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4대 그룹 부사장급 임원들이 출석 요구를 받았는데, 올해는 최고경영자(CEO)급 임원들이 호출될 모양새다. 농해수위 국감 증인·참고인 명단에는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권영수 LG 부회장, 이형희 SK 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회 위원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기업인들을 국감장으로 부른 것은 농해수위 소속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이다. 국감에 나설 증인 37명 중 24명(64.8%)이 기업 관계자다.
물론 농해수위가 신청한 기업인 명단이 추후 바뀔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감에 호출받은 기업인이 불출석 사유서를 내거나 정치권에서 실무자로 대체하게끔 하면 출석 대상이 바뀔 순 있다. 이에 국감 시즌이 돌아오면서 4대 그룹은 대관팀이 가장 바쁘다고 한다.
농해수위 국감은 대기업들이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부족하지 않게 출연했는지 점검하는 게 목적이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혜택을 받는 기업들이 농어촌 상생기금을 출연하도록 법으로 정하면서 기업들의 참여를 촉구하는 차원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4대 그룹 호출 국감은 어느덧 관행이 돼 버린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국감 명단에 오르는 기업은 매년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농해수위 측은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조성액이 지난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1293억원밖에 조성되지 않았고, 매년 1000억원 목표에 30%도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입장이다. 이에 국장감에선 조성액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4대 그룹 중심으로 질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기업 입장에선 불만이 크다. 박근혜 정부 때 국정농단 사태로 기업들이 피해를 봤으나, 여전히 기업의 후원금을 받아내는 과정이 정치권의 강제성을 띈다는 점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이랑 연관성이 낮은 농해수위에서 돈을 뜯어내는 게 기업 불만을 키웠다”고 토로했다.
정치권이 대기업을 도와주는 법 없이 기업들 옥죄는 법안만 만드는 것도 재계의 불신을 키운다. 글로벌 경영 환경은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데, 국회가 기업인 망신 주기 호출만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래서 재계 일각에선 “국정 현안에 대해 다루는 게 국감인데, 국회의원 자기들 이름 알리는 자리로 국감을 이용한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2016년 12월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태 국정조사 청문회에 나갔던 고 구본무 전 LG 회장은 대기업의 돈을 ‘준조세’처럼 걷는 것에 대해 입법을 막아달라고 호소한 적 있다. 정부 압력으로 기업들이 돈을 내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준조세는 특정 공익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과한다는 명분이 있다. 그러나 부담금 등 각종 준조세로 인해 기업들이 연구개발(R&D) 투자에 활용돼야 할 비용 일부는 준조세 명목으로 빠져나간다.
정부가 민간으로부터 준조세 성격으로 거둬들이는 부담금이 내년에도 2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는 ‘2022년도 부담금 운용계획’을 이달 초 국회에 제출했다. 올해보다 3.5% 줄었다곤 하지만 기업들 부담감은 여전하다.
요즘 기업들은 ‘위드코로나’ 시대를 맞아 신사업 투자, 먹거리 발굴 등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치열하다. 기업들의 자발적 출연이 아닌, 정치권에서 지원금을 더 내라고 압박하는 장면이 매스컴에 공개되는 것도 바뀌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이름을 알리려고 기업들을 부르는 행위도 중단해야 한다.
분명 시대는 달라졌다. 우리 기업들이 세계 속으로 비상하는데 정치만 도태돼선 안 된다. 4대 그룹을 관행적으로 호출하는 국감 장면도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다.
뉴스웨이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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