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기업은행장 기습 발표···‘관치 금융’ 회귀 비판‘낙하산 논란’ 되풀이···전문성 검증 부재 심각내부 사기 꺾이고 차세대 리더 양성 동력 약화CEO 선임 절차 개선 위한 법 개정 목소리 커져
기업은행은 2일 저녁 윤종원 전 비서관이 제26대 행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식 임기 시작일은 3일이며 취임식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윤 신임 행장 선임으로 2010년 이후 3연속 이어진 내부 출신 행장 기록은 끝이 났다.
노조 측의 반대 투쟁은 격화됐다. 3일 오전 8시28분께 첫 출근한 윤 신임 행장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10분만에 발걸음을 돌렸다. 노조 측은 출근 저지 투쟁은 물론 총 파업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투명성은 어디에···되풀이 되는 ‘깜깜이 인사’=윤 행장 임명은 김도진 전 기업은행장이 지난해 12월 27일 퇴임한 지 6일이 지난 시점에서 이뤄졌다.
당초 유력한 후보였던 반장식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에 대해 기업은행 노조가 “금융 경험 없는 낙하산”이라고 반발해 결국 임명이 무산된 탓이다. 청와대는 대행체제를 오래 둘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거시경제 전문가인 윤 전 수석을 신임 행장으로 낙점했다.
문제는 ‘깜깜이’ 인사다. 금융분야의 전문성과 조직 이해와 관련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기업은행은 기획재정부가 지분 53.2%를 보유한 국책은행으로 행장 선임 절차를 보면 이사회의 후보 검증과 평가를 받아야 하는 시중 은행과는 달리 금융위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전국에 600곳이 넘는 지점을 운영하는 등 시중은행과 같은 영업을 하고 있지만 임원추천위원회와 같은 의사결정 구조는 없다는 뜻이다.
공공기관의 경우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를 구성해 임원을 추천하는데 기업은행에 우선 적용되는 ‘중소기업은행법’에는 이 같은 조항이 빠져있다.
정부의 발표 전까지는 후보자조차 알 수 없는 구조다. 은행 내에서 자체적으로 행장을 추천할 수 없는데다 행장 후보 조차 알 수없다. 김도진 전 기업은행장 임기 만료 한참 전부터 관료 출신 후보들이 하마평에 오르며 논란을 부채질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제도 손질 없이는 해결이 요원할 수밖에 없다.
제도를 손 보기 위한 시도는 있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금융공공기관의 기관장 선임 절차를 개선하라”고 권고했고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은 기업은행 이사회 내 임추위 설치를 골자로 하는 중소기업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도 임원자격 요건에 금융회사 재직 경력 등의 요건을 규정한 개정안을 냈지만 이들 법안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낙하산’으로 내부 사기 꺾어···악순환 끊어야=2010년 조준희 행장을 시작으로 권선주 전 행장, 김도전 전 행장까지 3차례 연속 내부 출신 최고 경영자가 이끌면서 은행의 양적‧질적 성장을 이끌었다. 김 전 행장은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하는 가 하면 중기대출 시장에서도 굳건히 선두를 지키며 은행의 설립 취지를 제대로 이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호실적 속에서도 김 행장의 연임 가능성은 낮게 평가됐다. 연임 사례가 없지 않지만 사실상 단임제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앞서 25명의 행장 가운데 연임에 성공한 사람은 단 두 명 뿐이다.
내부에선 사기가 꺾일 수밖에 없다. 내부에서 성과 경쟁을 통해 경영 능력을 입증해도 은행장 선임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외부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내부 인재가 은행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사라지는 셈이다. 경쟁력 있는 내부 인사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만한 동력도 없다. 이는 직원들의 사기와도 연결되는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은행에 ‘독’이다.
임기 3년내 성과를 보여야 하는 행장들도 부담이다. 기업은행이 중소기업 금융 지원을 표방하는 국책은행이지만 정책 금융 성과보다 시중은행과 같이 실적으로 평가받는 흐름을 두고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장 선임에 외부 입김이 강하다 보니 풍선효과도 생겨났다. 경영 능력 입증보다는 일부 임원들이 행장 자리에 앉기 위해 파벌 형성과 정치권 로비에만 신경 쓴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내부 출신 행장과 외부 출신 행장의 가장 큰 차이는 조직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일 것”이라며 “내부 파벌과 같은 문제 역시 내부의 인사 시스템이 아닌 외부에서 행장을 임명하는 절차가 근본적인 이유인만큼 해결책은 기업은행장의 선임 방식을 뜯어 고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한재희 기자
han324@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