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무역전쟁···“모두에 피해, 관건은 규모뿐”청와대, 안보 통상 분리 대응···야당 “꿈 깨라” 맹비난전문가들 “트럼프, 韓이 이용한다 생각···우호적 관계 나라 많이 포함”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전쟁을 말로만 하지 않고 불사하겠다는 뜻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했다. 보복무역을 예고하고 있는 중국이나 유럽,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중인 캐나다와 멕시코 등 대상을 가리지 않으면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 번복은 없다는 발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동을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는 무역에 있어 친구든 그렇지 않든간에 실제 모든 나라로부터 바가지를 써 왔다.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EU) 등 다 그렇다”고 말하고 “우리는 무역으로 연간 8000억달러를 손해 본다.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트위터를 통해서도 “무역전쟁은 쉽게 이길 것이다”라면서 강행 의사를 밝혔고, 이날도 “후퇴는 없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서도 철강 관세를 물릴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3일 트위터를 통해 “EU가 미국 기업에 대해 관세를 높이려 한다면 우리도 미국에 쏟아져 들어오는 그들의 자동차에 고관세를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WP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BMW·폴크스바겐·아우디 등 미국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독일 메이커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했다.
앞서 우리 정부는 한국의 철강 수출에 대해 미국이 관세부가를 예고하는 등 통상압력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고, 한미군사동맹 등 안보와 통상은 별개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달 20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미국에 대해 안보·통상 이슈 분리 대응 기조와 관련해 “안보동맹 토대 위에서 경제·통상 문제는 국익 극대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라며 “중국·일본 등 국가를 막론하고 동일한 원칙과 잣대가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 수석은 “이를 외교·안보적인 시각에서 확대해석하거나 상대방 국가에 대한 비우호적인 조치로 간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WTO 분쟁해결 절차는 분쟁당사국간 불필요한 마찰 없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지난 19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미국의 철강 규제 등 통상 압박에 대해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는 WTO(세계무역기구) 제소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 나가라”고 말했다.
한미 동맹이긴 하지만 경제 문제는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투트랙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 압박에 대해 통상과 안보논리를 구분하겠다는 청와대의 입장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은 맹비난을 쏟았다. 자유한국당은 지난달 21일 “따로국밥은 국밥집에서 찾아야지 동맹국가 외교관계에서 찾을 것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펜스 부통령은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을 이야기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에 철강까지 한국에 대한 통상압박을 이야기하는 마당에 안보 따로 통상 따로는 청와대의 미몽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 빨리 꿈에서 깨어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현실을 직시해서 대처해주시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보수당의 일부 우려에도 불구, “한미 관계에서 통상과 안보는 별개 문제”라는 게 워싱턴 한반도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었다.
워싱턴 한반도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한국에 통상 압박을 강화하는 것은 대북 정책 등 안보 사안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다수 전문가가 통상 문제에 대한 양국간 이견을 조율할 필요가 있지만, 이 문제가 한미간 안보 협력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였다.
월리암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21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무역 이슈를 다른 동기 탓으로 돌리는 것은 대단히 큰 실수다”며 안보 분야와 분리된 무역 자체의 이슈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 철강 산업은 오랫동안 일자리를 잃고 생산량이 감소하는 문제를 안고 있는데, 한국은 큰 외부 공급자 중 하나다”며 “이는 대북 정책과는 상관 없고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공약과 관련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상무부가 철강제품에 관세 폭탄을 때리는 권고안을 내면서 한국을 포함시킨 건 경제 논리에 따른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마이클 프로먼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4일(현지 시각) 미 인터넷매체 ‘복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로 인해) 모든 경제가 피해를 볼 것”이라며 “관건은 그 규모가 과연 어느 정도냐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프로먼 전 대표는 그러면서 ‘관세 폭탄’의 여파가 중국에 한정적일 것이라는 백악관의 판단은 잘못됐으며, 특히 명분으로 국가안보 논리를 앞세운 것은 자칫 타 국가들의 모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명분으로 내세운 국가안보 논리도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미국은 가장 가까운 우방국들을 ‘적국’으로 돌려세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최대 철강 수입국이자 이번 관세 부과의 최대 피해국으로 예상되는 캐나다·독일·터키 등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을 맺고 있다. 멕시코·한국·일본 역시 미국의 군사 동맹국이다.
프로먼 전 대표는 이를 두고 “만일 미국이 캐나다의 수출을 국가안보 위협이라고 느낀다면, 이는 단순한 철강 문제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한국 쪽에서 통상 문제를 안보 분야와 연결 지어 보려는 데 대한 우려 목소리를 내고 있다.
브라운 교수는 “양국간 통상 분쟁이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다만 한국 정치가 혼란스러워 약간 걱정이다”고 말했다. 필 에스컬랜드 한미경제연구소 사무총장도 “트럼프 정부 내에서 일부는 두 문제가 명확히 분리돼 있고 안보 관계에 영향을 주는 일 없이 한국에 통상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주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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