 역할을 담당한 그다. 형제로는 정몽일, 정몽근, 정몽헌, 정몽윤, 정몽준, 정몽우가 있다. 정몽헌과 정몽우는 사망했다.
정몽구 회장은 1959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 1967년 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 학사 과정을 졸업했다. 1970년 현대자동차 서울사무소장을 시작으로 자동차와 인연을 맺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자동차 사업에 대한 욕심이 누구보다 강했다.
특히 “자동차는 국기다. 만약 내가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내 후대들에게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한 디딤돌을 놓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정주영 회장은 현대자동차를 정몽구 회장에게 일찌감치 낙점할 정도로 장자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정몽구 회장은 1973년 현대건설자료부장 및 이사, 1973년 현대정공사장, 1974년 현대자동차서비스 사장, 1981년 현대강관 사장, 1985년 현대산업개발사장, 1986년 인천제철 사장, 1987년부터 1993년 현대중장비회장까지 자동차에 관련된 모든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정몽구는 어쩌다 운이 좋아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의 주인이 된 인물이 아니다. 정 회장은 1970년 현대차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지금까지 46년 동안 자동차 한 분야만 보고 달린 그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선천적인 재능보다 1만 시간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을 비유한다고 해도 이미 정몽구 회장은 46년동안 자동차 한우물만 팠으니 그는 자동차의 대가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정몽구는 기아차를 1998년에 인수하여 정상화를 이뤄낸 M&A 전문가로 꼽힌다. 정 회장은 기아차 공장을 방문할 때 항상 엔진공장부터 방문한 일화는 그가 자동차에 대해 지식이 상당했던 사례다. 그는 자동차의 심장은 곧 ‘엔진’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장경영을 중시하는 정몽구는 적자기업 기아차를 단숨에 흑자 기업으로 변모시킨 이유로 꼽힌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그룹의 숙원이었던 제철사업을 궤도에 올렸다. 지난 2013년 9월 제 3고로까지 세웠다. 뿐만 아니라 현대하이스코 냉연부문을 분할 합병했다. 이를 통해 그룹의 숙원사업인 ‘쇳물에서 자동차까지’의 수직계열화가 완성하게 됐다. 현대제철이 자동차 강판은 물론 자동차 부품의 주요 소재인 특수강까지 만들면서 자동차에 들어가는 철강 대부분을 공급하게 된 것.
정몽구 회장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인 '철(鐵)'을 꿈꿨다. 그에게 철은 반드시 손에 쥐어야 할 보물이라고 판단. 국내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우리나라와 현대차그룹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양대 축인 철강과 자동차 부문을 완성한 절대적인 인물로 꼽힌다.
윤경현 기자 squashkh@
뉴스웨이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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