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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 한장 없이 ‘속전속결’, 운용사 선정엔 두 달 안걸려

[한전 전력펀드 미스터리]공문 한장 없이 ‘속전속결’, 운용사 선정엔 두 달 안걸려

등록 2018.09.05 14:35

수정 2018.09.07 16:27

주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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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발표하고 한달만에 운용사 선정 공고한전, 2주간 두 차례 이사회 열고 안건 의결 입찰 마감 후 일주일만에 ‘발벡’ 등 우선협상자 해당 펀드 결성되자 투자 안해, 이자 장사만

공문 한장 없이 ‘속전속결’, 운용사 선정엔 두 달 안걸려 기사의 사진

한국전력이 5000억원을 출자해 조성한 ‘전력신산업펀드(ENIF)’는 시쳇말로 ‘빛의 속도’로 추진됐다.산업부 발표부터 한전의 이사회 의결, 운용사 선정까지는 채 3개월도 걸리지 않았고, 한전 이사회는 이례적으로 2주간 두 번의 회의를 열 정도로 산업부의 요청에 화답했다.

하지만 정작 해당 펀드가 결성된 후로는 느림보 행보를 보였다. 펀드를 운용하는 에너지인프라자산운용은 하위펀드에 대한 출자 외에는 2년 째 이렇다할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 결국 한전은 전력신산업펀드에 추가 출자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30년 동안 운용해야 하는 2조원 규모의 사업을 정부와 한전이 번개불에 콩구워 먹듯 졸속 추진한 이유는 대체 뭘까. 당시 한전 이사회는 경험부족으로 인한 손실 우려에 반대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6년 5월19일 서울 벨레강스 호텔에서 ‘전력신산업 펀드 조성’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신재생에너지, ESS, 전기차, 온실가스 감축 등 에너지신산업 활성화를 위한 기술개발과 창업육성 등을 지원할 전력 신산업 펀드가 내년까지 2조원 규모로 조성된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2016년 1조원, 다음 해 1조원 등 총 2조원을 출자해 △기술개발 △창업육성 △기업성장 △각종 프로젝트 분야를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6월초 상위펀드 자산운용사 선정공고를 내고, 6월중 한전 이사회를 열어 의결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후 10월 중 전력 신산업 펀드 결성 및 규약체결을 한 후 11월부터 하위펀드 구성 및 투자개시를 할 것이라고 추진일정을 설명했다.

정부의 펀드 운영이 발표되자마자 한전은 정부의 계획에 따라 운용사 선정공고를 내고 일주일만에 두 차례 이사회의를 연다.

한전은 6월 17일 한전아트센터 11층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고 전력신산업 펀드 및 운영회사 출자(안)을 안건으로 놓고 논의를 했다. 전력신산업펀드에 2016년 1조 3억원, 2017년 1조원, 총 2조3억원을 출자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날 이사회는 “펀드 운용회사 선정 방안, 펀드 운용 감시‧감독 방안, 기타 펀드 출자 및 운용 관련 리스크 요인 분석과 그에 따른 대응 방안을 포함하여 재상정이 필요하다”며 의결을 보류했다.

그 후 6월24일 한전은 다시 이사회를 열고 전력신산업 펀드에 2016년 1조3억원, 2017년 1조원을 출자한다는 기존 계획에서 초기투자 펀드 규모를 5000억원으로 줄여 수정 의결했다.

한전은 ENIF 운용사 모집 공고를 6월29일에 냈고, 7월26일 오전10시까지 입찰서를 접수했다. 당시 한전은 입찰서가 많이 몰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ENIF 운용사 입찰 참여를 확정한 운용사는 없고 문의만 있는 상태였다. ENIF는 총 2조원으로 작지 않은 규모이지만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ENIF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문의를 해온 운용사로는 멀티에셋자산운용(옛 KDB자산운용)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8월3일 입찰에 참여한 미래에셋·멀티에셋·발벡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후 한전은 정부의 본래 계획인 10월보다는 조금 늦어진 11월 모(母)펀드인 에너지인프라자산운용㈜을 설립한다. 발벡 KPL코리아는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가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였다. 당시 펀드 조성을 사실상 주도했던 주형환 전 산업부 장관은 이 부총리와 재정경제부 시절 경제정책국에서 함께 일했다. 이후 권 부총리가 청와대 경제정책수석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길 때 주 전 장관도 정책수석실 정책기획행정관으로 근무했다.

에너지인프라자산운용은 다음해인 2017년 3월 20일 하위펀드 운용 위탁사 제안서 접수를 마감한 뒤 4월 말 운용사를 최종 선정하고, 7월 중 펀드 결성을 완료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서류 심사가 한 달 넘게 진행되면서 5월17일이 되서야 에너지신산업펀드의 하위펀드 운용 위탁사 선정 1차 심사 결과 사모펀드들이 선정됐다. 에너지인프라자산운용은 1차 심사 이후 현장 실사 및 2차 심사(PT)를 거쳐 6월에 LB인베스트먼트, BSK인베스트먼트(구 슈프리마), 송현인베스트먼트를 하위펀드 운용사로 선정하고 총 1250억원을 출자했다.

이후 에너지인프라자산운용은 하위펀드에 대한 출자 외에는 2년간 직접 투자한 이력이 전무해지고 만다. 계속 투자처를 발굴했지만 직접 투자가 이뤄진 적은 없고 펀드에서 상위 펀드를 선정해 투자하는 간접투자만 일부(전체 금액의 30%)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한국전력은 에너지인프라자산운용이 1차 출자금을 가지고 이렇다 할 투자 성과를 이뤄내지 못하면서 한국전력은 나머지 1조5000억원의 출자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기존 계약에 5000억원의 투자가 진행됐을 때 추가적으로 1조5000억원을 납입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1조5000억원에 대한 출자의무가 사라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해당 펀드는 애초에 준비가 부족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시 한국전력 이사회에서도 펀드손실 우려에 대한 지적들이 제기됐지만 정부의 강요에 의해 사업이 졸속추진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에너지인프라자산운용 설립 전인 10월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홍익표 의원은 “정부와 한전이 2조원 규모의 펀드를 30년 동안 운용하는 계획을 추진중인데 공문 한 장 존재하지 않는다”며 “정부는 해당 상임위에 관련 내용을 충실히 보고하고 계획을 점검한 뒤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한전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경험부족으로 인한 펀드손실 우려에 대한 지적들이 대단히 많지만 ‘정부가 하라고 하니 해야 한다’,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도 면제한 것은 손실이 나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 아니냐’고 나와 있다”며 “이명박 정부에서 해외자원개발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기업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이 든다”고 꼬집기도 했다.

뉴스웨이 주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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