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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졌잘싸’ 박철완, 금호석화 감시자로만 남아주세요

오피니언 기자수첩

[이세정의 산업쑥덕]‘졌잘싸’ 박철완, 금호석화 감시자로만 남아주세요

등록 2021.05.25 10:07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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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er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초 박철완 전 상무가 작은 아버지 박찬구 회장에게 반기를 들면서 경영권 분쟁이 촉발됐습니다. 박 전 상무는 주주제안으로 보통주 1주당 1만원이 넘는 고액배당과 이사회 내 각종 위원회 설치 등 거버넌스 개선, 사내·사외이사 교체 등을 요구했습니다.

결과는 박 회장의 완벽한 승리. 박 전 상무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표결이 이뤄진 총 22건의 안건 중 단 한 건도 가결시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박 전 상무는 ‘졌지만 잘 싸웠다’(졌잘싸)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보수적인 경영기조를 고수하던 사측은 박 전 상무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획기적인 변화을 결심했고, 결론적으로 기업가치가 향상됐다는 분석입니다.

사측은 박 전 상무보다는 못 미치지만, 보통주당 4200원을 배당했습니다. 전년 1500원 대비 180% 확대된 금액입니다. 또 이사회 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위원회와 내부거래위원회, 보상위원회를 설치했고, 전문성을 갖춘 사내이사와 독립성이 보장된 사외이사들이 이사회에 새로 합류했습니다.

금호석화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박 회장의 사내이사 자진 사임입니다. 박 회장은 올해 1분기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한 시점에서 대표이사직을 내려놨습니다.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거버넌스 전환과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서 입니다.

경영기반이 탄탄하게 다져진 만큼, 박 전 상무가 비판한 폐쇄적인 오너경영을 탈피하겠다는 의지 표현이란 해석이 나옵니다. 동시에 박 전 상무의 재공격 여지를 원천차단하겠다는 전략도 담긴 것으로 풀이됩니다.

박 전 상무가 독립성을 지적해온 신우성 금호석화 사내이사(금호피앤비화학 대표이사)가 임기를 1년 남기고 물러난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합니다. 박 전 상무는 금호피앤비화학이 금호석화 100% 자회사인 만큼, 신 대표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꼬집은 바 있습니다.

경영권 분쟁에서 패배한 박 전 상무는 잃은 것이 많습니다. 사측은 주총이 끝난 직후 박 전 상무와의 임원 계약을 해지했고, 박 전 상무에게는 ‘최대주주’ 타이틀만 남게 됐습니다. 경영에서 철저히 배제된 만큼, 사내 세력을 키울수도 없고 현안 파악도 쉽지 않습니다.

박 전 상무가 현 상황에서 판을 뒤집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미 3월 주총에서 초고배당에도 흔들리지 않는 박 회장 측의 견고한 지지층을 확인했고, 이들을 포섭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장기전을 시사하고 있지만, 여전히 승산은 낮습니다. 박 전 상무와 모친 김형일씨, 장인 허경수 코스모그룹 회장은 주총이 개최되기 전 금호석화 주식 100억원어치 가량 사들였습니다. 전년 말 기준 보유 주식에 한해서만 의결권이 부여되는 만큼, 훗날을 도모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풀이가 유력합니다.

하지만 박 전 상무가 분쟁 이유로 지목해 온 거버넌스 개혁은 금호석화 자체적으로 완수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호실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영 실책을 문제삼기에도 무리가 있습니다.

재계에서도 박 전 상무가 임시 주총이나 내년 주총에서 승기를 거머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명분 없는 싸움은 금호석화의 가파른 성장세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기 때문에 박 전 상무에 동조하던 소액주주들마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존재합니다.

결국 박 전 상무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은 건전한 경영 감시자입니다. 최대주주 지위를 활용해 소유와 경영이 제대로 분리되고 있는지, 사외이사들의 견제가 잘 이뤄지는지, 경영진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은 없는지, 올바른 사업 전략을 짜고 있는지 등을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감독하는 것입니다.

박 전 상무 역시 모든 주주와 함께 미래지향적인 금호석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비운의 오너일가도, 삼촌과 경쟁하는 조카도 아니다.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금호석화를 만들기 위한 충정”이라고 강조한 그의 발언이 진정성을 얻을 수 있을지는 향후 행보에 달렸습니다.

뉴스웨이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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