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강판이 절실한 자동차산업과 조선산업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파업은 노동자가 가지는 정당한 권리이기 때문에 합법적 파업은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현대제철의 파업사태는 과연 파업이 합법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물음표다. 현대제철 노동조합은 총 5개의 지회로 구성돼 있다. 현재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지회는 순천지회를 제외한 4개 지회(당진, 당진냉연, 인천, 포항)다. 순천지회는 공장장실 점거를 먼저 풀고 현장에 복귀했지만 다른 4개 지회는 지난 9월24일 파업 돌입과 동시에 사장실 및 공장장실 점거를 풀었다.
노조 측은 사장실·공장장실 점거라는 불법행위는 특별격려금 400만원을 요구하며 지난 5월2일부터 시작돼 150일가량 지속됐으나 '합법적'인 파업을 위해 '불법적'인 점거를 풀었다. 점거를 풀어달라는 회사의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던 노조가 파업을 시작하며 갑자기 점거를 푼 것은 사회적 비난을 의식해 최소한 '합법'이라는 외형을 덧씌우려는 꼼수다. 철강업계는 최악의 위기 상황과 맞닥들이고 있다.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항제철소가 가동이 중단됐고 현대제철은 노조의 파업 몽니로 수요업계는 설상가상의 피해를 입게 될 것이 자명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는 노조는 사회적 비난을 최소화하고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부랴부랴 불법 점거를 푼 것이라고 철강업계는 보고 있다. 하지만 꼼수는 꼼수일 뿐이다.
무엇보다 파업에 돌입하게 된 계기가 특별격려금 400만원이라는 점은 노조의 합법적 파업이라는 주장에 힘을 잃게 만든다. 노조는 회사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요구사항을 사실상 임단협의 선결문제로 들고 나와 회사의 협상테이블 참석을 원천봉쇄한 후 파업을 위한 명분만 차곡차곡 쌓아갔고 파업은 수순대로 진행됐다. 합법적 파업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제2의 외환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기상황이다. 미국의 소위 '자이언트 스텝'으로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환율은 달러당 1400원을 훌쩍 넘었으며 1500원 돌파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인플레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으며 몇 개월째 무역적자가 지속되는 등 국내 경제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모든 경제전문가들이 이 같은 추세는 일시적인 게 아니라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현대제철 노조가 파업으로 국가 기간산업인 철강산업을 위기로 내몰 뿐 아니라 후방산업에도 치명적 타격을 입힌다는 것은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회사와 노조라는 좁은 시각으로 상황을 판단한 결과 파업이 길어질 경우 노조가 원하는 대로 회사는 결국 생산 차질이라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대제철의 생산 차질로 인한 후방산업의 피해 등 국가적인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노조 집행부가 진정 회사로부터 금전적인 보상을 희망했다면 파업 카드를 꺼내기 전에 현재의 철강시장 상황을 제대로 읽었어야 했다. 포항제철소의 침수피해로 철강공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노조가 앞장서서 생산에 매진하고 수급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면 전국민적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노조의 노력이 선행됐다면 회사도 생산격려금 지원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은 노조의 요구에 어떤 식으로든지 화답했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자동차가 받았으니 우리도 받아야 한다"는 일차원적인 판단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파업으로 인해 너무 멀리 와버렸다. 노조는 지금이라도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돌파하는 데 먼저 발 벗고 나섬으로써 회사에게도 합당한 보상을 줄 수 있는 명분을 만드는 것이 '윈-윈(win-win)'의 첫 발이 아닐까 한다. 노조원들을 위해서라도 노조 집행부의 대승적인 판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전 세계가 경기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추락하며 '파운드화 쇼크'가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 무역의 위축 공포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에 처해졌다. 이러한 상황에 노조는 사측과 첨예한 신경전 대신 대승적인 대화가 필요할 때다.
뉴스웨이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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